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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강수 논설위원이 간다

성남FC 후원금 수사, 3년 7개월만에 원점...박하영(전 차장검사)"바른 길 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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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조강수
조강수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박하영 전 차장검사가 퇴임식을 갖고 떠난 다음날인 지난 11일의 성남지청 본관 전경   조강수 기자

박하영 전 차장검사가 퇴임식을 갖고 떠난 다음날인 지난 11일의 성남지청 본관 전경 조강수 기자

수사 무마 의혹 사건이 성남지청에서 터졌다. 청내 1, 2인자인 박은정(50·사법연수원 29기) 지청장과 박하영(48·31기) 차장검사가 프로축구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 수사를 놓고 부딪쳤고 박 차장이 항의 사직했다. 지난 2019년 3월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에서 파생한 안양지청 수사 외압 사건으로 이성윤 서울고검장 등이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수사 내압(내부 압력)'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치권력과 긴장 관계여야 할 검찰이 안에서 반목하며 나타난 현상이다. 막무가내 밀어붙인 검찰개혁과 정치인 출신 법무부 장관들에 의한 편향 인사로 둘로 쪼개진 결과라는 지적이 많다. 권력이 아니라 국민을 불편하게 하는 내압 사태의 의미를 짚어봤다.

성남지청 차장검사 사직의 전말 #김학의 불법출금 수사 외압 이어 #성남FC 후원금 수사 내압 터져 #김오수 총장 관여 여부도 주목 #"이 정부 수사 막는 유전자 있나"

'성남FC 후원금' 사건 수사 방향을 놓고 박은정 성남지청장과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낸 박하영 당시 차장검사가 지난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성남FC 후원금' 사건 수사 방향을 놓고 박은정 성남지청장과 갈등을 빚다가 사표를 낸 박하영 당시 차장검사가 지난 10일 수원지검 성남지청에서 퇴임식을 마친 후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야구의 희생번트에 빗댄 사직 사유
 지난 11일 성남시 수정구 남한산성 입구역 4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바로 성남지청 정문이 보였다. 언덕배기를 걸어 올라 본관 건물로 갔다. 안으로 들어서자 전자출입문과 코로나19 방역지침문이 막아선다. 방호원에게 기자 명함을 주고 지청장 면담을 신청했다. 얼핏 주변을 훑어보니 '청렴은 앞에 두기 부패는 거리두기'라는 푯말이 눈에 들어왔다. 고지식한 공무원식 패러디에 피식 웃음이 났다. 이리저리 연락하던 방호원이 외부 인사는 만나지 않겠다는 지청장 메시지를 전한다. 지청장실 201호, 차장검사실 214호로 적힌 안내판을 지척에 두고 성과 없이 돌아서면서 그러려니 했다. 예상대로였다. 가장 어려운 취재 중 하나로 검사 입 여는 것도 들어가지 않던가.
 한 가지 단상이 머리를 스쳤다. 차장검사실은 비어있겠군. 맞다. 17년차 검사 박하영은 전날(10일) 이 건물 어딘가에서 퇴임식을 갖고 검사직을 던졌다. 지난달 25일 검찰 내부망에 사의를 표명한 지 18일 만이다. 자신의 사직을 야구의 '희생번트'에 비유했다. "자기가 살려고 대면 성공하기 어렵다"면서다. 그 역시 굳게 입을 닫았다. 그와 친한 검찰 선배를 통해 심경을 전해들었다. "박 전 차장이 '바른길을 가겠다. 자료와 기록은 다 남겨놨다'고 하더라. 나중에 수사에 응할 각오까지 한 듯했다."
 이번 사건의 의혹은 두 가지다. 박 지청장은 왜 검사들의 수사 필요 의견을 거듭 묵살·반려했는지, 금융정보분석원(FIU) 자료 요청을 반려하라는 지시를 내린 김오수 검찰총장도 개입한 건 아닌지 여부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성남FC 사건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피고발인이라 폭발력이 크다. 성남지청은 지난해 6월께 네이버의 성남FC 후원금 40억 제공 건을 수사 지휘하던 형사3부 의견에 따라 박하영 전 차장검사 전결로 대검에 후원 기업들에 대한 FIU 자료 의뢰 요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대검 반부패부는 "분당경찰서가 네이버를 포함해 후원 기업 여섯 군데를 수사 중이라 중복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려했다.
 이후 김 총장도 박 지청장과 통화하다가 "그 사건 절차를 잘 지켜서 하라"고 언급했다고 한다. 김 총장 측은 "노후화된 성남지청 청사 이전 문제로 통화하다가 잠깐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묘한 건 그 직후인 8월께 박 지청장이 성남지청의 위임·전결 규정과 부서 업무 분담을 바꿨다는 점이다. 차장·부장검사 전결이던 FIU 자료 요청은 지청장 전결로, 특수·공안 수사 기능을 담당하던 형사3부는 성범죄·강력 전담으로 돌렸다.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가 지난 9일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정문에서 박은정 성남지청장을 성남FC 사건 관련 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이종배 법치주의바로세우기행동연대 대표가 지난 9일 과천시 정부과천청사 정문에서 박은정 성남지청장을 성남FC 사건 관련 직권남용, 직무유기, 선거법위반 등의 혐의로 고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더욱 깊어진 상호불신의 늪
 이로 인해 "성남 FC 사건의 수사·조사는 지청장을 거치지 않으면 못하게 자물쇠를 건 것"이라는 의구심이 커졌다. 이때 생긴 불신의 골은 10월께 성남FC 사건을 송치받은 성남지청 형사1부가 검찰의 재수사 또는 경찰에 보완수사 요구 필요성을 보고하고 지청장이 반대하면서 깊어졌다. 특히 지청장이 수사기록 28권 8500여 페이지를 직접 검토하며 사건 처리를 지연시키자 박 전 차장이 항의성 사표를 냈고 내부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특수통 출신 공직자는 "국정원 댓글 사건 같은 중대 사건 때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적용 여부를 놓고 의견이 대립했지 수사를 막지는 않았다"며 "검사를 행정부 공무원과 동일시해 순치하려고 하는 특이한 유전자가 이 정부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야권에선 친(親)정권 성향의 김 총장이 '방탄총장' 역할을 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정점식 국민의힘 의원(법률자문위원장)은 "계좌추적, 압수수색도 아니고 수사 얼개를 짜기 위한 FIU 자료 요청에 대해 검찰총장이 왈가왈부했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며 "경찰에 대한 보완수사 지휘 자체를 막는 경우를 처음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 지청장 측은 "지휘사항 등 필요한 과정은 서면으로 정리돼 있다"며 정당한 지휘권 행사였음을 주장한다. 이에 맞서 박 전 차장 측은 "해당 사건을 검토한 검사가 여러 단계별로 수사 압력 업무일지를 작성했다"고 강조한다.
 둘은 주특기·경력이 다르다. 박 지청장은 여성·성폭력 사건 수사 경험이 많다. 2020년 초 추미애 전 장관에 의해 법무부 감찰관에 발탁됐다. 그해 말 윤석열 전 총장 징계 절차를 주도해 친정권 성향으로 분류된다. 당시 법무부 감찰관실 소속 후배인 이정화 검사는 "핵심 징계 사유인 ‘판사 사찰’ 의혹에 대해 죄가 안 된다는 보고서를 작성했는데도 그 내용이 삭제됐다"고 폭로하며 책임자로 박 지청장을 지목했다.
 박 전 차장은 서울중앙지검 공안부 등에서 근무했다. 서산지청 근무 때는 태안 기름유출 사건 수사에 참여했다. 그의 사시 동기생 검사는 "진중하고 바른 성품이다. 사직 사태가 터지자 '그 착한 애가~'라고 다들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내 편, 네 편' 편향인사 후유증인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편향 인사의 후유증이라고 진단했다. "조국 사태 이후 능력 불문하고 내 편 검사들만 요직에 기용한 탓이다. 적잖은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리에 가 있다. 검사의 무능은 수사 시스템마저 위태롭게 한다."(특수통 출신 김모 변호사)
 사고가 터져도 신속히 수습하면 여진이 크지 않다. 하지만 김 총장은 진상 조사 지시(지난달 26일) 외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친정권 성향의 신성식 수원지검장이 김 총장 지시 하루만인 27일 진상 보고를 끝낸 과정도 석연찮다. 예정돼 있던 수원지검장의 총장 정례보고일에 급히 한 진상 보고가 제대로일 리가 없다는 뒷말이 나온다.
 우여곡절 끝에 이 사건은 수원지검이 보완수사를 지시하고 성남지청이 분당서로 보완수사 요청과 함께 내려보내면서 고발 접수 3년 7개월 만에 원점으로 회귀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진상조사를 했으면 납득할만한 대책을 내놔야 하는데 지휘부가 전부 뒷짐을 진 채 떠넘기고만 있다"며 "김 총장이 켕기는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으로선 대선 전까지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다만 시간이 걸려도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앞서 2019년 6~7월 이성윤 당시 반부패강력부장이 '김학의 불법 출금' 에 연루된 법무·검찰 인사들에 대한 수사를 못 하게 윽박지른 곳은 안양지청이었다. 당시 안양지청장·차장은 수사 중단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6개월 뒤 장준희 부장검사의 공익제보로 전말이 드러났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 무마 사건이 지청에서 잇따라 터진 이유는 뭘까.
 "서울중앙지검은 껄끄러운 사건을 종종 수원지검으로 미루고, 수원지검은 산하의 성남지청과 안양지청으로 종종 미뤄요. 피의자 주거지가 있는 곳으로 보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두 곳의 지청장은 검사장이 아니잖아요. 외압에 아주 약하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예요."(수원지검장 출신 변호사)
 경찰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발인이 이의제기해서 검찰에 넘긴 사건을 직접 재수사하지 않고 몇 달이 지나 다시 내려보내는 건 이례적인 일"이라며 "보완 수사 요청 사항이 여러 가지라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성남FC 후원금 의혹 사건=이재명 후보가 성남시장이자 프로축구 성남FC 구단주였던 2015~2017년 네이버·두산건설·분당차병원 등 6개 기업이 총 161억원의 광고비와 후원금을 성남FC에 내고 성남시로부터 현안 해결의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다. 이 후보는 "합법적 공익활동"이라고 주장했고 야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제3자 뇌물범죄"라고 공격했다.

조강수 논설위원

조강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