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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명묵이 고발한다

이재명 후보님, 이대남은 취업이 안돼 화난게 아닙니다

중앙일보

입력

임명묵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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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성우의 SNS 포스팅으로 페미 논란이 빚어졌던 '클로저스' 티나 캐릭터(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 유세버스에 오른 이대남. 그래픽=김경진 기자

해당 성우의 SNS 포스팅으로 페미 논란이 빚어졌던 '클로저스' 티나 캐릭터(오른쪽), 사진은 지난해 오세훈 서울시장 유세버스에 오른 이대남. 그래픽=김경진 기자

온갖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20대 대선에서도 유난히 특이한 현상을 하나 꼽자면 ‘이대남 신드롬’일 것이다. 지난해 4월 서울시장 보궐 선거에서 20대 남성들이 압도적으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를 지지하고 당선시키면서 시작됐다. 이대남이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고 국민의힘에 안착한 건 아니다.

이런 와중에 자신들의 정치적 대변자로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에 대한 거의 무한 지지를 보내는 청년 남성층과, 전통적인 정치 문법에 익숙한 인물을 선호하는 국민의힘 기존 당원들의 갈등은 커져만 갔다. 경선 과정에서 계속해서 커지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주자)-이 갈등 구도와 홍준표 의원의 갑작스러운 부상까지 국민의힘은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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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남에 신호 보냈던 이재명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은 국민의힘의 ‘세대 포위’ 시도가 역으로 청년층과 노년층의 세대 갈등으로 번져 전열이 붕괴할 거로 보고 그 틈을 파고들고자 했던 듯하다. 이 후보는 지난해 11월 페이스북에 남초 커뮤니티인 에펨코리아와 디시인사이드 이재명 갤러리에 올라온 게시글을 공유했다. 두 글 모두 청년 남성층의 페미니즘에 대한 분노로 뭉쳐 있었다. 자신들이 희망을 걸었던 홍준표 의원이 국민의힘 대선 경선에서 패배했으니, 이 후보라도 청년 남성층 목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이재명 캠프가 이대남에게 신호를 보낸 것이고, 실제로 윤석열 캠프가 보여준 끝없는 혼란과 맞물리며 이대남을 흔들었다.

하지만 올 1월을 계기로 상황은 완전히 뒤집혔다. 이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한 후 윤 후보가 페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한 줄 선언 이후 2030 남성 커뮤니티는 열광의 환호성으로 뒤덮였다. 즉시 윤 후보 지지율은 순풍을 단 듯이 날아올랐고, 청년 남성층의 지지는 윤 후보에게 안착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닷페이스 출연은 이대남의 반발을 불러왔다. [닷페이스 유튜브 캡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닷페이스 출연은 이대남의 반발을 불러왔다. [닷페이스 유튜브 캡처]

이대녀로 방향 돌린 민주당 

반면 그 무렵 이 후보는 페미니즘 미디어로 알려진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해 “2030 여성이 왜 자신을 지지해야 하는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2030은 남이든 여든 사실 기회의 부족과 불평등, 저성장 구조 때문에 똑같이 어려운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여성들은 그 안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추가의 피해를 보는 것이다. 그러니 기회와 일자리를 더 많이 늘려서 희망을 주는 것이 진짜 해결책이라고 본다. 얼마나 합리적으로 경쟁하게 할 것인지는 좁은 둥지에서 누가 떨어지는지를 결정하는 경쟁인데, 둥지 자체를 키울 생각을 하자.”

젠더 갈등이 극대화한 상황에서, 페미니스트 여성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청년 남성층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고심 끝에 정리한 답변일 것이다. 아마 이재명 캠프와 민주당의 많은 인사는 실제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국민의힘 관계자들 생각도 비슷할지 모른다. 이게 기성세대가 젠더 갈등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라서다. 그리고 이런 인식을 드러낼 때마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가리지 않고 청년 남성층은 여지없이 지지를 철회하고 격렬히 반발했다.

전제부터 틀린 '경제적 박탈론'

청년층에게 부족한 경제적 기회가 문제의 ‘본질’이니, 남녀끼리 싸우지 말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메시지에는 일견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인다. 정말 그럴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애석하게도 이 구도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거다. 지난 수년간 지속하여 온 젠더 갈등의 양상을 주의 깊게 관찰해왔다면 저 메시지의 전제부터 잘못됐다는 걸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젠더 갈등의 원인이 정말 경제적 기회의 축소와 불평등의 심화에 있는지 의심스럽다. 지난 수년간 펼쳐진 젠더 갈등의 역사에서 중요했던 사건을 기억해보자. 강남역 살인사건, 게임 '클로저스'의 티나 성우 교체 사건, 이수역 폭행 사건, 혜화역 시위, 곰탕집 성추행 사건, 대림동 여경 논란, 페미니스트 학자의 유튜버 보겸 비하 논문, n번방 사건, K팝 뮤직비디오·웹툰·웹 소설 검열, 양궁선수 안산 페미니스트 공방…. 갈등 대부분은 성범죄와 폭력 범죄 등 치안 문제, 사법 제도, 문화 콘텐트에 대한 주도권과 검열 문제, 성적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지면 안 되니까’ 서로 부딪힌, 그러니까 갈등을 위한 갈등인 경우도 많았다. 취업이나 주거와 같은 경제적 기회를 둘러싸고 남녀가 경쟁하며 벌어진 사건을 찾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는 과거 SNS 표현과 숏컷 등으로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중앙포토]

도쿄올림픽 3관왕 안산 선수는 과거 SNS 표현과 숏컷 등으로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중앙포토]

젠더 아닌 정체성 싸움 

아마 젠더 갈등의 역사와 문법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애초에 저 개별 사건들이 대체 어떤 일인지부터 감을 잡지 못할 것이다. 사실 저 일일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맥락이 겹쳐 있는 사건들이다. 그러나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젠더 갈등은 경제적 기회의 문제 이전에 문화와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남성이 여성에 가하는 성폭력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여성이 남성을 성범죄자로 무고하는 일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논쟁은 우리 사법 체계의 향방을 묻는다. 대중문화 콘텐트에 성적 표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은 플랫폼과 소비자가 콘텐트를 통제해야만 하는지 묻는다. 특정 발언이 ‘여성혐오 발언’인지, 아니면 특정 제스처가 ‘남성혐오 손가락’인지 따지는 건 어떤가.

이처럼 사법, 문화, 정체성의 문제에 관한 질문에 “경제적 불평등이 심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모자라서”라고 답하는 건 이상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문화와 정체성의 첨예한 문제들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려워서 부차적이고 진지하지 않은 문제로 취급한다는 인상만 주기 좋다. 그리고 남는 것은 “요즘 애들 취업이 어렵다지”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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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선동으로 치부해서야 

하지만 위 사례는 부차적이기는커녕 아주 핵심적이며 진지한 문제다. 문화와 정체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적 선택을 결정하는 본질적인 문제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미국의 갈등은 ‘미국은 어떤 나라여야 하는가’라는 미국 정체성 갈등에서 파생된 것이다. 브렉시트 투표는 영국이 유럽의 일원인지, 아니면 영어권 세계의 일원인지 묻는 정체성의 투표였다. 한국의 대일 불매운동이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고서라도 호응을 얻었던 이유는 일본이 우리 정체성을 공격한다는 여론 때문이다. 이런 사안에서는 ‘정체성의 힘’과 ‘정치적 부족주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들이 청년층의 젠더 갈등만 나오면 취업 문제로 환원하니, 문제에 대한 진지한 태도 자체가 결여된 것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난 5년 동안의 민주당 정권에서 젠더 갈등이 증폭됐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여기 있다. 그들 주장대로 특정 정치 세력이 정치적 이익을 위해서 혐오를 선동했기 때문에 젠더 갈등이 폭발한 게 아니다. 문제의 진짜 원인은 온라인 공간에서 남녀 사이에 발생한 부족 전쟁을 정치권이 대수롭지 않게 본 데 있다. 민주당은 젠더 갈등을 마치 옛 운동권 시절 여성 운동을 하위 ‘부문 운동’ 취급하던 것처럼 안이하게 접근했다. 아마 그 갈등 과정에서 정치적 이익을 얻으면 그만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안이한 판단은 젠더 갈등이 전쟁 수준으로 확대되는 결과만 초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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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후보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대남·이대녀 이슈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다. 사실 이런 맥락이라면 이 후보가 페미니스트인지 혹은 안티 페미니스트인지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진짜 중요한 것은 남녀 간 부족 전쟁이 경제적 영역과 독립된, 정체성과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 일이다. 하지만 정체성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고 ‘축소된 기회의 문제’로 다시 단순화한다면, 갈등은 더 큰 수준으로 증폭될 것이다. 그렇게 지난 5년과 다가올 5년이 한국 청년들이 서로를 ‘한남’과 ‘한녀’라고 부르던 시대로 기억된다면, 정말 애석한 일일 것이다.

[우석훈의 별별시각]경제적 불안이 20대 극우화의 원인

이대남 현상을 경제적 소외에서 기인한 것으로 분석하는 여권의 안이함을 비판하는 임명묵 작가의 글과 관련해 우석훈 교수의『슬기로운 좌파생활』을 인용합니다. 내용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임명묵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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