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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훈천이 고발한다

"2주 더 가만있으라"는 정부…K방역 깃발 달린 자영업호 침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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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훈천 광주 시민회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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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삭발식을 벌이고 있는 자영업자들. 그래픽=차준홍 기자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인근에서 삭발식을 벌이고 있는 자영업자들. 그래픽=차준홍 기자

방역지원금 100만 원을 받았다. 손실보상 선지급금 500만 원도 받았다. 머지않아 추가로 300만 원의 방역지원금을 더 준다고 한다. 1000만 원까지 보상해야 한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는 걸 보면 앞으로 더 많은 보상금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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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사람 못 받는 손실보상금 

충분하지는 않아도 나는 어쨌든 보상금을 받았다. 반면 우리 카페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사장님은 하루하루가 절망이다. 거래처 주문이 줄어 매출이 추락한 탓이다. 아예 문 닫은 거래처도 있을 만큼 다 같이 힘드니 어쩔 수 없다. 거래처 걱정도 잠시, 과연 거래대금을 받을 수나 있을지 아득하다. 미수금이 깔려있는데 폐업하고 파산신청까지 이미 해버린 거래처와는 송사까지 벌여야 한다. 추락한 매출을 벌충하려고 납품단가를 후려쳐 겨우 대형 거래처를 확보했더니 물가가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거래처는 손실보상금을 받는다는데 납품 사장님은 세금으로 월급 따박따박 나오는 공무원도 받은 ‘전 국민 재난지원금’ 외엔 그 어떤 정부 지원을 받은 적도, 또 받을 길도 없다.

그런가 하면 호형호제하는 동네 주점 사장님은 코로나 19 이후 정부의 방역 대책으로 술장사가 어려워지자 '밥상&술상'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점심 장사를 시작했다. 신용보증재단에서 4300만원을 대출받아 주방시설과 인테리어를 바꾼 다음 주변 공사장을 섭외해 함바집처럼 인부들 식사를 맡았다. 또 평소 취미로 즐기던 갈치낚시를 생계형으로 전환해 단골손님들한테 문자를 보내 판매했다. 주방 아주머니도 없이 부부가 아등바등 일하지만, 대출금 이자와 최소 생계비를 벌기에도 벅차다. 손실보상금 준다는 소식에 얼른 신청했지만 해당 사항이 없단다. 실제 벌이는 코로나 이전보다 형편없이 줄었지만, 외형적 매출이 코로나 이전인 2019년보다 늘었기 때문이란다.

정부가 14조 원 규모의 새해 첫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다. 14조 원의 82%인 11조 5000억 원이 1인당 300만 원의 방역지원금 등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에 쓰인다고 한다. 여야는 추경안을 35조 원에서 50조 원까지 증액해 "더 두텁게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 한목소리로 지원을 부르짖으니 자영업자를 대하는 시민들 눈길은 반대로 싸늘해져 간다. 앞서 중앙일보에 ‘자영업자는 불가촉천민인가’라는 칼럼을 썼더니 ‘표가 되는 불가촉 귀족’이라는 댓글이 달린다.

지독한 방역 편의주의 

지난 1월 '제5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그는 이날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약 40조원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제52차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회의'를 주재하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그는 이날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상 약 40조원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0여 년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고 연일 시끄럽다. 3월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미뤄온 전기료 등 공공요금이 10% 넘게 오를 전망이다. 또 정부가 추경 편성과 적자 국채 발행 계획을 밝히자 국고채 금리는 2.14% 급등했다. 1년 전보다 1.2%포인트나 올랐다. 자연스레 대출 금리가 오른다. 신용 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해 1월 연 3.46%였는데 지금은 5%대 초반이다. 자영업자 1인당 평균 대출액이 2억 2800만 원임을 고려하면 금리 상승으로 인한 연간 이자 부담이 400여만 원이나 늘어나게 된 셈이다. 방역지원금 300만 원 받고 대출금 이자로 400만 원을 토해내게 생겼으니 간단한 셈으로도 큰 손해다.

치솟는 물가만큼이나 위에 쓴 것처럼 사각지대도 큰 문제다. 식자재 납품 사장님과 주점을 식당으로 바꾼 사장님은 선심 쓰듯 뿌려대는 정부의 지원금으로부터 완벽히 소외당한다. 오히려 물가폭등과 대출금리 급등의 손해만 뒤집어쓸 뿐이다. 생존권과 영업권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방역정책을 전환해 달라는 외침은 처참히 외면당한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자영업자들일수록 ‘매달린 홍시’에 불과한 ‘두터운 보상’이란 말의 성찬을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는 정부의 ‘영업제한 2주 연장’조치에 질식한다. 지독한 방역 편의주의이자 무사안일주의다. 정부와 여당은 추경 14조 원이냐, 35조 원이냐의 말치레로 자영업자를 우롱하지 말고 ‘영업 제한 최소화 조치’부터 당장 시행해야 한다.

이참에 불편하지만 꼭해야 할 얘기를 해보려 한다. 
자영업의 근본적인 위기는 사실 코로나 이전부터 ‘내수경제의 불황’과 ‘자영업의 과잉’에서 왔다. 코로나가 끝나도 자영업 위기는 끝나지 않을 거란 얘기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국채까지 발행해서 마련한다는 ‘소상공인·자영업 지원금’이 제대로 쓰여야 한다. 자영업의 위기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구제금융이 되어야 한다. 영업 제한 불만 무마용이나 대선 매표용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꼭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지원하지 못했던 코로나 초기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과오를 되풀이해서도 안 된다. 대신 폐업위기에 직면한 자영업자들에게 집중하여 지원할 것을 제안한다.

마음 놓고 폐업도 못 해 

오늘내일하며 시름시름 앓듯이 연명하는 자영업자들이 있다. 한계상황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이 왜 폐업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걸까?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씩 들어간 권리금과 시설비에 대한 미련? 그건 포기한 지 오래다. 임대차 기간이 종료되지 않아 폐업해도 남은 기간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정부보증 대출이라도 받았다면 폐업과 동시에 상환의 부담이 따른다. 폐업 후 점포를 철거하고 시설을 원상회복해줘야 하는 비용은 또 어떻게 마련하나. 당장 일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막막하기만 하다.

정부는 지난해 폐업한 자영업자에게 ‘폐업점포 재도전 장려금’이란 거창한 문구를 내걸고 폐업 신청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업체당 50만 원 지원이 전부였다. 헛웃음이 나온다. 폐업에 이르기까지 쌓인 적자를 보상할 순 없더라도 폐업 결단으로 들어가는 비용만큼은 보전해줘야 하지 않을까. 방역지원금으로 자영업자 1인당 300만 원씩 나눠준다는 예산을 차라리 ‘폐업 장려금’으로 바꿔서 지원하면 어떨까. 이 정도의 예산이라야 한계상황 자영업자들에게 청산의 결단과 재도전의 희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텐데.

자영업·소상공인은 자신을 스스로 고용한 사업자이자 근로자이다.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잃으면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구직활동을 하고 생활비를 지원받으면서 직업교육도 받을 수 있다. 폐업으로 일과 소득을 잃은 자영업자에게도 이런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지금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률은 5%에 불과하다. 자영업 지원예산을 활용해 고용보험 일시납 가입방식으로 폐업 실직 자영업자들에게 고용보험 가입자와 동일한 조건의 실업급여와 직업교육을 제공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시에 자금이 풀리는 것이 아니라 6개월 이상 순차적으로 실업급여와 구직활동, 직업교육을 통해 지급하는 것이므로 물가와 금리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경기 활성화에 이롭게 작용하는 효과도 기대해 볼 수 있다.

50조, 100조 원까지 쓰이는 자영업 지원 예산을 폐업 장려금과 실직 자영업자를 위한 고용보험 기금으로 운용하면 기존 영업자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자영업 구조조정을 통해 과당경쟁이 완화되면서 영업환경이 개선되기 때문이다.

'총량제'라는 권위주의적 발상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그는 이날 소상공인·자영업자 간담회에서 "마구 식당을 열어서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며 "음식점 허가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 신원시장을 방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그는 이날 소상공인·자영업자 간담회에서 "마구 식당을 열어서 망하는 것도 자유가 아니다"며 "음식점 허가총량제를 운영해볼까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회사진기자단]

혹자는 ‘총량제’나 ‘자격증 제도’를 도입하여 자영업 진입장벽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 자영업 비중은 23.9%로 OECD 평균(10%대)보다 매우 높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이는 규제 일변도인 권위주의적 발상이다. 현재 식품과 미용 등 다양한 업종에서 창업 전 신규영업자 교육을 의무화하고 있다. 새로운 규제를 만들기보다는 이런 신규영업자 교육을 확대·강화해 준비 없는 신규창업을 적절히 제어하는 게 낫다. 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서 제공하는 상권정보제공 서비스와 창업경영 컨설팅을 창업 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봄 직하다. 이건 규제라기보다는 혜택에 가깝다. 이를 통해 신규영업자들은 실패 확률을 줄이고, 사회 전반의 과잉공급 부담은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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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삭풍이 몰아치는 서울 여의도 아스팔트 위에서 자영업자들이 단체로 삭발을 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과 함께 굵은 눈물을 쏟으며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제발 살려달라"고도 했다. "한 시간만 더 영업할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느냐"고 울부짖었다. 650만 자영업 가족들에게 푼돈 한 번씩 던져주며 계속 "2주만 더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침몰하는 자영업 호를 전 국민이 눈 뻔히 뜨고 생중계 당해야 하는가. 이제 정부는 답을 내놓아야 한다.

[조정훈의 반박불가]맞습니다, 돈 벌 기회를 빼앗지 말아야 합니다

배훈천 카페 사장의 글에 대해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국회의원)가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배훈천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