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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제작자 "한국에선 넷플릭스 만들기 어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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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를 만들긴 어렵고 차라리 ‘파라마운트’나 ‘HBO’를 사는 게 빠르죠”

영화 ‘광해’, ‘신과 함께’ 시리즈를 제작한 원동연(59·리얼라이즈픽처스) 대표는 국내 OTT(Over The Top) 플랫폼의 글로벌화 전략은 자칫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메가 스튜디오(제작사 연합)가 콘텐트를 만들어 글로벌 OTT를 상대로 협상력을 높이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주장한다. ‘콘텐트 하청 기지가 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 속에서도, 그는 왜 한국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플랫폼을 만들기 어렵다고 말할까. ‘신과 함께’ 드라마화를 준비 중인 원 대표를 만나 구체적으로 물었다.

영화 '신과함께' 등을 제작한 원동연(59)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영화 '신과함께' 등을 제작한 원동연(59) 리얼라이즈 픽쳐스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신과 함께’를 드라마로 제작하는 이유는 뭔가. 영화와 드라마는 조금 다른데.
10년 전에 ‘신과 함께’ 판권을 살 때, 드라마 판권도 같이 샀다. 영화를 만들 때 원작(웹툰)의 방대한 세계관을 2시간짜리 영화에 함축적으로 담는 게 아쉬웠다. 흔히 영화와 드라마를 ‘100m 달리기’와 ‘마라톤’에 비유한다. 영화인들이 드라마를 만들면 ‘단거리 선수가 마라톤을 뛸 수 있느냐’고 묻는데, ‘킹덤’, ‘오징어 게임’, ‘D.P.’ 모두 영화감독들이 만든 드라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을 2시간 안에 함축해서 완결하는 게 더 어렵다. 드라마로 길게 펼치는 건 부담 없다.
드라마는 뭐가 달라지나. 어디서 볼 수 있나.  
영화에선 웹툰 원작 주인공 ‘진기한’을 없애 골수팬들 원성이 많았다. 드라마에선 그가 주인공으로 나와 ‘빌런(악당)’을 물리치는데 협력하는 과정이 나온다. 방송국이 드라마를 독자적으로 편성하기엔 금전적 부담이 클 것 같다. 방송과 OTT에서 함께 방영하거나, OTT 플랫폼 단독 공개를 생각 중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오징어게임', 'D.P.'는 모두 한국 영화인들이 제작한 드라마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오징어게임', 'D.P.'는 모두 한국 영화인들이 제작한 드라마다. 넷플릭스

“OTT플랫폼, 영화 시장의 보완재 아닌 대체재”

한국 콘텐트들의 글로벌 OTT 맹활약, 영화 제작자로서 어떤 변화를 느꼈나.
OTT 플랫폼은 영화 시장 보완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거의 ‘대체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충격받았다. 또 과거엔 영화인들이 영화만 고집했는데, 드라마를 같이 만드는 분위기도 정착됐다.
한국 콘텐트의 연속 흥행, 일시적인 현상일 거란 관측도 있다.  
‘천년만년 흥행한다’고 할 순 없지만 당분간 흥행이 지속할 거라 본다. 세계 젊은이들이 한국 드라마·영화에 매료됐다. 이들은 자막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고정관념도 없다. 또 자국의 콘텐트만 본다는 의무감도 없다. 결국은 ‘웰 메이드’만이 살길이다. 자기 복제를 하면 세계인들의 관심이 떨어질 텐데, 한국은 이미 콘텐트를 구축하기 좋은 생태계를 구축했다.
‘오겜’ ‘지옥’ ‘지우학’ 등 넷플릭스 흥행작은 대부분 장르물이다. 콘텐트 확장성이 떨어질 수도 있다.  
넷플릭스는 이런 장르물이 세계 1위를 할거란 생각으로 픽업한 게 아니다. 이런 취향 구독자를 위해 선택했던 작품들이다. 제작자들과 플랫폼들이 놀랐다. 얼마 전 그 OTT 플랫폼 고위 관계자를 만났더니 “이제 장르 상관없고, 이야기가 세도 상관없다. 재미만 있으면 얼마든지 뽑는다”고 했다. 어떤 이야기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예전엔 ‘관객과 시청자들이 뭘 좋아할까’를 고민했지만, 이제는 어떤 이야기라도 잘 만들면 전 세계 시청자들이 좋아해 줄 거란 자신감이 생겼다. 한국 콘텐트가 브랜드화되어가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지옥','지금 우리 학교는' 모두 장르 성격이 강한 드라마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지옥','지금 우리 학교는' 모두 장르 성격이 강한 드라마로 전 세계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넷플릭스

양질의 콘텐트 생산력과 독창성의 배경은 뭘까.  
웹 소설과 웹툰의 기여가 크다. 과거엔 봉준호·황동혁 같은 몇몇 천재적인 창작자들에게 의지해 콘텐트를 생산했다. 이야기 소재·장르에 한계가 있었다. 또 그들이 만든 콘텐트가 흥할지, 망할지 미리 알 수 없는 예측 불가 복불복 게임이었다면, 이젠 다르다. 젊고 역량있는 창작자들이 수도 없이 웹툰과 웹소설 분야에 진출한다. 그들이 만든 수많은 이야기가 넘쳐난다. 장르도 다양하다. 이렇게 ‘예선’을 통과한 수많은 작품이 영화화를 기다린다. 또 웹툰과 웹 소설을 만들려는 젊은 친구들도 넘쳐난다. 생태계가 튼튼해서 경쟁력은 점점 더 올라간다.

넷플릭스라는 ‘블랙홀’, 국내 콘텐트 시장의 미래는…

글로벌 OTT와 로컬 제작비 격차가 커진다. 국내 시장 위축 우려는 없나.
기존 로컬 시장을 잠식하는 게 아닌, 하이엔드(high-end) 시장이 새로 생겼다. 산업적으로도 긍정적이다. 층위를 나눈다고 오해할 수 있지만, 세계 무대에 진입할 또 다른 기회가 생긴 셈이다. 우려보단 긍정적 측면이 크다.
글로벌 OTT의 K-콘텐트 선호, 제작 가성비도 한몫했다. 이런 메리트가 사라진다면 어떨까.
생각보다 콘텐트 값이 비싸져서 매력이 떨어지면 한국 콘텐트를 안 살까. 그건 아직 모른다. 판단 기준은 구독자들의 콘텐트 소비시간이다. 한국인이나 미국인이나 구독료는 큰 차이가 없는데, 한국 콘텐트 소비시간이 많다면 효용성이 높으니 가격을 더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제작자들은 “구독자들이 한국 콘텐트를 더 많이 보는데, 왜 미국의 반값이냐”며 ‘디즈니+’, ‘HBO 맥스’, ‘애플+’ 등 수많은 경쟁플랫폼으로 떠날 수 있다. 지금의 성과를 3~4년만 이어간다면 더 비싸게 플랫폼을 골라 갈 수 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은 한국 콘텐트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다만 원동연 대표는 "국내 OTT 플랫폼들이 이들을 좇아 글로벌 플랫폼이 되려는 전략을 취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플랫폼은 한국 콘텐트의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다만 원동연 대표는 "국내 OTT 플랫폼들이 이들을 좇아 글로벌 플랫폼이 되려는 전략을 취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고 했다.

토종 OTT가 넷플릭스를 따라잡을 유일한 방법

한국도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 플랫폼 만들 순 없나.
국내 플랫폼이 글로벌화 전략을 쓰는 그 순간 자칫 진흙탕에 빠질 수 있다. 한국에 훌륭한 창작자들이 많다는 걸 믿고 국내 플랫폼을 키운다는 전략으론 한국 소비자만 어느 정도 잡을 수 있다. 근데 한국 콘텐트만으로 플랫폼 경쟁력이 생길까. 글로벌 경쟁이 되려면 해외 콘텐트를 잡아야 하는데 돈을 얼마나 써야 할까. 국내 플랫폼이 연간 수조씩 내고 미국 콘텐트를 사고, 한국콘텐트를 독점하며 해외 구독자를 늘려야 한다. 이게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여기에 돈을 막 쏟아부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 약간의 가능성을 따진다면 차라리 어떤 국내 대기업이 파라마운트, HBO 같은 중견 글로벌 플랫폼을 사서 키우는 게 낫다. 이제 플랫폼끼리 콘텐트 장벽을 치며 경쟁한다. 어디서 돈을 더 주고 해외 콘텐트를 가져올 건가. 지금 국내 콘텐트 제작자들은 IP(Intellectual Property·지식재산권)를 제작비를 대는 글로벌 플랫폼에 다 넘긴다. 그들은 실패 위험을 감수하며 모든 권리를 산 것 아닌가. 우린 창작자들이 모여서 메가 스튜디오(제작사 간 연합체)를 만들어야 한다. 스튜디오 체제에서 재원을 마련해 제작비를 해결하고, IP를 손에 쥔 채 좋은 콘텐트를 만들어서 더 좋은 가격으로 플랫폼들에 경쟁 붙일 수 있지 않나. 
한국 플랫폼은 경쟁력 없을까.   
이렇게 말하면 ‘사대주의다’, ‘왜 한국을 무시하느냐’고 비판하는데, 외국 제작자가 국내 플랫폼에 어떤 매력을 느끼고 콘텐트를 팔까. 미국 ‘워킹데드’를 국내 OTT 플랫폼에 데려온다고 치자. ‘워킹데드’ 제작자에게 동기부여가 될만한 매력이 돈 말고 뭐가 있을까. 인지도, 구독자 수에서 다 밀리는 국내 플랫폼에서 ‘워킹데드’를 사려면 글로벌 플랫폼보다 2배 이상 돈을 더 줘야 한다. 근데 그런 콘텐트를 한두 개만 산다고 글로벌 플랫폼이 될 수 있나. 돈을 얼마나 더 써야할 지 짐작할 수도 없다. 또 이미 OTT 플랫폼 시장은 포화상태다. 개인당 평균 2.6~3개씩 구독한다. 얼마나 매력적인 플랫폼이어야 먼저 구독하던 걸 해지하고 새 플랫폼으로 갈아탈까. 플랫폼 글로벌화 전략이 당장 우리에게 맞는 전략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한국 콘텐트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나도 내 예상이 틀렸으면 하지만 이게 현실이다.
원동연 대표는 "국내 제작사들이 메가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OTT 플랫폼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여 콘텐트를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원동연 대표는 "국내 제작사들이 메가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해 글로벌 OTT 플랫폼들을 상대로 협상력을 높여 콘텐트를 비싸게 판매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진 '지금 우리 학교는' 넷플릭스

말한대로 제작사들이 메가 스튜디오 만든다면, 해외 플랫폼들은 경계하지 않을까.
우리가 ‘오징어 게임’만 말하는데, 망한 콘텐트가 더 많다. 한국의 모든 콘텐트가 해외 플랫폼에서 성공하지 않는다. 플랫폼 입장에선 제작비를 다 대고, 프로덕션 수수료(fee)까지 챙겨주는 데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자체 제작비로 콘텐트를 만든다면 치자. 플랫폼 입장에선 실패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오징어 게임’ 같은 세계 1위 가능성이 높은 한국 콘텐트를 가져올 수 있다. 현재 IP를 갖고 제작비 부담하며, 실패 위험을 다 감당하면서도 제작비의 10~20% 이익을 보장해주는데, 만약 제작비를 한국 제작사에서 대고, 위험 비용도 감수한다면 플랫폼 입장에선 더 큰 이익을 보장해줄 수도 있다. 그래서 국책 사업 등으로 제작 재원만 마련된다면 국내 제작자들은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들과 훨씬 좋은 조건으로 협상할 수도 있다. 물론 시즌2를 염두하고 처음에 계약하겠지만, 만약 IP가 우리 손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오징어 게임’ 시즌1은 넷플릭스에서 틀고, 시즌2는 디즈니+에서 틀겠다고 협상하며 두 플랫폼을 경쟁 붙일 수도 있다. 충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제값을 요구하는 건데, 나쁜 게 아니다. 플랫폼이 경계할 이유가 없다.
정부 조력 가능성도 있던데, 자생력이 약해질 수 있지 않나.  
돈을 마련해주는 것 말곤 (정부는) 도움될 게 없다. 정부가 넷플릭스에 IP 뺏어올 수 있나. 소송 걸릴 수도 있다. ‘오징어 게임’은 10년 동안 빛을 못봤는데, 넷플릭스가 제작비를 내고 창작권을 보장해서 만들 수 있었다. 그런데 몇 차례 성공한다고 정부가 IP 확보하겠다고 나서는 게 말이 될까. 플랫폼들은 다 도망가고 다른 나라 콘텐트를 산다. 정부가 이쪽 전문가도 아니고, 인사이트도 없이 숟가락 얹지 않았으면 한다. 정부는 재원 마련해주고 토대만 닦아줬으면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말았으면 한다.

OTT 전성시대, 방송과 극장은 사라질까

글로벌 OTT 공습에 극장은 위기다.
극장은 설치산업이라 기본적인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런 와중에도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의 국내 관객 수는 약 750만을 기록했다. 미국에서도 상당히 선전했다. 일본에선 ‘귀멸의 칼날’이 일본 역대 1위 관객 수를 차지했다. 극장산업은 무너지지 않을 거라 본다.
극장도 OTT와의 공존 모색해야 하지 않나. 현실인데.
‘오징어게임’과 ‘지옥’을 극장에서 본다면 관람료를 얼마를 내야 할까. 2시간짜리 영화 한 편이 1만원인데, '지옥'은 6편이니 6시간이다. 3만원 내고 6편을 극장에서 본다면 가격 저항감과 거부감이 상당할 거다. 한 달에 약 1만원 내고 플랫폼에 있는 모든 콘텐트를 볼 수 있지 않나. 거실에서 80인치 TV로 봐도 만족스러운데, 3만원 내고 영화관에 갈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결국 극장용 영화와 OTT용 영화는 성격이 많이 달라질 것 같다. 콘텐트 장벽이 생긴다. 극장에 걸릴 영화는 더 블록버스터화되고, 시각 효과도 더 화려해질듯 하다. 반대로 드라마성이 강한 영화나 저예산 영화는 극장 대신 OTT로 갈 가능성이 높다. 거기서 소화 다 된다.
지난해 12월 공개돼 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 인기 1위를 기록한 ‘지옥’. 넷플릭스

지난해 12월 공개돼 전 세계 넷플릭스 TV 시리즈 부문 인기 1위를 기록한 ‘지옥’. 넷플릭스

방송 드라마는 OTT에 어떻게 대항해야 할까.
방송국은 메가 스튜디오 체제를 꾸리기에 최적화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연출·그래픽·미술 등 제작에 필요한 인적·물적 기반을 다 갖췄다. 지금처럼 콘텐트 자체 제작과 방영만 고집하다 보면 적자를 벗어나기 쉽지 않다. 방송 제작자들도 세계 1등 할 가능성이 높은 글로벌 OTT에 뛰어들길 바랄 것 아닌가. 국내 프로야구 리그를 깎아내리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만 1등 할거야’라고 생각하는 프로야구 선수는 없지 않나. 그들도 ‘추신수’,‘류현진’이 되고 싶을테니까. 물론 당장 아침드라마, 주말 드라마가 사라지진 않을 거라 보지만 걸림돌도 많다. ‘19금’ 달고 만든 ‘오징어 게임’을 KBS에서 볼 수 있나. 쉽지 않다. 각자 시장은 지키겠지만 위축되는 건 어쩔 수 없다. 

30년간 영화를 만들어 온 원동연 대표는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자주 냈다. “투자자들이 싫어할 텐데”라고 걱정하면서도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최근 드라마 ‘설강화’ 폐지 청원 논란에 대해서 비판적인 목소리를 냈다. 또 최근 영화인들의 대선 후보 지지 선언 내용 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영화진흥위원회의 ‘시나리오 연구지원 공모’ 과정에서 불거진 ‘여성 서사, 여성지망자 가산점’ 논란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설강화’,‘블랙리스트’ 논란과 ‘표현의 자유’

얼마 전 드라마 ‘설강화’ 폐지 주장을 비판했다.
제작자들에게 경종을 울렸던 일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꼭 지켜져야 할 가치다. 이번 ‘설강화’ 논란은 방영도 전에 아예 ‘방송하지 말라’는 청원이 나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앞으로 창작자들은 자신을 검열하게 된다. 굉장히 위험하다. 정말 역사를 왜곡하고, 지켜야 할 가치를 훼손했다면 모두에게 외면받아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되도록 놔둬야한다. ‘역사를 멋대로 재해석하면 더 큰 부메랑이 온다’는 걸 알게 해서 종식해야지, 입을 막아버리는 건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최근 영화인들이 “블랙리스트 시절 회귀 싫다”며 특정 대선 후보를 지지했고 이를 비판했다.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블랙리스트 사태’는 진영을 떠나서 영화계를 분열시키고 트라우마를 안겨 준 아픈 사건이다. 누가 누굴 지지하는 건 그들의 신념과 철학이라 이론을 제기할 생각이 없지만, ‘블랙리스트라는 암흑으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말하는 건 문제다. 자칫 ‘그 후보를 지지하지 않고 상대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은 블랙리스트 상황이 재현되면 어떤 혜택을 받는 건가’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물론 그런 뜻으로 발표한 건 아니겠지만 이런 구호를 앞세워 지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영화계 '블랙리스트'사태는 진영을 떠나 많은 영화인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과거 정권에서 벌어진 영화계 '블랙리스트'사태는 진영을 떠나 많은 영화인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최근 영진위 공모 관련 ‘여성창작자, 여성 서사 가산점’ 비판했다.
여성 영화인들이 영화계에 더 많이 진출할 수 있게 기회를 주자는 취지였다. 그런 의도라면 나같이 30년 동안 영화 활동한 남성 영화인들이 페널티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가산점 제도로 엉뚱하게 피해보는 건 남성 영화 지망생들이다. 이들은 단 한 번도 어떤 혜택을 경험한 적이 없는데 불이익만 받는다. 남성·여성 영화 지망생은 둘 다 약자인데, 약자들 중에 남성에게만 불이익이 가는 게 공정한가. 영화는 창작의 영역인데, 여성이 약자라는 전제가 옳은지도 모르겠다. 잘못 생각하면 여성 창작자들을 깎아내리는 제도다. 어떤 여성 창작자가 “창작에선 여성이 남성보다 떨어지지”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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