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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 수면에 착륙하듯, 벙커샷은 힘 빼고 부드럽게 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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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25면

박원의 챔피언 스윙

지난해 8월 도쿄 올림픽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는 리디아 고. [AP=뉴시스]

지난해 8월 도쿄 올림픽에서 벙커샷을 하고 있는 리디아 고. [AP=뉴시스]

리디아 고는 1997년 서울에서 태어나 유아 시절부터 뉴질랜드에서 자랐다. 어머니의 권유로 다섯 살 때 골프를 시작했다고 알려졌고, 12살이 되던 해에 뉴질랜드 국적을 취득했다. 리디아 고는 많은 기록을 작성해왔는데 가장 큰 족적은 2015년 2월 2일에 17살 9개월이 조금 넘는 나이에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올라선 것이다. 세계랭킹 제도가 도입된 이래 남녀 통틀어 최연소 1위였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뉴질랜드 내 최고의 스포츠인에게 주는 할버그 수프림 상 (Halberg Supreme Award)을 3년 연속 받았다. 이는 국내 골프 팬들에게도 이미 잘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얘기도 있다. 영국 연방인 뉴질랜드는 군사 분야에서 공적을 남기거나 과학, 예술, 문학 분야 또는 공공복지에 공헌을 한 사람에게 메리트 훈장(Order of Merit)을 수여한다. 리디아 고는 2019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멤버(MNZM) 훈장을 받았다. 그 때문에 형식을 중요시하는 문서에서는 리디아 고의 이름이 ‘Lydia Ko MNZM’으로 표기된다.

스탠스 장소 만들면 2벌타 받아

2017, 2019년 우승이 없었던 리디아 고는 지난해 4월 우승 이후 올 시즌 두 번째 대회인 ‘게인브릿지 LPGA 앳 보카 리오’에서 우승을 일궈냈다. 마지막 라운드 16번 홀 파5와 18번 홀 파4 그린 주변에서의 벙커샷이 우승의 원동력이었다. 필자는 LPGA(미국여자프로골프투어) 대회장에서 리디아 고가 벙커샷 연습을 하는 것을 여러 차례 가까이에서 관찰한 바 있다. 매번 느꼈지만, 모래를 치는 소리 자체가 다른 선수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벙커샷 기술이 너무 뛰어나 기록을 뒤져봤다. 2014년 LPGA 멤버가 된 후 2017년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매년 샌드 세이브 부문 톱10에 이름을 올렸고 그렇게 꾸준히 상위 10위에 오른 선수는 리디아 고뿐이니 LPGA 최고의 벙커샷 플레이어임이 틀림없다.

골프장에서 골퍼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 중 하나가 벙커다. 벙커샷 연습을 할 만한 곳을 찾기도 힘들다. 그나마 파3 골프장을 찾아 벙커샷 연습을 하려 볼 몇 개를 치고 나면 관리인이나 뒤 팀의 눈치가 보여 다음 홀로 넘어가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골퍼는 라운드 중 볼이 벙커에 들어가면 실전 샷으로 기술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 때문일까? 가끔 열혈 골퍼들이 바닷가 백사장에서 골프 볼을 치며 벙커샷 연습을 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된다.

그림1

그림1

그림2

그림2

실전 샷에서 조금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벙커샷에 대한 기본 개념과 원리를 이해해 두도록 하자. 이번 글에서는 벙커샷을 잘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 벙커샷을 잘하기 위한 기본은 벙커샷에 대한 적절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림1을 보자. 기러기 혹은 청둥오리가 날아가다 호수에 미끄러지며 착륙하는 모습을 묘사해봤다. 물에 처박히지 않기 위해 발가락 끝을 살짝 들고 발바닥으로 수면의 물을 튕기며 수면 위에 미끄러지듯 착륙한다. 그 원리를 벙커 안에 적용해야 한다. 새의 발가락은 그림2에 표시된 웨지의 리딩 에지에 해당하고, 발바닥은 웨지의 바운스라고 보면 된다. 웨지의 리딩 에지로 모래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뒷면의 바운스가 모래 지면에 퉁겨져 모래를 깊게 파지 못하고 얇게 파며 미끄러지도록 치는 것이다. 클럽 페이스를 많이 열수록 리딩 에지가 지면에서 떨어져 올라오게 되고 바운스는 더 커지게 된다. 따라서 페이스가 많이 열려 있을수록 모래를 얇게 파며 미끄러지기 쉽다. 단, 볼을 직접 치는 것이 아니고 볼 뒤 5~8㎝ 지점 정도의 모래를 먼저 쳐서 튀어 오르는 한 줌의 모래에 밀려 볼이 날아가게 하는 것이 벙커샷이다.

벙커샷에서는 셋업이 특히 중요하다. 웨지의 클럽 헤드가 임팩트를 향해 나아가는 궤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선 미끄러운 모래일수록 양발을 묻어서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한다. 단, 골프 룰은 스탠스를 취할 때 양발로 지면을 단단히 밟을 수는 있으나(place feet firmly), 스탠스의 장소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must not build a stance)“라고 규정하고 있고, 위반 시 2벌타를 받게 되기에 주의해야 한다.

그림3

그림3

두 번째, 벙커샷을 할 때 모래의 저항을 의식해 강하게 치려 하면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스탠스를 넓게 서기 쉽다. 스탠스가 넓을수록 몸통 회전이 덜 되고 볼 위치 선정도 어려워지므로 그림3의 리디아 고처럼 보통의 스윙 스탠스와 비슷한 폭으로 서는 것이 좋다.

세 번째, 양쪽 무릎을 좀 더 구부려 자세를 낮추자. 자세가 낮을수록 스윙 궤도는 완만해지며, 클럽 헤드의 바운스로 모래 지면을 치는 것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도 그래서 무릎을 더 구부려 철저히 자세를 낮춘다.

네 번째, 양발을 모래에 묻고 무릎을 구부려 자세를 낮춘 만큼 그립을 내려 쥐자. 그렇게 클럽이 짧아지게 해야 모래를 지나치게 깊게 파지 않는다. 리디아 고는 모든 클럽을 짧게 쥐는 경향이 있는데 벙커샷을 할 때는 그림처럼 더욱 짧게 쥔다.

클럽 페이스 열고 그립 쥐어야

다섯 번째, 체중은 왼발에 더 많이 실리도록 하고, 반면에 척추는 그만큼 살짝 우측으로 기울인다. 클럽 헤드의 궤도를 완만하게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클럽 페이스를 열고 타깃보다 살짝 좌측을 향하도록 정렬한다. 웨지의 페이스가 열린 채로 완만하게 나아가며 바운스로 임팩트를 만들어내면 볼이 살짝 우측으로 가기 때문이다.

벙커샷을 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그립을 쥔 후 클럽 페이스를 여는 것이 아니라 클럽 페이스를 열어 놓은 상태에서 그립을 쥐어야 한다. 그립을 쥔 채로 클럽 페이스를 열면 스윙 과정에서 바로 다시 닫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모래를 깊게 파게 되고, 볼의 탄도가 낮아지며 그린에 떨어져도 볼이 많이 구르게 된다.

셋업을 마쳤으면 스윙 요령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부드러운 리듬으로 치자. 모든 트러블 샷의 기본은 리듬이다. 특히 골퍼들은 벙커샷을 할 때 모래 저항을 의식해 강하게 치려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프로선수들의 벙커샷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특수 상황이 아닌 이상 그리 강하게 치지 않고 부드러운 리듬으로 친다. 클럽 헤드의 무게를 느끼며 부드러운 리듬을 타는 스윙은 벙커샷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다운스윙 때 팔에 힘이 들어갈수록 손목이 일찍 풀어지며 가파른 다운스윙이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그 결과는 볼 뒤의 모래를 너무 깊게 많이 파는 오류로 이어진다. 힘을 뺀 채로 스윙이 제대로 되면 마치 클럽 헤드가 손목을 푸는 느낌이 들 것이다.

둘째, 힘을 뺀 채로 왼팔을 곧게 펴고 스윙하는 것이 중요하다. 왼팔이 굽혀지면 스윙 아크가 작아지고 웨지의 바운스를 활용하기가 어려워진다. 더구나 왼팔이 굽혀지면 볼과 내 몸과의 유격이 달라지며 일정한 지점의 모래를 치기도 어려워진다.

셋째, 어드레스 상태에서 만들어진 양 무릎의 각도가 그대로 유지되고 위아래로 출렁이지 않도록 하체를 단단히 고정한 채로 벙커샷을 하자. 그래야 볼 뒤의 일정한 지점의 모래를 일관성 있게 칠 수 있다.

넷째, 척추 기울기도 벙커샷 과정에서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 머리가 타깃 쪽으로 덤비면 탑볼을 칠 가능성이 커진다. 반대로 상체가 타깃 반대쪽으로 눕는다면, 그만큼 너무 일찍 모래를 치게 된다.

그림4

그림4

다섯째, 벙커샷의 다운스윙은 완만한 다운스윙 평면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클럽 헤드가 열린 채로 임팩트 구간을 지나며 볼 아래로 미끄러지듯 빠져나간다. 그림4의 리디아 고처럼 백스윙 탑에서 샤프트가 볼을 가리키도록 해보자. 자연스럽게 완만한 다운스윙이 이루어진다. 백스윙과 다운스윙 과정에서 오른쪽 팔꿈치를 높이 들거나 지나치게 몸 뒤쪽으로 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리디아 고의 백스윙 탑과 같은 자세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림4에서 볼 수 있듯이 리디아 고는 백스윙 탑에서 오른쪽 팔꿈치가 몸통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참고로, 10m 이상 되는 긴 거리 벙커샷은 강하게 치기보다는 같은 크기의 스윙과 리듬으로 하되, 클럽을 바꿔서 하도록 하자. 즉 56도 웨지로 하던 벙커샷을 52도 또는 피칭웨지로 부드러운 리듬을 유지하면서 치면 일관성이 크게 향상된다.     ※일러스트 : 허영주

리디아 고 “어드레스 때 체중 왼쪽에 실어야”

리디아 고

리디아 고

필자는 리디아 고에게 벙커샷을 할 때 어떤 점들을 중시하는지를 직접 물었다. 그녀는 독자들을 위해 공유해달라는 요청에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답해줬다:

“거리에 따라 채를 다양하게 선택해서 가급적이면 클럽 페이스를 열고” 샷을 하라.

“어드레스 때 체중이 왼쪽에 실려” 있도록 하라.

“최대한 웨지의 바운스를 활용해서 다운스윙 때도 클럽 페이스가 손보다 먼저 던져지는 느낌으로” 하라.

◆벙커 에티켓 벙커샷 이후 벙커 정리를 깔끔하게 하자. 내 볼이 놓여있는 모래의 지면이 고르지 못해 겪어본 불이익을 다른 골퍼들은 겪지 않도록 배려하자. 벙커 안에서 내 볼이 놓여있는 모래 지면의 상태가 고르지 못하면 단숨에 라운드를 망쳐버릴 수도 있다. 다른 골퍼들을 배려하는 것은 골프의 기본 에티켓이다.

박원 JTBC골프 해설위원. 고려대학교 경영학 석사 및 미시간주립대학교 환경정책학 박사로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다가 미국에서 프로의 길로 나섰다. 모델골프 마스터 인스트럭터, 더 골핑머신 인스트럭터, 퍼팅존 인스트럭터로서 과학적인 지도를 강조하며 전인지 등 국내 유명프로 선수들을 배출했다. 골프다이제스트 국내 최고의 지도자로도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JTBC골프 해설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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