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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레터 2만통의 주인공…'반일' 뛰어넘은 중국인의 하뉴 사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피겨킹' 하뉴 유즈루(羽生結弦·28·일본)가 베이징 겨울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에서 4위로 메달은 못 땄지만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

 14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 피겨 선수 하뉴 유즈루. 신화=연합뉴스

14일 기자회견에 참석한 일본 피겨 선수 하뉴 유즈루. 신화=연합뉴스

하뉴 "중국 팬에게 2만 통 편지 받았다" 

교도통신, 니칸스포츠 등 일본 매체는 "14일 베이징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하뉴의 기자회견에 카메라 30대와 300여명의 취재진이 몰렸다. 회견장 밖에는 중국인 자원봉사자 수백 명이 모여 환호했다"고 15일 전했다. 하뉴는 기자회견에서 "중국 팬들로부터 2만 통이 넘는 편지를 받았다. 중국 팬이 좋아해 주고 환영해줘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이에 15일 중국 최대 소셜미디어(SNS) 웨이보에는 '중국 팬에게 2만 통 편지를 받은 하뉴' 해시태그가 인기 검색어에 올랐다.

14일 기자회견을 위해 메인프레스센터로 입장하고 있는 일본 피겨 선수 하뉴 유즈루 주위로 많은 취재진과 자원봉사자가 몰려있다. 신화=연합뉴스

14일 기자회견을 위해 메인프레스센터로 입장하고 있는 일본 피겨 선수 하뉴 유즈루 주위로 많은 취재진과 자원봉사자가 몰려있다. 신화=연합뉴스

14일 하뉴 유즈루를 보기 위해 몰려든 중국인 자원봉사자들. EPA=연합뉴스

14일 하뉴 유즈루를 보기 위해 몰려든 중국인 자원봉사자들. EPA=연합뉴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지난 10일 남자 싱글 프리스케이팅 경기가 끝난 후, 하뉴 관련 해시태그가 웨이보 1위를 차지했다. 하뉴가 쿼드러플 악셀(4.5회전) 점프를 시도했다는 내용의 해시태그는 경기 후 2시간 만에 조회 수 3억회 이상을 기록했다. 중국 팬들은 SNS에서 하뉴를 '유즈(柚子)'라고 부른다. '유즈'는 과일 유자인데, 노란 유자가 황금색을 떠올리게 해 중국인들이 좋아한다. 유지는 지난 6일 하뉴가 베이징에 도착했을 때 웨이보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였다.

닛케이 아시아는 베이징 올림픽을 후원하는 한 중국 기업 임원 인터뷰를 인용해 "하뉴를 보고 싶어하는 중국 팬이 많아 피겨 경기 티켓 배정이 치열했다. 그 외 경기 티켓을 원하는 직원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중국은 이번 대회에서 오미크론 변이 확산을 막기 위해 엄격한 방역규제를 따른 일부 인원만 초청 형태로 티켓을 배포했다. 닛케이 아시아에 따르면 하뉴가 중국에서 인기가 치솟기 시작한 건 지난 2017년부터다. 한 국제대회에서 중국 피겨 선수가 3위를 했는데 중국 국기를 거꾸로 들고 있자, 하뉴가 그의 실수를 바로잡아주면서다. 이 영상이 중국 SNS에 퍼지면서 하뉴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많아졌다.

BBC "하뉴 인기, 일본과 중국의 정치적 긴장 초월"

10일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프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중국 팬들이 경기장 밖에서 휴대폰으로 경기 영상을 보며 응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0일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프리 경기장에 들어가지 못한 중국 팬들이 경기장 밖에서 휴대폰으로 경기 영상을 보며 응원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BBC는 "하뉴의 인기는 일본과 중국의 정치적 긴장을 초월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부 관계자조차 올림픽을 앞두고 하뉴에게 격려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하뉴에 대해 일본어로 "최선을 다하고, 자신을 뛰어넘어 더 나은 자신을 목표로 한다. (그가) 올림픽 정신을 몸소 실천하기 때문에 많은 중국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고 썼다. 화 대변인이 특정 외국 선수에 대한 트윗을 올린 것은 처음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미국 주도의 외교적 보이콧에 따라 일본은 정부 대표단을 올림픽에 보내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 선수에 대한 중국 외교부의 우호적인 제스처는 눈에 띈다"고 했다.

중국의 한 하뉴팬은 SCMP와 인터뷰에서 "하뉴에 대한 관심이 애국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의 피겨에 대한 열정 때문에 좋아한다"고 했다. 웨이보에서 한 중국 팬은 "일본의 과거와 현재 행태는 화가 나지만 하뉴에게는 그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그는 대단하다”고 했다. 일본 NHK는 "하뉴의 중국 팬이 일본과 중국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하뉴는 14일 기자회견에서 '마지막 올림픽인가'라는 질문에 "아직 모르겠다. 다음 올림픽이 어디에서 열리는지도 모른다"면서도 "감정적으로 생각하면 다시 한번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다"고 했다. 쿼드러플 악셀 점프에 대해서도 "제대로 착지하고 싶고 내 프로그램을 완벽히 만들고 싶다"면서 의욕을 내비쳤다. 다음 겨울올림픽은 2026년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린다. 하뉴의 나이는 32세가 된다. 남자 피겨 선수들은 여자 선수와는 달리 30대 초반까지 선수 생활을 한다.

중국계 미국인 네이선 첸에겐 '배신자' 비난 난무

10일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건 네이선 첸. AFP=연합뉴스

10일 올림픽 피겨 남자 싱글 금메달을 목에 건 네이선 첸. AFP=연합뉴스

하뉴와 달리 중국계 미국 피겨 선수인 네이선 첸(23)은 남자 싱글에서 금메달을 딴 뒤 중국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고 있다. SCMP는 "웨이보의 첸의 금메달 소식에 '배신자' '중국에서 나가라' '서커스 원숭이 쇼 같다' 등 수많은 인신공격성 댓글이 난무했다"고 전했다. 중국인 부모를 둔 첸은 중국에 친척이 살고 있고,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중국 신장자치구 위구르족 인권 문제를 비판한 미국 아이스댄스 선수 에반 베이츠 의견에 동조하면서 중국에서 역적이 됐다. 아울러 금메달 획득 후, 중국어가 유창하지 못해 중국 인터뷰를 거절하자 비난 목소리가 더 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중 갈등이 심화함에 따라 과거에는 중국계라는 이유로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던 중국계 미국 스포츠 선수들이 '반역자' 취급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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