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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선희의 문화예술톡

파리를 접수한 스위스 아트 바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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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

지난 한 주 동안 세계 미술계를 크게 술렁이게 했던 뉴스는 세계 최고의 미술 장터인 아트 바젤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게 됐다는 소식이었다. 아트 바젤을 소유한 스위스 회사인 MCH그룹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트 페어인 피악을 운영하는 RX사가 경쟁했는데, 1000만 달러(약 120억원)라는 거액과 7년 계약 조건을 내건 MCH사의 제안이 결국 채택됐다. 평소 10월에 열렸던 프랑스 미술장터 피악(FIAC)의 날짜도 아트 바젤이 가져가게 됐다. 한마디로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린 것이다.

미술계는 강한 자가 더 강한 자에 의해 쓰러지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 시작된 아트 바젤은 이미 홍콩과 마이애미에 진출하면서 세계에서 가장 파워풀한 아트 페어로서 자리를 잡아 왔다. 그러나 아트 바젤의 파리 진출은 홍콩이나 마이애미 진출과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홍콩이나 마이애미에서 아트 바젤은 상대적으로 미술 시장의 글로벌 위상이 낮았던 곳에서 지역 미술 시장 활성화와 문화 인프라의 확장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세계 최대 미술장터 파리에 상륙
프랑스 예술의 정체성 유지하며
글로벌·로컬 시장 함께 성장해야

하지만 파리에서는 이미 프랑스 브랜드인 피악이 그 역할을 충분히 잘해오고 있었다. 40년 역사를 이어온 피악은 매우 프랑스적인 아이덴티티를 간직하며 세계적인 아트 페어로 성장해왔다. 아트 페어가 열리는 그랑팔레의 아름다운 건축과 높은 천고, 투명한 유리 천정은 피악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트페어로 만들어주었다.

프랑스 최고 미술장터인 피악(FIAC)이 열려온 파리 그랑팔레 내부 모습. 올해부터는 스위스 아트 바젤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AFP=연합뉴스]

프랑스 최고 미술장터인 피악(FIAC)이 열려온 파리 그랑팔레 내부 모습. 올해부터는 스위스 아트 바젤이 그 자리를 이어받는다. [AFP=연합뉴스]

그리고 무엇보다 피악을 세계적인 아트페어로 끌어올린 일등 공신은 바로 ‘파리’였다. 페어가 열리는 그랑 빨레를 나서면 샹제리제 거리와 튈르리 공원, 루브르와 오르세이 미술관, 장식 미술관등의 미술관들, 아름다운 골목들과 상점들, 카페들이 산재해 있다. 피악에 참가하는 세계 메이저 갤러리들은 파리 최고의 식당들에서 컬렉터들을 위한 만찬을 기획하고 연일 칵테일 파티가 이어졌다. 피악 기간 동안의 파리는 파리에서의 삶을 기록한 헤밍웨이가 쓴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는 책을 떠올리게 하곤 하였다.

실제로 프랑스의 대통령들은 늘 영부인을 대동하고 피악을 찾았고 정치인들도 피악을 방문하며 문화가 국가 차원의 중요한 비즈니스임을 인지하고 있음을 과시하고자 했다. 그래서 스위스 아트 페어인 아트 바젤이 파리에서 열리게 된 것에 프랑스 미술계는 그동안 피악이 만들어낸 아트 페어 고유의 성격과 오랜 역사를 통해 이루어진 파리의 문화적 매력을 통째로 뺏기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것이다. 파리의 매력과 프랑스 문화에 대한 클리세로 가득 찬 미국의 드라마 ‘에밀리 파리를 가다’를 패러디하여 ‘아트 바젤 파리를 가다’라는 포스터가 온라인에 등장하기도 했다.

프랑스 미술계 한편에서는 세계 1위의 아트 페어가 파리에 상륙하면서 프랑스 미술계에 신선한 바람이 불고 프랑스 미술 시장이 보다 세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긍정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피악에 참가했던 중소 규모 갤러리들에게는 새로운 아트 페어의 등장으로 자신들의 자리와 이들이 소개해왔던 젊은 작가들의 창작을 소개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리라는 걱정이 앞선다.

아트 바젤과 같이 글로벌 전략을 벌이는 영국의 프리즈 아트 페어는 런던과 뉴욕, 로스엔젤레스에서 열리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서울을 선택하였다. 아트 바젤이 피악을 대체한 것과는 달리 프리즈의 경우는 기존에 존재해왔던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 페어인 키아프와 같은 기간에 개최되면서 한국 미술 시장의 글로벌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렇게 세계적인 아트 페어가 한 도시에 새로 진출할 경우 그 지역에 기존에 존재해왔던 미술 생태계가 위축되리라는 우려와 확장의 계기가 되리라는 희망이 함께 공존하게 된다. 메이저 아트 페어와 메이저 갤러리들의 글로벌한 진출은 그래서 지역의 미술계와 조화를 이루면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신선한 기획과 다채로운 콘텐트를 제시해야 한다. 단순히 장소만 바꿔서 같은 아트 페어를 열면서 페어 주최 측과 메이저 갤러리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고유의 미술계와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끌어안고 확장하고자 하는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

아트 바젤의 디렉터인 마크 슈피글러는 파리 진출에 대해 미술과 디지털 분야, 패션 등이 어우러지는 완전히 새로운 콘텐트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급작스러운 퇴출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피악의 운명과 야심으로 가득 찬 아트 바젤의 행보는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올해 10월을 기다려보자.

최선희 초이앤초이 갤러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