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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레의 공습…금융 대긴축 온다]정권까지 위협하는 물가, 미 40년 만에 최대 상승…‘인플레 파이터’ 연준, 금리 인상 액셀 밟는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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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6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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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지난해 동월 대비 7.5% 급등했다. 물가가 이렇게 많이 오른 건 1982년 이후 약 40년 만이다. 미국의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시장 예상보다 2배 넘는 폭등세를 기록했다. 1월 PPI는 전년 동월 대비 9.7% 상승해 201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식료품·에너지·용역서비스 등 월별 변동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 PPI도 지난해 동월 대비 6.9% 상승했다.

일각에선 상승폭을 근거로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상승)이 정점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흐름은 좀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 근로소득으로 먹고 사는 일반 국민은 똑같이 일을 해도 버는 돈은 줄어드는 현상이 생긴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떨어뜨려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진다. 인플레이션은 경제적 현상이지만, 정치적 파급력도 만만찮다. 최근 카자흐스탄에서는 반(反)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데, 기폭제는 연료 가격 급등이었다.

집권 1년을 맞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대로 주저앉은 근본 원인으로 미국 언론들은 첫손에 ‘물가 대응 실패’를 꼽는다. 이처럼 정권의 운명까지 바꿔 놓을 만큼 파급력이 커 각국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미국의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존재 이유도 단 한 가지다. 미국 경제가 ‘물가 안정’과 ‘최대 고용’을 유지해 세계 1위 자리를 지켜 나가는 것.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연준 등 각국의 중앙은행이 사용하는 정책적 도구가 바로 기준금리 인상이다.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 유동성을 줄여 나간다.

연준이 ‘인플레 파이터’의 모습을 확실히 보여준 건 1970년대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전에 참전하며 무분별하게 달러를 찍어냈다. 이때만 해도 국제통화시장은 달러를 기축통화로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금 1온스의 가치를 35달러에 고정시키는 금본위제도의 특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이 전쟁을 명목으로 달러를 무분별하게 찍어내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하자 달러를 갖고 있던 많은 나라가 금으로의 교환을 요구했고,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긴급성명을 통해 달러와 금의 교환을 중지시켰다(1971년 8월 닉슨쇼크). 달러를 금으로 회수하지 못하게 되면서 전 세계는 유가 급등 등 인플레이션 위협에 놓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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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1982년
‘인플레 파이터’의 등장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미국도 급격한 인플레이션이 덮쳤다. 1970년대 후반 미국의 물가상승률이 평균 14.5%에 이르는 등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이 고착화됐다. 베트남 전쟁 패배의 후유증도 컸지만, 연준 스스로 인플레이션보다는 성장에 신경을 쓰면서 금리를 인하한 영향도 있었다. 1979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폴 볼커는 이 같은 ‘하이퍼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는 1979년 7월 청문회에서 “우리가 보는 대로 모든 수단을 다해야 할 것”이라며 “인플레이션과 싸우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6일 볼커는 지금의 기준금리 격이었던 연방기금금리를 15.5%로 하루 새 4%포인트 인상했다. 이를 당시 언론은 ‘토요일 밤의 학살’이라 불렀다.

볼커는 이듬해에는 금리를 20%까지 끌어 올렸다. 금리가 급격히 뛰면서 경기는 곤두박질쳤다. 기업들은 고금리에 죽겠다고 아우성쳤고, 빚더미에 올라앉은 농민들은 워싱턴DC의 연준 이사회 건물로 몰려와 시위를 하기도 했다. 인플레이션도 잡아야 했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은 정부를 난감하게 만들었다. 금리가 치솟으면서 경기가 악화되자 지지율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미 카터 대통령은 1981년 치러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이 때문에 볼커의 초고금리 정책은 ‘볼커 쿠데타’라고도 불린다. 2019년 12월 8일 볼커의 별세 소식에 카터 전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볼커는 키가 큰 것만큼이나 고집이 셌다”며 “연준 의장으로서 그의 정책은 비록 정치적으로 값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올바른 일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1981년 취임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볼커의 고금리 정책에 반대했지만, 볼커는 고금리 정책을 더욱 독하게 추진했고 금리를 21.5%까지 끌어 올렸다. 볼커가 연준 의장에 취임할 당시 연간 두 자릿수가 넘었던 미국의 물가 상승률은 결국 1983년께 4% 밑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볼커의 초고금리 정책으로 카터 정부 외에 중남미 금융시장도 큰 대가를 치렀다. 저금리를 이용해 단기 채무를 들여왔던 중남미 국가들이 금리가 오르고 경기가 침체되자 어려움에 처한 것이다. 물가를 끌어 내리고자 했던 의도는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은 것이다.

1988~1990년
블랙먼데이와 자산 버블 

이후 미국 경제에 인플레이션 그림자가 드리운 건 1980년대 후반이다. 1987년 10월 19일 미국의 다우존스지수가 하루 새 22.5% 폭락한 이른바 ‘블랙먼데이’가 터지면서 금융시장이 패닉에 빠지자, 연준 의장에 취임한 지 불과 두 달가량 된 앨런 그린스펀이 대규모 유동성 공급을 한 때문이다. 블랙먼데이 직후 그린스펀의 연준은 3개월물 국채 금리를 하루 만에 1.75%포인트 떨어뜨릴 만큼 대규모의 자금을 방출했다. 연준의 기민한 움직임 덕에 전 세계로 확산하던 주가 급락은 진정세를 보였다. 이후에도 그린스펀은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세 번의 금리 인하를 단행, 연방기금금리를 7.25%에서 6.5%까지 끌어내렸다.

하지만 이게 인플레이션과 자산 버블이 돼 돌아왔다. 그린스펀은 1988년 6.5% 선이던 금리를 1989년 3월 9% 초반대로 인상했다. 이듬해 8월 걸프전이 시작되면서 경기가 침체에 빠졌지만, 그린스펀은 금리 인상을 밀어 붙여 인플레이션을 잡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의 지역 금융기관인 저축대부조합들이 대거 자금경색 위기에 몰렸다. 미국 정부는 긴급 원조에 나섰고, 1988년부터 1991년까지 전국적으로 869개의 저축대부조합이 정부 자금지원을 받았다.

그린스펀은 1990년대 중반에도 인플레이션 방어를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저축대부조합 사태가 금융정책 완화로 진정된 뒤 또 다시 인플레이션 우려가 고개를 들 때였다. 당시 3% 선이던 금리는 0.5%포인트씩 세 번, 0.75%포인트 한 번을 포함해 14개월 동안 일곱 차례 기습 인상해 6%까지 뛰었다. 이 충격으로 채권 가격은 폭락했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큰 손실을 입고 외부에 도움을 받아야 했다. 이때의 충격은 ‘채권시장 대학살(Bond Market Bloodbath)’로 불린다. 중남미를 포함한 신흥국들도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중남미 국가들은 저금리 기간 유입된 미국 자금 탓에 주가가 폭등했지만, 금리 인상 이후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주가가 반토막 났다.

2008~2018년
제로금리 시대 도래

2000년대 들어서는 닷컴(IT)버블 사태를 막기 위한 금리 인하로 또 한 차례 인플레이션이 찾아왔다. 연준은 2004년 들어 금리 인상 신호를 보냈고, 그해 6월부터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상승세는 완만했다. 2년간 17차례에 걸쳐 한 번에 0.25%포인트씩 올렸다. 세계 경제가 호황이던 때라 직접적인 여파는 크지 않았다.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졌다. 빌 클린턴 정부(1993~2001년)가 펼친 저금리에 기반한 무주택자의 내 집 마련 정책이 화근이었다. 집값의 대부분을 대출로 빌려줬는데, 2006년부터 집값 거품이 꺼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이른바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터졌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2006년까지 연준 의장을 지냈던 그린스펀은 1990년대 경제 붐 중심에 서면서 ‘마이스트로’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저금기 기조를 유지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도 받는다. 2006년 연준 의장에 취임한 버냉키는 충격 완화를 위해 금리 인하와 동시에 강력한 양적 완화로 돈을 풀기 시작했다. 버냉키는 금융위기 당시 5.25% 선이던 금리를 10여 차례에 걸쳐 제로 금리(0.0~0.25%)로 낮췄다. 버냉키는 2조 달러가 넘는 돈을 뿌려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글로벌 경제를 건져낼 수 있었다.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도 더욱 공고해 졌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금융위기 이후 사실상 제로 금리를 유지하던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그해 12월 9년여 만에 금리를 0.25%포인트 오른 0.5~0.75%로 인상했다. 당시 재닛 옐런 연준 의장은 “금리 정책 정상화의 개시를 너무 오래 미룰 경우 추후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상대적으로 급작스럽게 긴축정책을 취해야 하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며 선제적 금리 인상론을 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금리를 인상한 건 2018년 2월 제롬 파월 현 연준 의장이 취임한 이후부터다. 파월은 네 차례에 걸쳐 금리를 2.25%까지 인상했다.

파월 의장은 그해 10월 “기준금리가 여전히 중립금리와 멀리 떨어져 있다”며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미국 주식시장은 급락장이 연출되기도 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경제 성장세가 둔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시장 불안을 야기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반길 리 없었다. 시장의 반응도 싸늘했다. 결국 파월 의장은 자신의 말을 뒤집고 2018년 금리 인상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8년 12월 한 차례 추가 인상을 한 뒤 미국의 금리는 2~2.5%에서 멈췄다.

2022년~
또 다시 찾아온 인플레이션 

파월은 볼커와 마찬가지로 유례가 없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있다. 코로나19 영향이다. 그러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파월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우려로 치부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인플레이션에 따른 금리 인상에 ‘단호한’ 모습이다. 금리 인상으로 금융시장에 충격이 오더라도, 40년 만의 강력한 인플레이션에 단호히 대처하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3월 자산매입 축소와 금리 인상은 확실해 보인다. 14~15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를 보자.

참석자들이 전망한 목표금리(중간값 기준)는 2022년 0.9%, 2023년 1.6%, 2024년 2.1%이다. 2022년 3차례, 2023년 3차례, 2024년 2차례 금리를 인상하면 나오는 수치다. 향후 3년에 걸쳐 총 8차례 금리 인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경제 전망치는 올해와 내년 각각 3회 금리 인상을 가정하고 있으나, 올해 4~6차례 인상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 번에 금리를 0.5% 인상하는 ‘빅스텝’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한 미국의 금리 인상 시계가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는 만큼 금융시장과 신흥국은 또 다시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최근 미국 주식시장이 급락을 거듭하고, 암호화폐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것도 이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이렇게 출렁이는 건 최근의 인플레이션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볼커 시대까지는 아니겠지만, 연준의 대응이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셀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거에도 경험했듯이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하면 한국을 비롯해 신흥국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통화 약세는 물론, 기업과 정부 재정 여건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상당하다. 코스피는 최근 장중 2600선이 깨지는 등 약세 흐름을 보이기도 했다. 피할 수는 없겠지만,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조원경 울산시 경제부시장. 연세대, 미국 미시간주립대에서 경제·금융을 공부했다. 행시(34회)로 공직에 진출했고 OECD대한민국정책센터 조세센터본부장,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제금융심의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앞으로 10년 빅테크 수업』  『식탁 위의 경제학자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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