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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큐, 하비 파머”…러브 콜 쏟아지는 K-농기계, 이유 있었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미 지역에서 한국 트랙터를 구매한 고객이 밭을 갈고 있다. [사진 대동]

북미 지역에서 한국 트랙터를 구매한 고객이 밭을 갈고 있다. [사진 대동]

한국산 농기계(K-농기계)를 향한 전 세계의 ‘러브 콜’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트랙터 수출액은 사상 처음으로 10억 달러(약 1조1200억원)를 넘어섰고, 전체 한국 농기계 수출액은 14억7415만 달러(1조7663억원)에 달했다. 전년 대비 44% 성장한 수치다. 세계 최대 농기계 시장인 미국은 물론 캐나다·호주·베트남 등지에서 주문이 늘고 있고, 지난해엔 소말리아·벨리즈 등지에도 트랙터를 수출했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국내 농기계 기업의 실적도 개선됐다. 국내 농기계 시장 ‘빅3’ 중 하나인 대동은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 1조원을 넘어섰고, TYM도 지난해 역대 최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LS엠트론은 지난해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관련 업계에선 K-농기계가 잘 나가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국내 기업들의 ‘역발상’을 꼽는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글로벌 경쟁사들은 생산 물량을 줄였지만 한국 농기계 기업들은 오히려 제품 라인업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K-농기계 성공의 비결과 한계를 취재했다.

K-트랙터, 어디로 얼마나 수출됐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K-트랙터, 어디로 얼마나 수출됐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①하비 파머(취미 목적 농사꾼) 트렌드 포착

코로나 팬데믹 전에도 북미 시장에선 탈도심, 재택근무, 소규모 취미 농사(하비 팜) 트렌드가 확산 중이었다. LS엠트론 관계자는 “북미 트랙터 시장은 정원 가꾸기, 취미 농장을 중심으로 노령층 인구, 주택 시장 경기에 높은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확산이 이 트랜드에 불을 붙였다. 대동 관계자는 “코로나 때문에 소비자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 사유지 관리를 위한 트랙터 수요가 더 증가할 것으로 봤고, 이 예상이 적중했다”고 전했다. 실제 북미에선 100마력 이하 트랙터 시장 규모가 2020년엔 전년 대비 19%, 지난해엔 10% 성장했다.

이는 한국 기업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대동은 원자재비 상승, 물류 대란에도 생산을 고도화하고 제품을 적기에 공급해 트랙터·운반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북미는 39%, 유럽은 55% 신장했다. 지난해 북미에서 트랙터와 운반차만 2만2000대를 팔았는데 코로나 전인 2019년(1만1900대)에 비해 2배 가까이 늘었다.

TYM은 2020년엔 트랙터 1만3000대를 수출했고, 지난해에는 전년 대비 57% 증가한 1만8000대를 해외에 팔았다. 특히 TYM 매출액의 절반 이상(약 88%)을 북미 시장에서 거뒀다(2021년 상반기 기준). LS엠트론도 매출 중 수출 비중이 70%에 이른다.

한국 농기계 수출액.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 농기계 수출액.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②시장 변화 따른 라인업 구축

대동은 하비 파머가 20~60마력대 중소형 트랙터를 많이 구매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에 따라 출시 기종을 6개에서 12개로 늘렸다. 실내운전석을 선택 사양으로 채택하고, 에어컨, 히터, 틸팅 핸들 등으로 고객 사용 편의성을 높였다. 고객 니즈를 정확히 읽은 것이다.

TYM도 2021년 초 소형 트랙터 T25를 출시해 매출 확대를 이끌어냈다. 각종 레버 손잡이를 인체공학적으로 디자인하고, 안락한 의자, 충분한 다리 둘 공간을 확보했다. 또 큰 공구함과 USB 2개 포트, 스마트폰 무선 충전, 블루투스 스피커도 탑재했다. LS엠트론 역시 아마추어 농부들이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소형 신제품(MT1, MT2 모델)을 내놓았다.

한국 농기계 기업 매출액 최근 3개년 실적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국 농기계 기업 매출액 최근 3개년 실적 현황.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③스포츠 마케팅도 나서

2020년 코로나 팬데믹으로 글로벌 농기계 업체들은 마케팅 활동을 대폭 줄였다. 하지만 대동은 오히려 시장 지배력을 강화할 기회로 여기고 2020년 국내 농기계 업체로는 처음으로 류현진 선수가 소속된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홈구장에 브랜드 광고를 시작했다.

대동 관계자는 “2020년 시범적으로 진행했는데 반응이 좋아 작년에도 했고 올해도 광고를 진행하기로 확정했다”고 말했다. 대동은 이전에도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미국 대학 스포츠 리그에서 마케팅 활동을 했다. 또한 현지인들이 트랙터를 구매할 때 흙과 나무를 치우거나 건초를 나를 때 쓰는 로더(작업기)도 함께 구매한다는 점을 고려해 트랙터 구매 시 로더를 무상으로 지급하는 프로모션을 했다.

④가성비 좋지만 기술 격차는 한계

전문가들은 K-농기계가 글로벌 경쟁 기업보다 가성비는 좋지만, 기술력은 떨어진다고 지적한다. 존 디어(미국), CNH(영국), 구보타(일본), AGCO(미국)이 자율 주행 기술, 로봇 기술 등에서 2~5년 앞서 있다는 것이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은 지난해 11월 보고서에서 “국내 트랙터 기술은 해외 선진국(3~4단계)대비 낮은 직진 자율주행(1~2단계)만 가능한 수준으로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서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자율주행 기술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해 대동과 함께 개발한 자율주행 뿐아니라 자율작업까지 가능한 농업용 트랙터 구성도. [자료 농기평]

농림식품기술기획평가원이 지난해 대동과 함께 개발한 자율주행 뿐아니라 자율작업까지 가능한 농업용 트랙터 구성도. [자료 농기평]

김용주 충남대 바이오시스템기계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정보기술(IT)이 강하지만 복합제어기술을 적용한 고부가가치형 대형 농업기계에 필요한 기술 경쟁력은 열세”라며 “람보르기니가 트랙터를 처음 만들었듯 해외 농기계 기업들은 자동차 관련 기업이 많은데 한국 기업들도 자동차 회사 등과 함께 전기 트랙터, 수소 트랙터 개발도 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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