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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훈 칼럼

강을 건너면 뗏목을 불사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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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최훈 기자 중앙일보 주필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후보 단일화 같은 격변이 없다면 22일 뒤의 대선에서 득표율 과반 대통령이 나오기는 쉽지 않을 터다. 거의 바닥을 찍은 스캔들과 네거티브로 가장 품격 떨어진 비호감 선거라 선거 이후의 후유증 역시 만만치 않을 전망이다. 이 우울한 대선은 역으로 대한민국 20대 대통령의 창업보다 수성(守成)이 훨씬 어려울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당선자는 승리의 강을 건너 온 뗏목을 과감히 버릴 것을 주문하고 있다. 그가 당선 이후 의지해야 할 새 도구는 세 가지다. 포용과 협치, 그리고 미래.

정책연합, 공동정부 등을 통한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와의 단일화가 무산된다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승리할 경우 득표율보다 훨씬 높은 국민 지지를 일궈내야 수성이 수월해질 수 있다. 국회 106석(전체 295명)인 국민의힘 정권은 172석의 민주당을 포함, 189석의 거대한 야당·무소속들과의 동거를 2년 이상 이어가야 한다. 총리 인준부터 조각(組閣) 청문회, 개혁 입법 등 초반부터 여소야대의 가시밭길이다. 취임 한 달도 안 돼 6·1 지방자치 선거라 거대 야권이 6개월 허니문 같은 걸 해줄 리도 만무하다.

과정만큼 후유증 커질 대선 이후
윤석열, 여소야대 극복 최대 난제
이재명, 실용·이념 갈등 해결해야
포용·통합, 미래지향이 공통 해법

윤석열 후보의 우군은 국민뿐이다. 그가 최근 거론한 시스템에 의한 ‘문재인 정부 적폐청산 수사’를 놓고 문 대통령까지 나서 논박이 거셌다. 법을 위반했다면 언제건 법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순리다. 하지만 의도적인 정치적 보복의 악순환만은 피해야 옳다. 5185만 명의 지도자인 대통령의 소명(召命)은 검사나 협량한 정치인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다. 현 정권의 선택적 정의, 내로남불 보복, 줄세우기 검찰 인사에 가장 겁박과 고통을 겪은 이는 윤석열 자신이었다. 그러나 현 정권의 그런 모순과 부조리를 결코 되풀이하지 말라는 게 그에 대한 새 시대의 주문이기도 할 것이다. 검사는 피 묻혀야 하지만 대통령이 스스로 피 묻혀선 나라의 평화란 없다.

중국의 역대 황제 282명 중 자연사(152명)를 뺀다면 정적(政敵) 등 정치 엘리트들에 의한 찬탈이 58%인 76건, 내란에 의한 퇴위가 25%인 32명이었다. 모든 제왕적 권력은 황궁 내 침입로를 가장 잘 아는 전 정권 고위직 출신 등 정치 내부의 적들로부터 무너졌다(『하버드대학 중국특강』). 당선 직후부턴 그러니 밉든 곱든 야당을 찾을 일이다. 즐기던 소맥도 때론 곁들이며 앙금을 풀고 협치를 구하라. 보복의 악순환을 끊을 유일한 이는 바로 그다. 내각은 그야말로 캠프 빚잔치가 아닌 야당조차 거부 못할 에이스들로 채워야 옳다. 서초동 검찰 쪽일랑 쳐다보지도 말라. 연기만 새면 나올 단어가 ‘검찰 공화국’이다.

부동산 정책 정상화, 미·일 동맹 복원 등도 진영을 초월한 민심의 지지가 필수다. 모든 정책은 입안, 입법, 실행 효과에까지 최소 3년. 그의 임기까지 나라 쇄신을 이루려면 어수선해질 2024년 4월 총선까지 단 2년의 시간뿐이다. 오로지 국민만 보고, 앙금 가득 쌓인 뗏목 따위는 버려야 맞다. 그래야 “정권 바뀌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얘기를 듣는다.

민주당의 이재명 후보에겐 더욱 쉽지않은 여정일 터다.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기대했던 52~56%의 국민은 좌절과 체념 속에 비판적 묵인으로 지켜볼 뿐이다. 정책, 세금, 규제로 분배와 복지 등에서 개인의 모든 일상과 자유에 개입하며 ‘기계적 평등’을 지향하던 거대한 전 정권의 기억이 여전할 그들이다.

‘실용’을 내세운 이 후보가 강 건너가 불살라야 할 뗏목은 거대 여당이 신줏단지처럼 모셔 왔던 절대적 가치와 이념이다. 40%에 이르던 친문 세력과 진영은 ‘당선자 이재명’에겐 언제든 빚 상환을 독촉할 채권자일 수 있다. 부동산 정책의 쇄신, 유연한 고용노동 정책, 국익 위주의 실용외교 등 미래로 향할 도처에서 선거 때 밀어 준 우군과의 미묘한 갈등도 배제할 수 없을 터다. 그러니 그 역시 도움을 구할 지원군은 역으로 그를 찍지 않았거나 외면했던 국민들이다.

다행히도 그에겐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등 진보 진영 어른의 도움이 될 가르침이 남아 있다. “세상의 변화를 원한다면 나부터 변해야 한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으로 문제를 풀라”(김대중), “경제 활력, 경쟁력 위주인 보수의 주제를 개인적으론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보수든 진보든 결국 먹고살자는 얘기 아닌가. 진보의 주장, 비판도 보수와 똑같이 엄격한 실증적 검증을 해봐야 한다”(노무현). 이게 ‘문재인 시즌 2’가 아닌 ‘이재명 새 정부’로 가는 길 아니겠는가. 그 첫걸음 역시 세상 널리 인재를 구하며 상처받은 모두를 보듬는 포용과 통합으로 시작해 달라.

향후 5년, 격변의 시대다. 경쟁자는 여-야, 진보-보수가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와 광둥의 실리콘밸리, 개도국의 추격이자 어느 차고에서 스티브 잡스를 꿈꾸는 세계의 젊은이들이다. 새 당선자는 뗏목에 실려 왔던 정치적 보복과 꼰대적 이념, 자유와 창의를 억눌렀던 규제와 절연해 달라. 그리고 미래로의 주역인 우리 젊은이들을 신나게 전진케 해 달라. 한 달 뒤 대통령직 인수위 워룸(war room)의 첫 간판은 ‘신산업 규제 혁파’와 ‘스마트한 청년 일자리 창출’이길 간절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