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 팰리스’로 거듭날 발전소…“문화적 촉매제 공간 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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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18면

당인리 문화발전소 설계한 건축가 조민석

서울 마포구 당인리 문화발전소 모형 앞에 선 건축가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1970년대 지어져 수명이 다한 서울화력 4호기와 5호기를 모든 이들이 주체적으로 문화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했다. 김경빈 기자

서울 마포구 당인리 문화발전소 모형 앞에 선 건축가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 1970년대 지어져 수명이 다한 서울화력 4호기와 5호기를 모든 이들이 주체적으로 문화와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설계했다. 김경빈 기자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당인리 문화발전소가 드디어 첫 삽을 뜬다. 2024년 개관을 목표로 올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2004년 이창동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의 ‘창의한국’ 보고서에서 시작된 당인리 서울화력발전소 지상부지 공원화 구상이 20년 만에 결실을 바라보게 됐다.

1930년 서울 마포구 토정로 56번지에 한국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세워진 이래 서울과 수도권의 전력 생산을 담당해 온 당인리 발전소가 발전 설비를 지하화하면서, 수명이 다한 서울화력 4호기와 5호기를 ‘문화발전소’로 전환하는 사업이다. 대지면적 8만 1650㎡, 건축 연면적 2만 7366㎡, 시설규모 지하 2층 지상 6층에 달하는 대규모 리모델링 사업인지라 추진이 쉽지 않았다. 2012년 문체부와 마포구, 중부발전이 업무협약을 맺었지만, 예산확보에 난항을 겪었다. 지난해 말 698억원의 예산확보와 예비타당성 조사를 마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위탁운영기관으로 선정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다.

낙후된 산업시설을 활용한 도시재생이라는 점에서 런던의 테이트모던, 함부르크의 엘프 필하모니홀 등과 비교되는 당인리 문화발전소는 2014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건축가 조민석(56)이 이끄는 매스스터디스가 설계했다. 2018년 설계공모에 뽑힌 ‘당인리 포디움과 프롬나드’ 안은 고층 아파트로 가로막힌 한강변에서 문화와 생태, 예술이 만나는 몹시 예외적인 공간의 탄생을 예고한다.

“한강변 공공의 땅 숨통 틔울 마지막 기회”

당인리 문화발전소 모형. [사진 송유섭]

당인리 문화발전소 모형. [사진 송유섭]

하반기 착공을 앞두고 실시설계에 바쁜 조민석 대표는 “당인리는 한강변에서 ‘공공의 땅’이 숨통을 틔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했다. “20세기 초 20만이던 서울 인구가 1100만까지 팽창했다가 지금은 1000만으로 정체 상태라죠. 한 세기에 도시가 50배 팽창하기 위해 스테로이드를 맞아가며 엄청난 부작용도 있었는데, 당인리는 그런 맹목적인 성장이 끝나면서 결과물로 나온 기회 같아요. 산업에 의해서 촉발된 문화발전소로서 문화와 자연의 생태계가 자본의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게 돌보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인근의 밤섬이 인간과 자연의 오묘한 합작으로 철새의 요람이 됐듯이, 당인리도 문화생태계와 자연생태계를 좀 더 성찰하면서 공존의 의미를 시사하는 공간이 되겠죠.”

1970년대 지어진 서울화력 4, 5호기는 2017년 전력 생산을 마감하고도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공사가 시작되면 5호기는 근대산업유산으로 보존되고 4호기는 골조만 남고 철거된다. 발전소 건물 내부의 뷰는 강변북로에 한강이 막혀 있지만, 거대한 보일러 기계를 휘두르고 있는 ‘캣워크’를 따라 올라가면 지상 18미터 높이의 탁 트인 옥상에서 한강과 밤섬을 마주하게 된다. ‘마포8경’ 중 하나다.

이 옥상공간을 ‘퍼블릭 그라운드’ 삼아 지상에는 홍대부터 밤섬까지 잇는 3개의 보행로가 생긴다. 매스스터디스가 당인리보다도 먼저 설계공모에 당선된 밤섬 생태관찰데크까지 포괄하는 구상인데, 현재 밤섬 사업은 한강 치수를 둘러싼 정치적 이슈로 중단된 상태다. “한강변에 온통 자동차도로와 고층 아파트가 2중 장벽을 치고 있는데, 당인리나 밤섬은 지난 세기 도시의 말단이었기에 지금 기회가 온 것 같아요. 여기도 강변북로는 지나가지만, 당인리는 18미터 위로 올라가서 공공의 땅을 만들고 밤섬 데크는 교각 밑으로 물위에 뜬 공공의 땅을 만들어 하나로 이으려는 계획이거든요. 밤섬은 불확실한 상황이지만, 꿈은 계속 꾸고 있습니다.”

옥상공간은 전시와 전망대 역할을 겸하는 하이퍼 파빌리온이 생기고 푸드트럭도 올라와 취식도 할 수 있는 하늘정원 역할을 하게 된다. 옥상까지 올라가는 캣워크는 뉴욕 허드슨야드의 명물 ‘베슬’을 연상시키는 아슬아슬한 계단을 그대로 살리되 안전하게 난간을 만든다고. 보일러 집진시설을 덜어낸 공간에는 도시농업을 제안했고, 주차장 부지에는 수영장도 짓는단다.

그런데 바로 옆 또 다른 공원을 끼고 ‘세계 최초의 지하 화력발전소’라는 서울복합발전소가 하얀 연기를 내뿜고 있다. 희한하게도 굴뚝을 중부발전 사무동이 끌어안고 있는 모양새다. ‘굴뚝에서 나오는 하얀 수증기는 사람 입김과 같은 현상’이라고 적힌 입간판도 보인다. 미세먼지 배출에 대한 주민 불안감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것이다. “안전하다는 걸 보여주려고 아예 굴뚝을 감싸는 사무실을 차린 거죠. 일단 연료가 석탄이 아니라 천연가스로 바뀌기도 했고, 요즘엔 세계적으로도 공원화된 발전소들이 생기고 있어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소각장을 겸한 열병합 발전소 위에 스키장을 만들었죠.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아요.”

전망 시설을 갖추고 보존될 서울화력 5호기 내부 현재 모습. [사진 매스스터디스]

전망 시설을 갖추고 보존될 서울화력 5호기 내부 현재 모습. [사진 매스스터디스]

기계 설비가 있던 내부는 가변형 공연장과 전시 행사장 등 다양한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는데, 운영을 맡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예술가 주도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국민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콘텐트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사람들의 극장’을 표방한다. 조민석 대표에 의하면 ‘펀 팰리스’ 컨셉이다.

“설계를 보고 누군가 ‘당피두(당인리 퐁피두)’라고 하던데, 퐁피두의 근원이 된 ‘펀 팰리스(fun palace)’가 더 어울리겠죠. 펀 팰리스란 1960년대 영국의 전위적 건축가 세드릭 프라이스가 제시했던 상상의 프로젝트인데, 무겁고 견고한 건축에서 벗어나 변화하는 사회에 건물도 적응해야 한다는 낭만적인 아이디어였죠. 예컨대 오페라하우스가 정해진 유형을 좋아하는 분들이 보존해야 되는 공간이라면, 펀 팰리스는 디지털 기술처럼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로 확장성을 갖는 공간이랄까요.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확장되고 차단되기도 하면서 뭐든지 할 수 있는 영감을 주는 공간을 상상한 건데, 실제로 구현된 적은 별로 없어요. 퐁피두도 겉모습만 비슷하죠.”

운영 면에서의 롤모델로는 옛 장례식장을 개조해 전문 예술가 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 플랫폼으로 자리잡은 파리의 썽 꺄트르(104)가 꼽힌다. 예술가와 일반 대중이 자연스레 섞이면서 협업도 하고 영감도 주고받게 하는 개념이다.

“오페라하우스가 전형적으로 권력과 금력이 키워온 것이라면, 지금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예술이 생산되고 향유되고 있으니 조화롭게 프레임을 짜서 채워나가는 것이 기획자의 비전이겠죠. 탁월하고 실험적인 예술도 만들어져서 멋진 공연에 차려 입고 오는 사람도 있고, 슬리퍼 끌고 텃밭 가꾸러 오는 사람도 있어서 다 한자리에 모일 수 있으면 좋겠어요. SNS가 연결은커녕 너무나 분열로 작동하는 시대잖아요. 우리의 건축적 아이디어들로 인해 이 공간에 좀더 포괄적인 행위들이 문화로 담겨졌으면 하는 게 제 꿈입니다. 요즘 패션 쪽 행사가 많은 DDP도 공간의 힘으로 수요가 생겨났듯이, 당인리에도 그런 문화적 촉매제 역할을 기대해도 좋을 겁니다.”

“평생 다시 안 올 입체적인 도전”

조민석은 충무로에 건축 중인 서울시네마테크를 비롯해 마곡 스페이스K, 강남역 부띠크 모나코, 여의도 에스트레뉴 타워, 남해 사우스케이프 클럽하우스, 제주 다음스페이스닷원 등 건축 자체로 새로운 경험을 이끌어내는 수많은 공간을 설계했다. 그런데 그 모든 프로젝트 중 당인리 문화발전소가 가장 도전이 되는 작업이란다. 사옥 곳곳에 거대한 모형을 비롯해 그간의 진행과정이 빼곡하고, 그의 사무실 벽엔 1960년대 그려진 누렇게 빛바랜 4, 5호기 도면이 붙어있다.

“공공적인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파운드(found) 펀 팰리스’라고 하는데, ‘발견’의 개념이 중요해요. 발명적인 게 아니라 발견적 프로젝트란 거죠. 다른 것들은 주로 백지에서 했었지, 이런 입체적인 도전은 없었죠. 64년 전 손으로 그린 도면과 60년이 된 고철이 다 되가는 건물을 현장에서 스캔해야 하는, 건축이 아니라 고고학 같은 프로젝트예요. 굉장히 집약적이고 규모도 큰데, 평생 다시 안 올 챌린지라고 생각해요. 아마 다 하고 나면 진이 빠지겠지만, 너무 즐겁게 하고 있어요.”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그의 다양한 공간을 관통하는 철학은 ‘불균질’이다. 지난 세기 도시가 과도하게 팽창하면서 만들어진 균질한 공간들이 천편일률적인 사회를 만들었다는 문제의식을 초창기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당인리 문화발전소는 공간 경험을 통해 ‘불균질한 대중’을 구현하려는 조민석 건축의 결정판이 될까. “20세기가 체계성, 합리성에 치우쳐 장소성이 사라진 공간들을 만들었다면, ‘불균질’은 그 반대되는 가치죠. 이제 맹목적 성장시대가 지나고 골목길 같은 잊혀졌던 가치가 다시 드러나면서 젊은 세대들은 달라지고 있잖아요. 양자택일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현실은 훨씬 복합적이고, 답은 모 아니면 도가 아닌 상황에 있죠. 체계성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으면서 불균질한 것을 같이 추구하려는 것이 건축을 하는 저의 태도에요. 그런 게 사회 속에서 건축가의 역할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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