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군사전문가들의 시선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국경으로 쏠리고 있다. 지난달 9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이 만약 침략으로 이어진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평화와 관련해 일어난 일 중에서 가장 중대한 사건이 될 것이다.”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의 민간 비영리 기관 ISW가 지난달 25일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약 60여개의 러시아 ‘대대전술단(BTC: Battalion Tactical Group)’이 이미 우크라이나 북·동·남부 국경지역에 배치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수의 언론도 “국경지역의 대대전술단 숫자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
러시아 육군의 ‘대대전술단’이 혁신적인 이유는?
특정 국가 또는 지역에 배치된 군사력의 규모는 통상 “00개 사단 또는 00개 여단” 등으로 표현됐다. 이는 제병협동전투를 수행하는 기본 제대가 ‘사단’ 또는 ‘여단’이기 때문이다. 제병협동전투는 보병·기갑·포병 등을 포함한 다양한 병과들이 ‘부대’라는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돼 ‘상승효과(Synergy Effect)’를 발휘함을 의미한다.
고대 전장에서도 창병·궁병·기병이 협조해 작전을 실시하는 것과 동일하다. 현대적 의미에서 제병협동전투 수행제대는 무기체계와 지휘통제 수단 등의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하향됐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군단’,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사단’이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미 육군은 제병협동 전투수행 기본제대를 ‘사단’에서 ‘여단’으로 조정했다. 이 개념 하에 만들어진 3가지 유형의 부대가 기갑여단전투단(ABCT)·스트라이크여단전투단(SBCT)·보병여단전투단(IBCT)이다. 사단은 직할부대 없이 지휘소 중심으로 편성돼 필요시 수개의 여단전투단을 ‘지휘’하는 역할에 충실하게 됐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집권 이후, 러시아도 부대편성에 대한 혁신을 추진해 왔다. 미 육군 전쟁대학(AWC) 알렉산드르 골츠의 연구보고서에 의하면, 러시아는 23개의 보병 및 전차 사단을 60여개의 여단으로 개편했다. 1990년대 체첸과 2008년 조지아 분쟁 개입의 교훈을 반영하고, 미군의 혁신과정을 참고했다고 한다. 2014년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쟁에 개입하면서 제병협동전투를 기존보다 한 단계 더 낮은 부대에서 수행하는 개념을 선보였다. ‘대대전술단’이 바로 그것이다. 미군도 시도해보지 않은, 더 파격적인 부대편성을 실전에서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의 ‘대대전술단’은 어떤 부대인가?
‘대대전술단’은 러시아 육군의 ‘임시적인’ 부대편성(ad hoc formation)이다. 전면전쟁이 아니라 ‘지역분쟁’에 개입하는데 최적화한 부대편성이다.
에이모스 폭스와 앤드루 러소의 연구자료는 대략적인 전차 중심의 '대대전술단' 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전투부대는 1개 전차중대(전차 10대), 3개 기계화보병중대(전체 장갑차 40대)다. 전투지원부대는 대(對) 전차중대·2~3개 포병중대·2개 방공중대 등이며, 소규모 정보·공병·통신·의무부대도 포함돼 있다. 평시 주둔지에 위치한 여단이 분쟁지역으로 출동명령을 받으면, 규모는 작지만 더 완전성을 구비한 ‘대대전술단’으로 부대를 재편성해 출동한다. 여단의 잔여 전투력은 기존 주둔지에서 남아서 필요시 지원하는 방식이다.
대대전술단 지휘관은 중령이며, 전체 병력규모는 약 600~1000명이다. 병사들의 3분의1은 전문계약을 통해 입대한 지원병으로서 근접전투가 가능한 전차·보병·포병·전자전 부대 등에 배치된다. 그 외 3분의2 병사들은 복무기간 1년의 징집을 통해 입대한 병사로서 근접전투 가능성이 낮은 전투지원 및 전투근무지원부대에 배치된다.
병사들의 충원방식 이원화(二元化)는 대대전술단의 운용에도 취약점이 되고 있다. 즉, 근접전투가 가능한 병력이 부족함에 따라 경계·정찰 작전 등을 현지 민병부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기동력·화력 등이 부족한 민병부대와 협조하는 작전이 불가피함에 따라 대대전술단도 과감하고 공세적인 작전이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미 육군 제병협동센터(FMSO)에서 발간한 연구 보고서를 종합하면, 러시아 ‘대대전술단’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대대전술단은 대등한 능력을 갖춘 강대국과의 전면전쟁에 대비하는 부대편성이 아니다. 러시아의 영향권 내에서 발생하는 지역분쟁에 개입하는데 최적화한 부대편성이다. 둘째대대전술단'은 정보·지휘통제·정비·의무 관련 조직이 약해서 작전지속 능력이 부족하다. 공격작전 과정에서 적 지역 종심 깊이 연속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제한될 것이다. 셋째, 러시아 육군도 지역분쟁이 마무리되면 기존 여단중심의 제병협동 전투수행, 사단 중심의 지휘구조로 회귀할 것이다. 다만, 앞으로도 지역분쟁에 개입할 경우 효율성 측면에서 ‘대대전술단’은 여전히 유용한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한국군 부대개편에 주는 시사점은 무엇인가?
지상군의 전투력은 기본적으로 각개 병사나 개별 무기체계에 의해 발휘되는 것이 아니다. 병력·장비 등이 중심이 되는 유형적 요소(Hardware)와 전투수행방법 등이 중심이 되는 무형적 요소(Software)가 결합해 ‘부대’라는 하나의 시스템을 통해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부대편성’의 혁신은 국방개혁의 그 어떤 분야보다 중요하다.
지난해 2월 22일, 국방부는 “2020년 12월 1일 부로 육군의 사단 예하 ‘연대’를 ‘여단’으로 개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기존 ‘연대’ 편성에 정보중대와 포병대 등을 추가하여 ‘여단’로 명칭을 변경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 육군의 부대구조는 1990년대 걸프 전쟁 전후의 미군 부대구조 수준이라고 보는 것이 객관적이다. 현재 한국 육군의 사단 예하 보병여단은 미군의 보병전투여단과 비교했을 때 정찰대대가 없고, 정보·화력자산이 부족하며, 공병·통신부대 등도 여전히 사단 직할대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독일의 유스투스 폰 리비히가 식물의 성장 과정에서 발견한 ‘최소량의 법칙(Law of minimum)’은 부대의 전투력 발휘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부대의 전투력 발휘는 가장 넘치는 기능이 아니라 가장 부족한 기능의 수준에 맞춰진다. 특히, 전투 현장에서는 적이 나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공격하기 때문에 그 부분이 가장 치명적 약점이 될 수 있다.
향후 광범위한 국방혁신을 통해 보다 완전성을 초점을 둔 부대개편이 추진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