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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 죽은 뒤 딸 태어나…이 영화 만든 계기 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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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주연 배우 왕정(왼쪽)과 구파도 감독이 촬영 당시 포즈를 취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주연 배우 왕정(왼쪽)과 구파도 감독이 촬영 당시 포즈를 취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어릴 때 밥 남기면 지옥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서웠어요. 지옥 가는 것도 무서운데 먹을 것도 없으면 어떡해요. 죽어서 먹으려고 조금씩 밥을 남겼죠.” 부모 가르침을 거꾸로 흡수한 엉뚱한 소년은 훗날 영화감독이 돼 사후세계에 관한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다. 지난해 대만에서 자국 영화 흥행 2위에 오른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9일 개봉)의 구파도(44) 감독 얘기다.

영화는 초등학교 시절 첫눈에 반한 샤오미(송운화)와 결혼하길 꿈꿔온 샤오룬(가진동)이 청혼 순간 벼락에 맞고 저승에 가면서 시작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샤오룬은 이승의 짝을 맺어주는 월하노인 임무를 수행하다가 샤오미와 재회한다. 구파도 감독과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에서 함께한 가진동과 송운화·왕정 등 대만 청춘스타가 뭉쳤다.

‘영화사벌집’이 대만 현지 제작진과 협업해 만든 한국·대만 합작영화다. 학교폭력 문제를 좀비 장르에 녹여낸 구파도 감독 전작 ‘몬몬몬 몬스터’(2017)를 본 영화사벌집이 공동 제작을 제안했다. 한국 영화 ‘신과함께’(2017) 영향도 받았다고 한다. “‘신과함께’를 보면서 잔혹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어서 심판을 받다니 살면서 긴장과 스트레스가 많겠구나, 했죠.” 영화는 지난해 7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이다. “한국 범죄물과 ‘엽기적인 그녀’를 좋아해 작품 구상 때 참고하곤 한다”는 그를 e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2019년 봄 키우던 강아지 ‘아루’(영화 속 강아지 이름도 여기서 따옴)가 죽고 저와 아내는 몇 날 며칠을 울었죠. 그해 9월 딸이 태어나 아빠가 되고 나서 시나리오를 썼어요.” 영화에선 죽음과 탄생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돌고 돈다. 주인공의 로맨스가 큰 줄기지만, 임무 수행 과정을 오디션 예능이나 공포·판타지, 복수 액션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데이트 폭력, 환경문제 등 사회적 화두도 녹아있다.

구파도 감독은 반려동물 유기 반대 및 입양 권유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다. 작은 생명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누구나 어떤 존재로 환생할지 모른다는 설정으로 녹여냈다. 생전 품행에 따라 똥·선인장·매미부터 개·인간·고양이 등 환생 등급을 세분화한 것도 재밌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1만년이라고 선언한 한국판 제목은 극 중 대사에서 따왔다. 여러 생에 걸친 복잡한 인연들 속에 “내려놓기”라는 큰 주제를 담아냈다. 구파도 감독은 “나도 한때 밑바닥까지 추락했고, 내게 일어난 일들을 원망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이번 영화는 지난해 개봉한 나홍진 감독 제작의 태국 공포 영화 ‘랑종’을 잇는 아시아 국가와 합작 영화다. 한국과 현지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고, 한국 영화보다 상대적 저예산 제작이 가능하다. 해외 IP(지적재산)를 한국 영화사가 확보하는 것도 이점이다. 영화사벌집 관계자는 “총제작비는 50억원 정도다. 대만에선 큰 규모다. 비슷한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면 200억원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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