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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종친 파평 윤씨와 얽힌 은진 송씨…병자호란 350년 갈등 풀다 [e즐펀한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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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열, 윤선거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1637년 1월 조선 인조는 삼전도(서울 송파구)에서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삼배 구고두(三拜 九叩頭)를 했다. 삼배 구고두란 청 황제에게 세번 절하고 아홉번 조아리는 것을 말한다. 병자호란 당시 삼전도의 굴욕은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가장 치욕스런 일로 남아있다.

[e즐펀한 토크] 김방현의 개갈난 충청뉴스

충남 논산시 노성면 명재고택. 1709년 윤증이 지은 고택은 아직도 남아있는 수백개의 장독대로 유명하다.프리랜서 김성태

충남 논산시 노성면 명재고택. 1709년 윤증이 지은 고택은 아직도 남아있는 수백개의 장독대로 유명하다.프리랜서 김성태

인조에 이어 왕위에 오른 효종은 북벌정책을 들고 나왔다. 힘을 키워 청나라에 복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조선의 대학자이던 송시열(1607~1689)도 북벌을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는 북벌론에 찬성하면서도 양반과 지주의 기득권을 지키는 방안을 모색했다고 한다.

이때 윤휴(1617~1680)는 북벌에 찬성하면서도 제도 개혁을 통해 양반제와 지주제 모순을 제거해야만 북벌이 가능하다고 맞섰다. 송시열은 이런 윤휴를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붙였다. 사문난적이란 교리에 어긋나는 언행으로 유교의 질서와 학문을 어지럽히는 사람을 말한다. 윤휴의 오랜 친구였던 윤선거(1610~1669)는 송시열에게 “제도 개혁론을 수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친구 편을 들었다. (김용흠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 갈등 '회니시비'

윤선거가 세상을 떠나자 아들 윤증(1629~1714)이 송시열에게 묘비문을 부탁했다. 송시열은 '쓸 게 없어서 다른 사람 글 베껴 쓰노라'라고 했다. 서운한 윤선거 아들이 수정해 달라 거듭 청했으나 송시열은 거부했다.

이날 일을 계기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은 대립의 길로 들어섰다. 집권 세력이었던 서인은 노론(송시열)과 소론(윤증)으로 갈려 싸웠다. 이를 ‘회니시비(懷尼是非)’ 라 부른다. ‘회’는 우암 송시열의 터전이었던 대전의 회덕이며, ‘니’는 명재 윤증의 터전이었던 충남 논산시 니성(현재 노성면)을 가리킨다.

회덕을 중심으로 대전에는 은진 송씨 15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 논산시 노성면과 공주시 탄천면은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 파평 윤씨 문중 후손인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도 이곳을 몇차례 방문한 바 있다.

지난 16일 양 문중 만남…350년 만의 화해

지난 16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공원에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이 모여 화했다. 사진 좌측은 송영문 은진송씨 우암종회 공사원, 우측은 윤철병 파평윤씨 전 종친회장이다. 사진 은진 송씨 문중

지난 16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우암사적공원에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문중이 모여 화했다. 사진 좌측은 송영문 은진송씨 우암종회 공사원, 우측은 윤철병 파평윤씨 전 종친회장이다. 사진 은진 송씨 문중

회니시비로부터 350여 년이 흐른 지난 16일 오전. 대전시 동구 우암 사적공원 내 남간사 이직당에는 은진 송씨(우암 종친회)와 파평 윤씨(노성종회), 그리고 광산 김씨 등 3개 문중을 대표하는 인사 5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은 율곡 이이의 학맥을 잇는 송시열, 명재 윤증 후손이다.

이 자리에는 기호학파 예학(禮學)의 본산인 사계 김장생(1548~1631)의 후손도 함께해 의미를 더했다. 우암 송시열은 광산 김씨인 김장생의 제자이고, 윤증은 송시열의 제자였다. 남간사는 송시열을 모신 사당이다.

주요 참석자는 송희원 은진 송씨 파유사회 의장, 송영문 우암 종친회 공사원, 윤철병 전 종친회장, 윤봉길 의사 손녀인 윤주경 국민의힘 국회의원 등이다. 또 대전 동구가 지역구인 이장우 전 국회의원, 박성효 전 대전시장, 김장생 후손인 김연수 중구의회 의장 등 정치권 인사들도 함께했다.

“양 문중, 대표 학자는 스승과 제자 사이”

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 김성태 프리랜서

우암사적공원내 남간정사. 김성태 프리랜서

이날 이들이 모인 것은 문중간 대립과 반목을 청산하고 화합의 시대를 열기로 뜻을 모아서다. 윤철병 전 종친회장은 “지난해부터 은진 송씨 문중에서 화합의 자리를 마련하자고 제안해와 흔쾌히 응했다”며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그동안 모임을 연기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은진 송씨 유림 모임 사무국장인 송인승씨는 “양 문중 대표 학자가 스승과 제자 사이였던 만큼 양 문중이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며 "하지만 회니시비 이후 양 문중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려 결혼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2020년 유성룡과 김성일 문중 화합도 영향 

이들 문중이 화합하기로 결심한 데는 2020년 11월 20일 경북 안동 호계서원서 열린 고유제도 영향을 줬다. 당시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 대산 이상정 등 조선을 대표하는 유림(儒林) 4인의 위패를 한 자리에 모시고 고유제를 지냈다. 각 유림 문중이 화합하자고 뜻을 모았기 때문에 가능한 행사였다.

명재 고택. 사진 윤석구 우리종금 전무

명재 고택. 사진 윤석구 우리종금 전무

이들 유림은 1620년부터 갈등했다. 퇴계 이황의 위패를 모시는 호계서원 사당에 퇴계의 제자인 서애 류성룡(1542~1607)과 학봉 김성일(1538~93) 중 누구의 위패를 윗자리인 퇴계 왼쪽에 놓는 게 맞는지를 두고 갈등했다. 서애파와 학봉파 간 서로 말도 잘 걸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후손들은 이를 ‘병호시비(屛虎是非)’라 불렀다. 오래전부터 서애파를 ‘병’파, 학봉파를 ‘호’파라고 불렀는데, 병호시비는 이들 간의 다툼이라는 의미다. 윤철병 전 종친회장은 “서애와 학봉 후손도 화해하는 마당에 우리 문중이 못 본체 해서야 되겠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고 했다.

윤주경 의원 "대한민국 도약에 힘을 보태달라"  

지난 16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우암 사적공원에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광산 김씨 문중이 화합의 모임을 했다. 사진 은진 송씨 문중

지난 16일 대전시 동구 가양동 우암 사적공원에서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광산 김씨 문중이 화합의 모임을 했다. 사진 은진 송씨 문중

첫 화합의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는 이날 남간사에서 고유제와 제향을 지냈다. 앞으로 양 문중은 상생 문화제, 과거시험 재현 등 행사를 열기로 했다. 송인승씨는 “첫 화합의 장소로는 윤증의 스승인 송시열을 모신 남간사에서 하기로 했다”며 “내년부터 논산 노성면 윤증 고택과 김장생이 세운 논산 돈암서원 등에서 번갈아 가며 행사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윤주경 의원은 “새로운 도약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할 시점에 은진 송씨와 파평 윤씨 화해의 장이 마련된 것은 의미있다”며 며 “양 문중이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말했다.

돈암서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논산시 연산면 돈암서원.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뉴스1

논산시 연산면 돈암서원.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뉴스1

송시열의 정신이 스며있는 우암사적공원에는 송시열이 학문을 익히고 제자를 가르쳤던 남간정사와 유물관·남간사 등이 있다.

이와 함께 논산시 노성면에 있는 명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0호)은 1709년 윤증 제자들이 지었다. 명재고택에서는 고택 스테이를 할 수 있다. 고택은 아직도 남아있는 수백개의 장독대로 유명하다. 명재고택 초가집 위쪽에는 작은 책방인 노서서재가 있다.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돈암서원은 김장생이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그의 제자들이 김장생의 학덕을 잇기 위해 돈암서원을 1634년 건립했다. 이곳은 201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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