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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반려동물 진료비 30% 낮출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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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

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

“동물병원마다 다른 가격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반려동물 진료비 표준진료수가제가 도입되지 않은 이유는 ‘일정한 반대 집단’ 때문이다.” 민주당 기동민 의원이 방송 토론에서 한 발언이다. 반려동물 가족 1500만 명 시대에 여당 국회의원이 사실과 다른 발언을 버젓이 하는 것을 보면서 매우 놀랐고 서글펐다.

정부는 1998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카르텔 금지 권고에 따라 카르텔 일괄정리법을 시행하면서 변호사·세무사 등 개별법률에 규정했던 전문자격사 9종의 보수 기준을 폐지했다. 당시 대한수의사회의 강한 반대에도 정부는 동물병원의 기존 진료수가제까지 전격적으로 폐지했다. 진료비 결정을 시장에 맡긴 것인데, ‘있을 수 없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나친 규제로 동물병원비 부담
땜질식 수의사법 개정안 고쳐야

2021년 12월 국회는 정부입법으로 제출된 수의사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주요 내용을 보면 중대한 수술시 설명 의무, 예상되는 진료비의 사전 및 사후 고지, 잦은 빈도 진료에 대한 고지 등이 담겼다. 기존에 거론되던 표준수가제와 표준진료비는 논란 끝에 삭제됐다.

우리나라 동물병원의 진료비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기타 단체의 자료를 보더라도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낮다. 아시아에서도 태국과 스리랑카 사이쯤에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동물 의료비 수준이 여전히 고가라고 느끼고 있다. 왜 이런 황당한 괴리가 생겼을까.

국민 개개인이 병원에 가면 본인 부담으로 병원에 지불하는 의료비만 들어가는 게 아니다. 월급에서 납부한 국민건강보험에서도 의료비가 나간다.  일반 국민은 병원에 가지 않더라도 매달 건강보험료(건보료)를 적지 않게 납부한다. 기업 등 사용자가 내는 부담금을 빼더라도 2020년 기준으로 가구당 월평균 건보료는 11만원이 넘는다. 건보료는 계속 인상되는 추세다. 그런데도 얼핏 보기에는 당장 병원에 내는 의료비만 내가 부담하는 병원비라고 오인하기 쉽다. 동물병원 의료비의 경우 사람과 달리 아직 건강보험제도가 없으니 사람이 병원 갈 때 내는 병원비보다 훨씬 부담이 커 보인다. 행위의 유사성만 따져 동물병원 의료비와 사람 의료비를 단순 비교하기 때문에 생긴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반면에 농식품부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월평균 동물병원 진료비는 마리당 4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차이를 정확히 비교하지 않고 동물 진료비는 사람 의료비보다 비싸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깔려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은 이해할 수 있는 측면도 있다. 왜냐하면 아직 우리나라는 동물 보호와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전 세계에서 하위권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뿐만 아니라 소·돼지·닭 같은 농장 동물은 물론이고 야생동물이 학대받는 나라이니 동물에 대한 치료 행위는 사치로 치부되기 일쑤다. 정부가 동물병원을 사치업종으로 분류하고 부가가치세를 물린  배경에도 이런 인식이 깔렸다.

정부가 몇 가지 규제만 개혁해줘도 동물병원 진료비는 지금보다 30% 정도 낮추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물진료비에 부과된 부가세 폐지, 도매상에서 의약품 구매 허용, 동물병원 개설 조건을 1종 근린생활시설로 전환, 자가진료와 약사 예외조항 삭제, 의료 소모품을 사람병원과 동일가격으로 공급, 중소기업 특별세액 감면제도 등을 들 수 있다.

일반의료기관에 적용하는 특례조건을 동물병원에도 적용해주고, 동물병원 진료비에 대한 세액공제 등을 도입한다면 동물 보호자의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동물병원에 대한 지원 없이 규제로 일관하는 땜질식 수의사법 개정은 오히려 진료비를 상승하게 하는 나비효과를 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이제라도 국내 동물병원이 처한 현실을 정확히 조사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1500만 명의 피해를 줄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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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주형 대한수의사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