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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원→2만8700원 150배 폭등…비명 부른 '반도체 칩'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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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TPS746 반도체.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으로, 최근 1년 새 중간 도매상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개당 16센트에서 150배가량 올라 24달러에 팔리고 있다. TI는 올해 안에 미 텍사스주 셔먼에 300㎜ 반도체 웨이퍼 공장을 착공하는 등 반도체 공급난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사진 업체 홈페이지]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의 TPS746 반도체.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으로, 최근 1년 새 중간 도매상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개당 16센트에서 150배가량 올라 24달러에 팔리고 있다. TI는 올해 안에 미 텍사스주 셔먼에 300㎜ 반도체 웨이퍼 공장을 착공하는 등 반도체 공급난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사진 업체 홈페이지]

“지난해 초만 해도 16센트(약 190원) 하던 반도체 칩 하나가 지금 24달러(약 2만8700원)로 150배 올랐어요. 매달 3억~4억원씩 손실을 보고 있습니다.”

대구에서 차량용 내비게이션 부품을 만드는 A업체의 대표는 16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작년 6월부터 헛장사를 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반도체 칩 가격이 100배, 150배로 올라가니 시장이 정상이 아니다”며 “매달 300만원이던 부품 조달비용 지금은 4억원 넘게 든다. 납기도 지켜야 하고, 부품값 상승분은 제때 반영이 안돼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 150배 급등…작년 6월부터 헛장사”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하면서 A사 같은 자동차 2차 협력업체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부품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구하는 건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의 몫이라서다.

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량이 수요에 턱없이 못 미치다 보니 중견 부품사들은 홍콩 등지에 있는 중간 판매상한테 웃돈을 주고 반도체 칩을 구하고 있는 형편이다. 또 다른 B부품사 대표는 “완성차업체와 계약한 물량을 맞추려면 값이 비싸도 반도체 칩을 사와야 한다”며 “별거 아닌 칩 가격이 100배씩 오른 상황이니 반도체 수급이 올해 안에 해소될 수 있을까 싶다”고 걱정했다. 올 상반기부터는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회복될 거란 전망이 많지만 현장에서는 이렇게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경영 실적은 지난해부터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과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부품업체 550여 곳의 지난해 3분기 기준 평균 영업이익률은 1.1%였다. 최근 5년간 평균 3~4%를 유지하다가 부품난이 본격화하면서 실적이 고꾸라졌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556곳 영업이익률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556곳 영업이익률 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한국은행은 자동차부품산업 동향보고서에서 “국내 자동차부품업체는 완성차 생산 차질 여파로 전반적으로 실적이 악화했고, 차량용 반도체를 직접 취급하는 업체는 반도체 가격 인상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부족에 협력업체 경영난 가중

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부품업체(종업원 10인 이상)는 4660여 개, 26만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반도체 부품난을 겪으면서 주요 제조업의 일자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항구 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는 수요 증가로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지만 중소 부품업계는 한계 상황에 몰리는 곳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기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구매 계약 후 1년2개월가량 기다려야 차량을 인도할 수 있다. [사진 기아]

기아 스포티지 하이브리드. 구매 계약 후 1년2개월가량 기다려야 차량을 인도할 수 있다. [사진 기아]

완성차업계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다. 최근엔 1·2차 협력업체에만 반도체 수급을 맡겨놓기 불안해 ‘직접 조달’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작년 말부터 반도체 담당 임원이 수시로 해외 출장을 다니고 있다”며 “완성차업체에서 직접 찾아가면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판단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고 전했다.

독일 인피니온이나 르네사스(일본), NXP(네덜란드) 등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를 대상으로 세계 완성차업체가 달려가 경쟁하듯 재고 관리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의 지리자동차, 미국 GM·포드 등은 직접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도 지난달 실적발표회에서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직접 조달, 완성차 및 협력사 간 공용 반도체의 스왑(교환) 추진 등을 통해 수급 안정화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기기간 1년, ‘마이너스 옵션’도 등장 

반도체 수급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소비자의 불편은 가중되고 있다. 신차를 계약해도 차를 인도받기까지 1년 안팎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최근 사업을 시작한 신모(50)씨는 작년 11월 신형 카니발(9인승)을 계약했지만 올 연말에나 받을 수 있다는 판매사원의 얘기를 듣고 구입을 포기했다. 신씨는 “지방을 오가야 해 당장 차가 필요해서 결국 장기 렌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길어지는 신차 출고 대기기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길어지는 신차 출고 대기기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고차 가격은 계속 올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고차 가격은 계속 올라.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현대차·기아에 따르면 인기 차종은 출고 대기기간이 1년을 넘는다. 스포티지·쏘렌토 하이브리드(HEV)는 지금 계약해도 1년2개월 뒤에나 인도받을 수 있다. 전기차 EV6·아이오닉5와 제네시스 GV60 등도 1년 정도 걸린다.

급기야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신차를 살 때 ‘마이너스 옵션’도 등장했다. 반도체가 들어가는 일부 편의사양을 빼면 출고시기를 앞당길 수 있어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후방 주차 충돌방지나 원격 주차보조 기능을 빼면 차 값을 깎아주고 몇 개월 더 빨리 받을 수 있다”고 했다. GM·벤츠·BMW 등 수입차는 아예 일부 옵션이 빠진 채 판매되고 있다.

한국GM 관계자는 “반도체 부족이 북미·유럽도 똑같다 보니 해외에선 주행·안전 등 핵심 기능과 관련한 반도체 재고관리에 집중하면서 시트 열선·주차보조 같은 편의사양은 한두 개 제외한 채 차를 생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수입차 구매자들 사이에선 “신형이라 차 가격은 올랐는데, 기능은 2021년형보다 못하다”는 불만도 터져 나온다.

중고차값도 신차와 맞먹어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고차도 ‘귀한 몸’이 됐다. 신차를 구입해도 출고까지 오래 걸리고, 기능은 전년 모델만도 못한 경우가 있어 중고차 수요가 늘고 있다.

직영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하이브리드·전기차 중심으로 중고차 시세가 매달 오름세다. 테슬라 모델Y는 이날 시세가 7800만원대로 지난달보다 30%가량 올랐다. 거의 신차 가격(7989만원)과 맞먹는다. 박상일 케이카 팀장은 “신차 대기기간이 길어지자 일부 중고차 시세가 신차 가격을 웃돌기도 한다”고 전했다. 아반떼 하이브리드도 중고차 평균 시세가 2484만원인데, 올해 신차 가격은 2199만~2814만원이다.

차량 반도체 공급난이 본격화한 건 2020년 말부터다. 코로나19 여파에서 차츰 벗어나며 완성차 판매 증가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했지만, 반도체 기업들은 최근 수년간 스마트폰‧가전용 제품 생산에 주력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협력업체 금융 지원방안 내놔야”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차량 반도체 설비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금세 공장이 가동되는 게 아니어서 공급 차질이 길어지고 있다”며 “여기에다 전기차 시대로 전환이 빨라지며 공급난을 부채질하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장 중견·중소 협력업체의 자금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항구 연구위원은 “더욱이 전기차·친환경차로의 전환이 가속화하면 기존 내연기관 중심의 부품 공급망이 도태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세심한 지원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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