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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정책 실패가 부른 전세의 종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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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30면

남승률 이코노미스트·뉴스룸 본부장

남승률 이코노미스트·뉴스룸 본부장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전세제도가 정확히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오래된 순으로 따지면 중국을 거쳐 고려시대 때 전해졌다는 추정이 있고, 조선 태조 때 ‘해전고(解典庫)’라는 부서에서 전당(典當)을 관장했다는 기록(조선왕조실록)도 있다. 전세가 좀 더 대중적으로 퍼진 건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로 여겨진다. 부산·인천·원산항이 열리면서 농촌에서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 주택 수요가 늘어난 게 배경이란 추론이다. 광복 후에는 해외 동포 귀국과 한국전쟁으로 주택난이 심화됐다. 그 후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화가 빠른 속도로 이뤄지면서 전세가 뿌리를 내린 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1981년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1년 임대제가 나왔고, 89년 임대 2년으로 늘어났다.

적어도 100년 넘게 대중의 주거생활에 큰 영향을 미쳐온 전세는 임차인과 임대인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제도다. 임차인은 자금이 부족해 매입하기 어려운 집이라도 적은 돈을 들여 거주할 수 있고, 전세보증금을 저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임대인도 전세보증금을 사업 자금 등 다른 용도로 쓰거나 집을 장만할 때 부족한 자금을 메우는 ‘갭투자’ 형태로 쓸 수 있었다.

부동산 급등에 전세대출 규제도 강화
임대차법 영향으로 월세 수요 증가

이런 장점에도 금융시장과 금융제도가 탄탄한 선진국에서는 전세가 드문 만큼 국내에서도 ‘전세의 종말’ 또는 ‘전세의 월세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부동산 정책·세제나 대출 규제 변화, 아파트 공급량과 금리 변동 등에 따라 부동산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보다 월세가 상대적 우위를 차지하고는 할 때 특히 그랬다.

올 들어 다시 자주 거론되는 전세 종말론의 강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다. 정책과 환경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2020년 8월과 2021년 6월 순차적으로 시행된 임대차 3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신고제) 영향으로 전세 매물이 귀해졌다. 여기에 종합부동산세 부담도 커지면서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로 눈을 돌렸다. 부동산 가격 폭등만 부른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도 전세의 종말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출 규제가 전세대출 규제로까지 이어졌다. 급기야 세계적인 저금리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한국은행도 잇따라 기준금리를 올리자 세입자들의 대출금리 부담도 커졌다.

이렇게 전세를 둘러싼 상황이 급변하면서 전세에서 월세로 방향을 트는 사람이 늘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한 해 동안 월세 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7만1080건으로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1년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월세 낀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2019년까지 해마다 4만~5만 건을 오르내리다 2020년 6만783건, 2021년 7만1080건을 기록하며 빠르게 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도 2019년 28.1%에서 2020년 31.1%, 2021년 37.4% 등으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43.2%로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최고 수준이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전·월세 전환율(전세보증금을 월세로 전환할 때 적용하는 이율)은 4.1% 수준으로, 아직 시중은행의 전세대출 금리(4~5%)보다 낮다. 그러나 1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은 0.41% 급등했다(전세가는 0.01% 상승). 특히 올해 하반기에는 월세 수요가 더 늘어 월세 부담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오는 8월 계약갱신청구권이 만료되는 매물이 월세 전환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른바 ‘서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부동산 정책의 풍선효과가 ‘부자를 옥죄는’ 부동산 정책의 후유증과 맞물려 전세 종말론을 부채질하고 있는 형국이다. 전세의 시대적 가치가 시장원리가 아니라 정책의 실패 탓에 사라질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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