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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병력철수 영상 공개…바이든 “침공 가능성 여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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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러시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우크라이나 위기와 관련해 러시아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15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지한 지 불과 세 시간 만에 우크라이나 사태 하나만을 주제로 담화를 발표했다. 담화 요지는 러시아가 주장하는 우크라이나 국경의 병력 철수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며, 15만 명의 병력이 아직 남아 있어 여전히 침공 가능성이 크지만, 미국은 유럽 동맹과 보조를 맞춰 러시아와 고위급 협상을 이어갈 의사가 있다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공격이 언제든지 시작될 수 있다는 기존 평가보다는 누그러진 평가지만,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으면서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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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담화가 나온 배경과 관련, 바이든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협상 의지를 보인 것에 화답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날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된 러시아 병력과 관련해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동맹들은 평가했던 13만 명보다 많은 15만 명이란 숫자를 제시해 정보력을 과시하며 러시아를 압박한 것으로도 보인다.

최근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서방과 러시아의 갈등은 이처럼 진짜 전쟁을 막기 위해 입과 행동으로 더욱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미 언론들은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16일 우크라이나 침공설, 국경지대에 병력 15만 명 집결 등의 정보를 적절한 시점마다 공개하며 러시아를 압박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있다는 신호를 푸틴에게 보내 함부로 행동하기 어렵게 막았다는 이야기다.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러시아 침공이 임박했다고 경보음을 울리고, 경제 보복을 예고하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자국 대사관을 폐쇄해 러시아에 ‘미국의 양보를 기대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낸 것으로 분석했다.

미국은 ‘다면 플레이’도 했다. 러시아엔 만약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 “신속하고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수출 통제와 금융 제재로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고 압박했다. 그럴 경우 러시아와 긴밀하게 연결돼 부수적인 피해가 불가피한 유럽 동맹국들을 향해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다독이면서 새로운 천연가스 공급처 발굴에도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나토와의 대화 의사를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날 모스크바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만난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나토와의 대화 의사를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국경의 병력 집결은 군사훈련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모호성 전략을 택했다. 우크라이나를 북쪽과 서쪽, 남쪽 세 면에서 포위한 것이 실제로 군사행동에 나설 의도인지, 아니면 서방국가를 대상으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장치인지 알 수 없도록 했다.

푸틴 대통령의 목표가 2014년 크림반도 병합 때처럼 우크라이나 영토의 점령인지, 우크라이나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저지 등 요구사항을 관철하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러시아는 나토 병력과 무기의 소련 국가 배치 금지 등을 서방 측에 명문화해 달라고 요구해 왔다.

WP는 전문가를 인용해 푸틴의 머릿속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누구도 그의 의도를 알 수 없다고 평가했다. 서방과의 협상 진척에 따라 목적을 이룰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군사훈련을 종료했다며 병력을 철수하는 선택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NYT는 결국 미국과 러시아는 갈등의 대가가 너무 크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병력 이동과 제재 경고, 대사관 폐쇄, 양국 간 화상 정상회담, 정보의 의도적 유출 등은 얼마만큼의 위험을 감수하고 용인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신경전과 심리전이 실제 전쟁보다 결코 덜 위험하지 않다는 점이라고 NYT는 지적했다. 극도로 예민한 상황에서 오판과 오해가 예기치 못한 결과로 이어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침공 예정일로 지목된 16일을 일단 넘기면 미·러 간 긴장이 완화되는 수순에 들어갈 수도 있지만, 위험이 여전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나토 가입을 일단 보류한다는 메시지를 내놓을 경우 미국이 우크라이나 주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러시아가 주요 요구사항을 얻을 수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4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담 뒤 “나토 가입은 꿈같은 일”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가입 포기를 시사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14일 우크라이나에 10억 달러 차관을 보증하고, 미 수출입은행이 재화와 서비스 조달을 위해 최대 30억 달러(약 3조6000억원)를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국제개발금융공사(IDFC)는 12개 이상 프로젝트에 8억 달러 투자 포트폴리오를 세웠다고 전했다. 경제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를 달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 국방부는 우크라이나 국경 인근에 배치했던 일부 군부대의 철수 영상을 연이어 공개하고 있다. 16일엔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 소속 부대들이 철로를 이용해 원 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며 “복귀 즉시 다음 전투를 위한 재정비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기갑부대가 철수하는 동영상도 공개했다. 전날에도 일부 부대들이 원대 복귀하는 영상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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