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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은 산재사건, 국가 지키는 '노동'에 최소한의 예의를" [BOOK}.

중앙일보

입력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김승섭 지음
난다

천안함과 세월호. 혹자는 두 사건에서 상반된 기억과 감정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물론 두 배는 객관적으로 달랐다. 각각 군함과 여객선이라는 용도도, 배에 탄 사람도, 침몰 원인도 달랐다. 게다가 한국사회의 이념적, 정치적 지형과 맞물려 두 사건을 보는 시각은 종종 양극단으로 엇갈렸다.
거칠게 요약하면 천안함은 주로 보수, 세월호는 주로 진보의 이슈였다.

오히려 그래서 비슷한 부분을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을 쓴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가 그렇다. 그는 두 사건의 공통점을 이렇게 표현한다.

"트라우마 생존자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폭력적인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자 "상대 진영이라 여겨지는 피해자의 고통을 조롱하는 진영 논리의 폭력성과 편향적 사고가 만연했던 사건"이라고.

세월호 참사 6주기인 2020년 4월 16일. 목포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 프리랜서 장정필

세월호 참사 6주기인 2020년 4월 16일. 목포신항만에 인양된 세월호. 프리랜서 장정필

이 책은 트라우마 생존자, 천안함 생존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2010년 폭침된 천안함에선 장병 46명이 순직하고, 58명이 구조됐다. 58명 중 44명이 장교와 부사관, 즉 직업군인이었다.
저자는 생존자 가운데 24명의 설문조사, 7명의 심층인터뷰 등 2018년 진행한 연구를 기반으로 삼고, 이전에 진행한 세월호 생존자들에 관한 연구 등 여러 연구 경험까지 이 책에 녹여냈다.

책 초반부에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서 천안함 생존장병은 보이지 않는 존재였다"고 저자가 쓴 대로, 사건 직후부터 생존자들의 트라우마는 후순위이거나 가시권 밖이었다. 이들은 병원 입원 중에도 사건 당시를 추궁받고, 사건 발생 2주 만에 기자회견에도 불려 나갔다.

PTSD(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으면서도 정신과 진료가 불러올 군대 내부의 낙인 효과나 비용 등을 이유로 치료를 피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패잔병'이라는 낙인에도 시달렸다. 각종 루머와 비난은 군대밖에서도 쏟아졌다.

2010년 4월 23일. 천안함 함수인양작업 본격 시작.

2010년 4월 23일. 천안함 함수인양작업 본격 시작.

순직자들이 모두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국가유공자가 된 것과 달리, 생존자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는, 특히 PTSD를 근거로 인정을 받는 것이 좁고 험한 길이었다. 상이연금은 제대로 안내조차 받지 못했고, 뒤늦게 신청을 하려고 보면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고통을 견디며 치료를 지연한 것이 불리하게 작용했다.

"천안함 사건은 산업재해 사건"

생존자의 처우와 관련해 저자는 천안함 사건이 '산업재해' 사건이라는 시각을 제시한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군인들이 자신들의 업무를 수행하다 목숨을 잃고 다친 일"이란 점에서다.

산업재해는 일하는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근무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군인·경찰·소방공무원 등 상시적 위험에 노출되는 직종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을 입게 되었을 경우에 조직이 어떻게 대응하느냐 역시 중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저자는 천안함 생존장병에 대한 상이연금 지급과 국가유공자 등록이 일하다 다친 군인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국가를 지키는 '노동'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주장한다.

천안함 침몰 사건 생존 장병 55명이 2010년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옛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을 비롯 현역 장병 51명과 전역 장병 4명 등 모두 55명이다. 최중령 등 장병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 = 김성태프리랜서 ]

천안함 침몰 사건 생존 장병 55명이 2010년 성탄절을 하루 앞둔 12월 24일 옛 전우들이 잠들어 있는 국립 대전현충원을 찾았다. 천안함 생존자 58명 가운데 당시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을 비롯 현역 장병 51명과 전역 장병 4명 등 모두 55명이다. 최중령 등 장병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 사진제공 = 김성태프리랜서 ]

사실 PTSD 관련 연구를 촉발한 1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군인은 열등하거나 나약한 존재로, 심지어 꾀병을 부리는 겁쟁이로 치부됐다고 한다. 지금의 지식으로는 지극히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암만 강인한 사람도 PTSD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군대가 규정하는 '능력 있는 몸'

저자는 PTSD 생존자가 군복무를 지속하는 것이 바람직한 지, 나아가 군대가 규정하는 '열등한 몸' '능력 있는 몸'이 타당한 것인지로도 문제 의식을 확장한다. 이 책이 피우진 중령과 변희수 하사의 사례를 상세히 소개하고 이들에 대한 군의 '심신장애' 판정과 강제 전역 결정을 비판적으로 되짚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알 듯 말 듯 한 이 책의 제목 '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는 피우진 중령이 강제 전역 취소 소송을 제기한 이후 군 인사법 시행규칙이 개정됐다는 소식을 전한 주간지 '한겨레21'의 2007년 기사 본문에서 따온 문장이다. 2007년의 기사에서는 희망적인 의미다. 하지만 2020년 변희수 하사의 경우에서 보듯, 피해자들이 이기는 미래는 쉽게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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