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日 뒤통수, 韓 자살골 전적 있다…우려 커지는 사도광산 전쟁

중앙일보

입력

정의용(왼쪽) 외교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의 대면 회담에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항의으 뜻을 전했다. 이에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며 상호 이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외교부 제공]

정의용(왼쪽) 외교부 장관은 지난 12일(현지시간)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과의 대면 회담에서 일본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항의으 뜻을 전했다. 이에 하야시 외무상은 "한국 측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서며 상호 이견이 평행선을 달렸다. [외교부 제공]

한·일 외교장관은 12일(현지시간) 미국 호놀룰루에서 개최한 첫 대면 회담에서 사도광산의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놓고 정면충돌했다. 문재인 정부 임기 말 과거사·독도 및 후쿠시마 오염수 갈등에 이어 한·일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새로운 악재다.

강제동원 역사 '모른 체' 일관하는 日   

사도광산 문제는 향후 한층 심각한 한·일 갈등 사안이 될 소지가 농후하다. 일본 정부는 지난 1일 유네스코에 제출한 세계유산 등재 추천서에 조선인 강제 동원이 이뤄진 일제 강점기를 대상 기간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원활한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세계 최대의 금광이었단 점만 부각하고 강제 동원의 역사는 숨기는 ‘꼼수 등재’이면서 동시에 역사 부정에 해당한다.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연합뉴스]

사도 광산 유적 중 하나인 도유(道遊)갱 내부의 모습. [연합뉴스]

강제 노동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측 태도는 외교장관 회담에서도 드러났다. 외교부에 따르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일본 외무상에게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에 대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하지만 하야시 외무상에게 돌아온 답은 “한국 측의 독자적인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으며 유감스럽다”는 내용뿐이었다.

세계유산 등재를 둘러싼 한·일 갈등은 처음이 아니다. 일본은 2015년 7월 군함도 등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에 등재할 당시에서 강제동원 역사를 부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에 한국 정부는 유네스코 회원국·위원국을 상대로 한 전방위적 외교 활동을 벌였다. 결국 한·일 양국은 막판 협상을 통해 군함도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되 강제동원 사실을 일본 정부가 스스로 인정하는 방향의 합의안을 도출했다.

군함도 강제동원도 약속 어기고 '발뺌' 

2015년 7월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했다. [외교부 유튜브 캡쳐]

2015년 7월 당시 사토 구니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했다. [외교부 유튜브 캡쳐]

이에 따라 당시 일본 정부 대표였던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1940년대 한국인 등이 자기의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강제 노역했고 ▲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 설치 등의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특히 당시 일본의 이같은 발표는 국제사회 앞에서 최초로 일제 강점기 강제 노역 사실을 언급하고 인정했다는 의미를 가졌다.

하지만 세계유산 등재와 동시에 일본은 안면몰수했다.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강제 노동의 핵심인 ‘강제성’을 부인하는 발언을 내놓으면서다. 특히 기시다 외무상은 사토 대사가 강제동원을 인정한 발언 중 ‘forced to work’를 ‘강요된 노동’이 아닌 ‘일하게 됐다’는 의미라는 억지 주장을 폈다.  

일본은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하며 강재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군함도 인근에 강제노역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문조차 설치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은 군함도를 세계유산에 등재하며 강재노역 사실을 알리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일본은 군함도 인근에 강제노역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문조차 설치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연합뉴스]

이후에도 일본은 강제노역의 역사를 알리고 희생자를 추모하겠다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도쿄에 세운 정보센터 등을 통해 조선인의 강제 노역 피해를 미화하거나 왜곡하는 움직임마저 보였다.  

이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지난해 7월 군함도 등에서 자행된 강제노역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제대로 알리라고 일본 측에 공개 경고했다. 이번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정의용 장관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항의하며 “근대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때 일본이 약속한 후속 조치부터 충실히 이행하라”고 촉구한 이유다.

日 조직적 방해에 무산된 세계유산 등재 

2019년 서울시가 공개한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이 담긴 사진.[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제공]

2019년 서울시가 공개한 일본군 위안부의 모습이 담긴 사진.[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 제공]

2017년엔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한국 시도에 일본이 태클을 거는 일도 있었다. 당시 위안부 기록물은 피해자의 증언 기록과 위안부 운영 사실을 증명하는 사료 등 2744건으로 구성됐다. 특히 인권 유린을 당한 피해자들의 직접 발언을 통해 진상 규명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유일하게 대체 불가능한 자료’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일본 측은 ‘위안부는 합법적으로 운영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이어가며 한국 측 기록물을 폄훼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우익단체에서 신청한 ‘위안부와 일본군 군율에 관한 기록’을 반박 자료로 신청했고, 유네스코 분담금 납부를 연기하며 등재 저지에 나섰다. 당시 일본의 유네스코 분담금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0% 규모였다.

결국 분담금을 무기로 한 일본의 압박에 위안부 기록물은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했다. 당시 유네스코는 2018년부터 적용할 예정이었던 “이해 당사국 간에 역사 인식이 다를 경우 심사를 보류한다”는 제도 개혁안을 앞당겨 적용하는 등 일본 측에 유리한 결정으로 일관했다. 한국 입장에선 유네스코를 둘러싼 한·일 외교전쟁에서 뼈아픈 패배를 맞은 셈이었다.

문화재청 심사도 못 넘긴 강제동원 기록물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역사 자료를 관람 할 수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중앙포토]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관련 역사 자료를 관람 할 수 있는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중앙포토]

일본의 조직적 방해뿐 아니라 ‘자책골’로 세계유산 등재가 무산되기도 했다. 2015년 11월 일제 강제동원 기록물에 대한 세계유산 등재 시도가 국내 심사 문턱조차 넘지 못한 채 탈락했다. 당시 강제동원 기록물은 일본이 세계유산으로 군함도 등 근대 산업시설을 등재한 데 대한 ‘맞불’ 성격이었지만 정부는 미숙한 준비와 안일한 대처로 일관했다.

당시 국내 심사를 맡은 문화재청은 “객관적인 자료가 부실해 유네스코의 등재 기준에 미달한다”고 탈락 사유를 밝혔다. 특히 문화재청 관계자는 “일제 강점기 당시의 실증 자료보다는 최근 10년간의 피해자 구술 자료가 많았다. 유네스코의 심의를 받는다 해도 탈락 확률이 높아 우선 등재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며 애초에 세계유산 등재 준비가 부족했다는 점을 꼬집었다.

분담률·위원국 무기로 한 日 공세 예상 

지난 4일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추천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의 첫 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일본의 사도광산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 추천에 대응하기 위한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의 첫 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일본의 조직적 대응에 밀려 연거푸 유네스코 외교전에서 밀린 한국은 이번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맞서 외교부를 주축으로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되는 내년 6~7월에 앞서 유네스코 위원국에 사도광산의 강제 노동 사실을 알리고 일본의 역사 왜곡을 막겠다는 취지다. 14일엔 국회 본회의에서 일본 정부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등재 추진 결정 철회를 촉구하는 결의안이 통과되는 등 정치권도 힘을 보태고 있다.

다만 일본은 유네스코 분담률 2위로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다, 2023년엔 유네스코 위원국이 된다. 한국이 안일한 대처로 나설 경우 또 다시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막지 못한 채 외교전에서 밀릴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 외교부 당국자는 앞서 “일본이 2023년에 위원국이란 게 우리에게 유리하진 않겠지만, 단정적으로 그것 때문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며 “합리적인 생각을 가진, 책임감 있는 (세계유산위원회) 회원국이라면 일본이 또다시 이런 (강제 노역의) 유산을 등재하려는 것에 반드시 문제를 삼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