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 소년, 9살 소녀가 만나 17년 동안 함께 스케이트를 탔다. 그리고 꿈의 무대에서 마침내 정상에 섰다.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 금메달을 따낸 가브리엘라 파파다키스(26)와 기욤 시제롱(27·이상 프랑스)의 이야기다. 중앙일보는 16일 오메가 앰버서더인 두 사람을 화상 인터뷰했다.
파파다키스-시제롱 조는 15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프리댄스 경기에서 136.15점을 획득, 리듬댄스(90.83점)를 더한 합계 226.98점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리듬 댄스와 총점은 세계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파파다키스는 "전체적으로 베이징에서 좋은 기운을 받았다. 모든 선수, 자원봉사자, 올림픽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다 즐거워했다. 그들을 통해 좋은 영향을 받아 더 값진 경험을 쌓았다"고 했다. 시제롱은 "즐거운 여정이었다. 물론 결과가 좋아 더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사람으로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시간"이라고 말했다.
시제롱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순 없을 것 같다. 사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꿈을 꾸고 목표를 세우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긴 시간을 함께 하며 목표와 꿈이 조금씩 자라났다. 지난 올림픽 이후 긴 시간이 지났고, 4년 동안 정말 도전도 많이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위험을 감수했고 어려운 결정을 하기도 했다. 모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아이스댄스는 두 사람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경기다. 프리 댄스에서 둘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우아하고 깔끔한 연기가 강점인 둘의 찰떡 호흡은 '오랜 시간' 덕분이다. 파파다키스가 9살일 때 처음 조를 이룬 둘은 무려 17년 동안 한 번도 파트너를 바꾸지 않고 함께 했다.
파파다키스는 "클레르몽-페랑이란 작은 도시의 같은 동네 같은 클럽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 클럽의 코치라 네 살 때부터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사실 스케이트를 하기 전부터 우리는 서로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몇 년이 지난 뒤 어머니가 둘이 함께 스케이트를 타보지 않겠냐고 했다"고 처음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시제롱은 "처음엔 누군가와 함께 스케이트를 동시에 타본 적이 없어서 조금 두려웠다. 둘 다 서로에게 처음이자 유일한 파트너다. 처음에는 살짝 웃겼다. 혼자서는 곧잘 타면서, 둘이 타려니까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진지하게 임하기보단 재미를 위해 탔다. 그러다 조금씩 열정이 생기고 가능성이 보였다. 서로 열정을 공유한다는 게 혼자 할 때보다 더 큰 의미를 줬다. 서로를, 그리고 스케이팅을 즐겼다"고 말했다.
둘은 빠르게 국제 무대에서 성과를 거뒀다. 2010~11시즌 65위였던 랭킹은 4년 만에 5위까지 올라갔다. 2015년 상하이 세계선수권에서 첫 금메달을 따냈고, 2016년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무서운 경쟁자가 등장했다. 2014 소치 올림픽 금메달 이후 2년간 휴식을 취했던 태사 버츄-스캇 모이어(캐나다) 조가 돌아온 것이다. 2017년 세계선수권에선 버츄-모이어 조가 파파다키스-시제롱 조를 제치고 우승했다.
그리고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두 조는 세계 최고의 자리를 두고 격돌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가 발생했다. 쇼트댄스(지금은 리듬댄스) 경기 도중 파파다키스의 상의 후크가 풀리면서 연기 도중 의상이 흘러내려 왼쪽 가슴 일부가 드러났다. 경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2위에 머물렀다. 프리댄스에선 1위를 차지했지만 결국 합계 점수에서 뒤져 은메달에 머물렀다. 하지만 4년 뒤 베이징에서 둘은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시제롱은 "평창에서는 극과 극을 경험했다. 첫 경기 때는 우리가 보여주려 했던 퍼포먼스를 못 펼쳤다. 정말 어려운 시간이었다. 쇼트댄스가 끝난 뒤, 금메달은 물론,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니 프리 댄스에서 1위를 할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우리의 실력을 증명했다"고 돌이켰다.
2019년 BTS가 파리에서 콘서트를 여는 등 프랑스에선 K-팝 마니아들이 많다. 파파다키스는 "내 친구 중 몇 명이 K-팝에 정말 열광한다"고 했다. 시제롱은 "블랙핑크를 안다. 그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피겨 팬들은 이름 앞글자를 따 페어나 아이스댄스 조를 '~네'라 부른다. 아이스쇼를 비롯해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던 그들에게 '파시네(파파다키스+시제롱)란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파파다키스는 "너무 귀엽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지만, 우리에게 잘 맞는 별명인 것 같다. 재미있는 이름이다. 우리는 서로를 부르는 애칭이 없다. 우연의 일치같지만 팀과 코치들은 우리 보고 이름 앞글자를 붙여 'GG(제제)'라고 부른다"고 했다. 시제롱은 "프랑스어로 스케이팅이 파티나지(patinage)인데 비슷한 어감으로 들려서 신기하다"고 미소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