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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의 영감의 원천] 애잔한 노래 ‘빈센트’ 고흐의 보답받지 못한 사랑 담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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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26면

돈 맥클린과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x92㎝.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1889, 캔버스에 유채, 73x92㎝. [사진 뉴욕 현대미술관]

잔잔하고 감미롭게 ‘스타리, 스타리 나이트~’로 시작하는 유명한 노래, 많은 사람들이 그 시작 구절을 제목으로 알지만 실제 제목은 ‘빈센트’(1972)인 이 노래를 썼을 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돈 맥클린은 20대 중반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만큼 처참한 상태는 아닐지라도 그 역시 인정 받지 못하는 예술가의 쓰라림을 경험하고 있었다. 첫 앨범을 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돈이 없어서 초중고교 수업에서 음악을 가르치거나 지역 행사에서 노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반 고흐에 대해서 동생 테오가 쓴 책을 읽었다.

끊임없이 상처받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

“그(반 고흐)는 한 여성에게 실연을 당했고, 그걸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였어요. 예술가였으니까요. 이해할 수 있어요. 그건 전형적인 미친 것과는 다른 것이었어요. (중략) 그래서 이것에 관한 노래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난 그전부터 그의 작품을 알았고, 그에 대한 책들을 갖고 있었어요. 돈이 없을 때조차도요. 그에게서 뭔가를 느꼈어요. 모든 사람이 그렇지요.” 맥클린은 훗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해서 노래 ‘빈센트’가 탄생했다. 이 노래에서 맥클린은 잔잔한 멜로디와 가사를 통해 반 고흐의 모습을 보답 받지 못하는 연인으로서 그려낸다. 한 여인에게뿐만 아니라 세상과 자연과 모든 사람들에 대해 순수하고 진지한 사랑으로 넘쳤건만 결코 그 사랑을 돌려받지 못한 연인으로서 묘사한다. 노래 마지막 구절에서 맥클린은 묻는다. 반 고흐가 죽은 뒤 지금 떠들썩하게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조차 과연 그의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이토록 부드럽고 잔잔한 노래가 이토록 울컥하는 슬픈 감정을 품고 있는지 이 노래를 완전히 번역해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었다.

빈센트(Vincent)

별이, 별이 빛나는 밤
푸른색과 회색으로 색조를 칠해요
여름날에 밖을 내다봐요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눈으로

언덕에 그림자들
나무와 수선화를 스케치해요
산들바람과 겨울 추위를 색채로 남겨요
눈 덮인 대지 같은 리넨 화폭에

이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걸
제정신을 지키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들을 거예요

별이, 별이 빛나는 밤
눈부시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꽃들
보랏빛 아지랑이로 소용돌이치는 구름
빈센트의 청록색 눈동자에 비쳤죠

색조를 바꾸는 색채
호박석빛 곡물의 아침 들판
고통에 주름진 시든 얼굴들
예술가의 사랑 깃든 손길 아래 위로 받죠

이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걸
제정신을 지키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죠, 어떻게 듣는지 몰랐죠
아마도 지금은 들을 거예요

그들은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에
하지만 당신의 사랑은 여전히 진실했기에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날
그 별이, 별이 빛나는 밤에
당신은 목숨을 끊었죠, 연인들이 그러듯

하지만 내가 있었다면 말했을 거예요, 빈센트
이 세상은 결코
당신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 맞는 곳이 아니었다고

별이, 별이 빛나는 밤
텅 빈 홀에 걸린 초상화들
이름 없는 벽에 걸린 액자 없는 두상들
세상을 바라보고 잊지 못하는 눈을 가졌네요

당신이 만난 낯선 사람들처럼
남루한 옷차림의 남루한 사람들처럼
으스러져 부서져 새로 쌓인 눈 위에 놓인
핏빛 장미의 은빛 가시처럼

이제 이해해요, 당신이 내게 말하려 했던 걸
제정신을 지키려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그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그들은 듣지 않았죠, 여전히 듣지 않아요
아마도 영원히 듣지 않을 거예요

돈 맥클린 작사작곡, 문소영 번역

맥클린의 노래에는 반 고흐의 다양한 그림이 등장한다. 그 시작인 ‘스타리 나이트’, 즉 ‘별이 빛나는 밤’은 반 고흐가 1889년 6월 프랑스 남부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있을 때 그린 것이다. 그가 정신병원에 머문 것은 동생 테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고 노래 ‘빈센트’의 가사처럼 “제정신을 지키려” 한 일이었다.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캔버스에 유채, 73.2x93.4㎝.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빈센트 반 고흐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 캔버스에 유채, 73.2x93.4㎝. [사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1888년 12월에 아를의 ‘노란 집’에서 동료 화가 폴 고갱과 크게 싸우고 발작적으로 자신의 귀를 면도칼로 자른 후에 반 고흐는 처참한 상황에 빠졌었다. 고갱이 떠나면서 아를에 유토피아적인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꿈도 산산조각 났고, 아를 사람들은 그를 위험인물로 여기며 병원에 가두어 달라고 탄원까지 했던 것이다.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그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보다도 이런 사람들의 반응이 더욱 아프다고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상처 받는 여린 영혼의 소유자였다.

반 고흐는 아를 사람들이 생각한 것처럼 정말 미쳤을까? 현대 의학자들은 대체로 그가 조현병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고 있다. 당대의 의사들은 그를 뇌전증(간질)이라고 진단했는데, 이것은 현대에도 일리 있는 진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알코올 남용, 영양실조, 수면 부족, 스트레스가 겹쳐 뇌가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심한 양극성장애(조울증)를 앓았을 것으로 현대 의학자들은 보고 있다. 이러한 발작이 났을 때 그는 오히려 작품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의 그림은 후대의 일부 신화들이 포장하는 것처럼 광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노래 ‘빈센트’는 반 고흐의 작품세계를 정확히 보고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은 병원 창문에서 내다본 밤 풍경을 일필휘지한 것 같지만, 사실 반 고흐가 여러 장소와 시간에 걸쳐 본 풍경을 결합해서 그의 정신이 자연과 조응하는 순간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이 그림을 소장한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따르면 본래 마을 풍경은 그의 병실에서 보이지 않고 왼쪽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더 멀리 떨어져 있다. 밤하늘에 파도 치는 듯한 구름이 달과 별의 광휘와 어우러져 소용돌이치는 것은 작가의 감정의 풍경이 자연 풍경에 겹쳐진 것이다.

고흐 “내 야망, 사랑·고요한 심정서 나와”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5x54㎝. [사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빈센트 반 고흐 ‘자화상’, 캔버스에 유채, 65x54㎝. [사진 파리 오르세 미술관]

노래에 나오는 “눈부시게 타오르는 불꽃 같은 꽃들”은 반 고흐가 1888년 아를 시절에 그린 유명한 ‘해바라기’ 연작을 우선 떠올리게 하지만, 생레미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생명에 대한 찬가로서 그린 ‘아이리스’ 그림을 연상하게도 한다. “보랏빛 아지랑이로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호박석빛 곡물의 아침 들판”은 반 고흐의 많은 그림들에 반복해서 등장하는데 특히 생레미 시절 그린 ‘사이프러스가 있는 밀밭’에는 그 둘이 함께 나타난다.

이 그림에서 돋보이는 또 하나의 요소는 ‘별이 빛나는 밤’에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사이프러스 나무다. 반 고흐는 생레미에서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말했다. “사이프러스는 언제나 내 생각을 사로잡고 있어. (중략) 사이프러스는 선과 비례에서 이집트 오벨리스크만큼 아름답지. 그리고 그 초록색은 특출한 격이 있어.”

키 큰 상록수 사이프러스는 본래 남유럽에서 무덤가에 심는 나무였다. 반 고흐가 그토록 사이프러스를 열심히 그린 것은 1년 뒤 찾아올 자신의 권총 자살을 예감했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그의 사이프러스 그림은 그 어떤 나무 그림들보다도 강렬한 생명력을 분출한다. 타오르는 불꽃처럼 꿈틀거리면서 지상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천상으로 솟구치게 만들어 대기와 별과 달까지 함께 약동하게 만든다. 그의 사이프러스는 죽음의 나무인 동시에 삶의 나무다. 그것은 신화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우주목’인 동시에 죽음과 삶이 하나임을 보여주는 나무다.

이처럼 반 고흐의 그림에는 세상에 대한 회의와 저주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가 그린 사람들의 초상화도 마찬가지로 ‘빈센트’의 노래 가사처럼 “고통에 주름진 시든 얼굴들”이 “예술가의 사랑 깃든 손길 아래 위로 받는다.” 얄팍한 감상이 아닌 인간 모두에 내재한 고통, 좌절된 인정 욕구와 사랑, 근원적 비애, 그럼에도 순간순간 일어나는 삶과 자연에 대한 환희를 반 고흐가 모두 짊어지고 붓질로 토해 주었기에 그는 그토록 사랑받는 것일 것이다.

반 고흐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 내 그림을 통해 나같이 괴상한 사람, 보잘것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주고 싶다. 이게 내 야망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야망은 원한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온 것, 격한 감정이 아니라 맑고 고요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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