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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골칫거리 된 올림픽 스폰서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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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지영 기자 중앙일보
최지영 경제에디터

최지영 경제에디터

뜨거웠던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절정으로 향하고 있다. 오는 20일 밤 폐회식을 끝으로 막 내린다.

경기 초반, 중국의 국수주의와 개최국에 유리한 편파 판정으로 시끄러웠던 대회가 후반으로 갈수록 선수들의 정정당당한 도전정신으로 빛난 점은 다행스럽다. 한국뿐 아니라 각국 선수들의 선전에 응원과 격려를 보낸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은 뜨거운 응원을 받았지만, 이번 베이징 겨울올림픽은 올림픽 스폰서십 기업 입장에서 보면 곤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비자·인텔·삼성 등 공식 스폰서
1조원 넘게 쓰고도 효과 못 누려
인권 옹호인가, 스포츠 지원인가
국제정치 무대에서 줄타기 신세

사실 상황은 미국 의회가 지난해 7월 스폰서 기업들을 불러모았을 때부터 예견돼 있었다. 인텔, 에어비앤비, P&G와 비자 등은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 의원들로부터 “인권 가치보다 회사 이익을 우선시한다”는 공격을 들었다. 인텔의 매출 중 약 26%가 중국에서 나온다. 또 P&G는 매출의 약 13%, 에어비앤비는 약 12%의 중국에서 번다.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달 초, 올림픽 스폰서 로고가 붙은 피자헛 매장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중국 베이징 올림픽 개막 전인 지난달 초, 올림픽 스폰서 로고가 붙은 피자헛 매장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AP=연합뉴스]

올림픽이 열리기 직전엔 공화당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이 스폰서 기업 중 미국 기업뿐 아니라 삼성전자, 파나소닉, 알리안츠, 도요타 등 다른 나라 기업까지 거론하며 “겨울올림픽 후원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낸 일도 있었다. 이에 대해 지나 러먼도 미국 상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는 기업에 올림픽 후원을 중단토록 압력을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13개 최상위 글로벌 기업 스폰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내는 후원금 총액은 10억 달러(약 1조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이 막대한 돈을 쓰고도 스폰서 기업들은 중국 외의 국가에서는 이를 감추기에 바쁘다. 글로벌 마케팅에 올림픽 로고를 대대적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찾을 수 없다.

2028년까지 올림픽 글로벌 스폰서인 삼성전자 역시 도쿄에 이어 이번에도 올림픽 스폰서십을 국내에 널리 알리지 않는 로키(low-key)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최민정·황대헌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선수촌 내에 마련된 ‘삼성 선수 라운지’에서 갤럭시 S22 스마트폰을 체험하는 모습도 선수들 개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됐을 뿐이다.

삼성전자가 베이징 올림픽을 기념하는 폴더블폰 ‘갤럭시 Z플립3’의 특별 에디션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 전원인 2890명한테 줬다는 사실도 중국 언론을 통해서만 ‘조용히’ 알려졌다.

돈은 돈대로 쓰고 후폭풍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인 기업들 신세는 딱한 수준이다. 비자와 P&G 등 글로벌 스폰서 기업들은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개선)를 평가하는 다우존스 지속가능지수(DJSI)와 FTSE4Good(파이낸셜타임스·런던증권거래소가 만든 ESG 평가지수) 지수의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베이징 올림픽 후원 여부가 이런 ESG 평가 지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보도했다. 소비자에 부정적 이미지를 줄지 모른다는 걱정을 넘어, 주가나 투자자 영향까지 걱정하게 생겼다.

인권 탄압을 무시해 ESG경영을 도외시했다는 비난에 대해선 반론도 있다. 올림픽은 스포츠일 뿐 정치화하면 안 된다는 시각이다. 또 올림픽 스폰서십 기업 대부분이 중국에서 열린 대회 말고도 여러 올림픽을 수십년간 지속해서 후원해 온 것도 사실이다.

1932년부터 올림픽을 후원한 오메가는 중국 인권 탄압에 눈감는 것 아니냐는 뉴욕타임스(NYT)의 질문에 “정치적인 이슈엔 관여하지 않으며 스포츠 그 자체를 지원할 뿐”이란 입장을 밝혔고, 에어비앤비와 P&G 역시 베이징 외에도 자신들이 계약을 체결한 모든 올림픽과 선수들을 지원하는 것이란 해명이다.

베이징 올림픽은 미·중 사이에서 극도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의 처지가 드러난 한 가지 사례다.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인권 탄압이 문제가 된 중국 신장지역 원자재 보이콧 결정과 중국 소비자들의 불매 운동 사이에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글로벌 의류업체 H&M은 신장에서 생산된 면화를 쓰지 않겠다고 밝힌 이후 중국서 일어난 불매운동으로 한 분기에만 매출 7400만 달러(약 880억원)가 사라지는 일도 경험했다.

반도체 같은 이슈에선 한쪽 국가에 협력하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받기도 한다. 글로벌 기업인들은 국적을 불문하고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점을 절감하며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2024년 다음 여름올림픽과 2026년 열리는 겨울올림픽 개최지는 각각 프랑스 파리와 이탈리아 밀라노다. 그땐 정치적 이슈가 없어 기업·선수들이 마음껏 올림픽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