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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선 자가검사키트 뿌리는데…약국·편의점 헤매는 시민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약국 문 열고 오전에 오신 손님 열 분 넘게 돌려보냈어요. 어제도 5개씩 드릴 수가 없어서 2개씩만 팔았는데도 재고가 없어요.”
14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 전모(47)씨는 자가 검사키트를 사러 오는 손님을 돌려보내느라 바빴다고 했다. 미리 들여놓은 재고 50개는 전날 오후 3시쯤 다 팔렸고, 도매업체에 주문한 물량은 언제 도착할지 기약이 없어서라고 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자가 검사키트를 한 사람이 최대 5개까지만 살 수 있게 하는 방침을 13일부터 시행했다.

13일 오후 대전의 한 약국 출입문에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용 자가진단키트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13일 오후 대전의 한 약국 출입문에 코로나19 신속항원검사용 자가진단키트 품절을 알리는 안내문이 부착돼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약국·편의점 전전한 시민들

정부가 지난달부터 PCR 검사(Polymerase Chain Reaction·유전자 증폭 검사) 대상을 줄이고 신속항원검사(자가검사) 중심 진단체계로 전환하자 곳곳에서 검사키트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당국은 검사키트의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고 약국·편의점에서 1인당 판매 개수를 제한하는 등 조치를 내놓았다. 그러나 현장에선 물량 부족으로 인한 시민들의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약국 유리문에는 “진단 시약 들어왔습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검사키트가 있는지 묻자 약국 주인은 “오늘 재고가 아예 안 들어왔다”고 잘라 말했다. 잠시 후 한 여성이 들어오자 주인은 “아까 전화 주신 분이죠?”라고 물었다. 여성은 “네 맞아요”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검사키트 1개를 사서 약국을 나섰다. 주인은 “아까 전화로 예약한 분인데 저게 마지막 남은 재고였다”며 문에 붙어 있던 종이를 뗐다.

편의점에서도 “검사키트 있느냐”는 손님의 질문과 “없다”는 직원의 기계적인 대화가 오갔다. 서울 종로구의 한 편의점 직원 정모(35)씨는 “오전에만 같은 말을 스무 번 넘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근 직장인 김성문(42)씨는 “집 근처 약국에 재고가 없다는 말을 듣고 직장 근처 편의점을 돌고 있는데 세 군데째 허탕을 쳤다”고 했다.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에 자가검사키트 상자가 텅 비어 있다. 최서인 기자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한 약국에 자가검사키트 상자가 텅 비어 있다. 최서인 기자

기업 사재기에 ‘키트 빈부 격차’도

한편 일부 기업이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 전 검사키트를 대량 구매했다는 소식에 일부 시민들은 착잡한 심경을 나타내기도 했다. 서울의 한 금융사 직원 권모(32)씨는 “검사키트가 부족하다는 보도가 나오기 전에 회사에서 1000개 정도를 미리 구매했다고 한다. 출근하기 전에 집에서 검사하라고 5개씩 나눠줬다”고 말했다. 반면 유치원생 자녀를 둔 송모(34)씨는 “유치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 무조건 자가검사 결과 음성이 나와야 등원할 수 있다고 한다. 오늘 오전에 약국 네 군데를 돌았는데도 못 샀다”며 “지난주까지만 해도 구하기가 쉬운 편이었는데 그때 쟁여둘 걸 그랬다”고 했다.

오는 16일까지 재고 물량만 판매되는 온라인에선 약국에서 파는 가격보다 웃돈을 줘야만 검사키트를 구할 수 있었다. 한 온라인 쇼핑사이트에 ‘자가 검사키트’를 검색했더니 검사 1회분에 1만2000원~2만원에 가격이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약국에선 6000~8000원이면 살 수 있다.

품귀 현상이 빚어진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뉴스1

품귀 현상이 빚어진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뉴스1

마스크 대란 재연되나

자가 검사키트 재고 부족이 2020년 ‘마스크 대란’ 같은 사태로 커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업계의 의견이 갈렸다. 종로구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임모(50)씨는 “정부에서 물량 부족 사태는 없을 거라고 장담했던 그때와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반면 한 약사는 “매일 바꿔 써야 하는 마스크와는 달리 진단 키트는 증상이 있을 때만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고 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자가 검사키트 수급 불안 해소를 위해 이달 말까지 키트 3000만명분을 공급한다”며 “감염이 취약한 어린이집과 노인복지시설 등 감염 취약시설에는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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