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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찍고 가셨다"…'분홍립스틱' 원조가수 父 강문수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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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별가족.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작고한 강문수 씨. 흐뭇하게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작은별가족. 뒷줄 왼쪽에서 두번째가 작고한 강문수 씨. 흐뭇하게 가족을 바라보고 있다. [중앙포토]

“아버지, 100세 찍고 훨훨 날아가셨어요.”

‘분홍 립스틱’의 원조 가수 강애리자(60)씨가 14일 오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고인이 된 아버지 강문수 씨는 한국 대중음악사(史)에 큰 족적을 남겼다. 외동딸인 애리자씨와 6명의 아들, 그리고 부인 주영숙 씨와 함께 9인조 가족 밴드 ‘작은별가족’을 1970년대 결성하면서다. 76년 텔레비전 만화영화 주제곡 모음집을 발표하고, 이듬해 데뷔 앨범을 내며 한국 최초 대가족 그룹으로 활약했다. 애리자 씨는 14일 통화에서 “우리 가족이 똘똘 뭉쳐서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건 아버지의 결단력 덕분”이라며 “우리 7남매를 음악 한 길로 이끌어주신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작은별가족 7남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인혁·인엽·인호·인경·인봉·애리자·인구. [중앙포토]

작은별가족 7남매.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인혁·인엽·인호·인경·인봉·애리자·인구. [중앙포토]

고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부문 당선자이자 영화 및 드라마를 제작했던 팔방미인이었다. 부인 주영숙(91) 씨는 서울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7남매에게 음악의 DNA를 물려줬다. 고인은 고령으로 인한 숙환으로 투병하다 투석을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별세했다고 한다. 애리자 씨는 “아버지 당신 성격처럼 자유스럽게 가셨다”며 “갑자기 심정지가 왔고, 큰 고통은 없이 가신 것 같다”고 말했다. 7남매가 노래부터 바이올린ㆍ기타ㆍ플루트 까지 다양한 악기를 직접 연주했고, 연기자로도 활약했다. 9인 가족이 연주한 악기 수만 20종이 넘는다. 아직도  애리자 씨의 동생이자 막내인 강인봉 씨는 자전거 탄 풍경 멤버로도 자주 회자된다. 인봉 씨가 부른 '나의 작은 꿈'은 여전히 중장년층의 애창곡이다.

작은별가족 앨범.

작은별가족 앨범.

고인을 단장으로 한 9인 가족 그룹은 당시 세계적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 가문 합창단, 또는 마이클 잭슨이 활약했던 가족 그룹 잭슨 파이브를 연상시키는 멤버 구성이다. 일본에 초청 공연을 간 적도 수 차례였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활약에 브레이크를 건 존재가 있었으니, 당시 한국 정부였다. 다둥이 가족이라는 점이 당시의 저출산 장려 정책 기조와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애리자 씨는 통화에서 “당시엔 나라에서 (다둥이 가족에 대한) 규제가 너무 심해서 해외 공연도 못 가게 막곤 했다”며 “당시엔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고 했는데 우린 7남매였으니, 사람들이 우리를 닮고 싶어하면 어떻게 하냐는 말도 들었다”고 전했다.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인 2022년엔 격세지감인 이야기다.

70년대 후반 발표한 만화영화 주제가 및 작은별가족 데뷔 음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70년대 후반 발표한 만화영화 주제가 및 작은별가족 데뷔 음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작은별가족은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튼튼히 내리는 데 일조했다. 애리자 씨의 ‘분홍 립스틱’도 고인을 비롯한 가족의 전폭적 지지로 태어난 명곡이다. 이후 배우 송윤아 씨가 영화 ‘광복절 특사’에서 불러 노래방 애창곡으로 차트 역주행을 하기도 했다. 최근 방탄소년단(BTS)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한국 콘텐트의 약진을 본 고인의 심경은 어땠을까. 애리자 씨는 “아버지가 저희들에게 ‘딱 30년만 늦게 태어났을 걸 그랬다’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그랬다면 세계를 휘어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움도 있지만, 또 그럴 운명이었다고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애리자씨와 췌장암 투병 중인 남편 박용수 씨. 지난해 중앙일보 인기 코너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에 실린 사진이다. 김경록 기자

강애리자씨와 췌장암 투병 중인 남편 박용수 씨. 지난해 중앙일보 인기 코너 [인생 사진 찍어드립니다]에 실린 사진이다. 김경록 기자

애리자 씨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뵌 건 지난주였다고 한다. 그의 남편 역시 암 투병 중이다. 그 역시 한때 우울감으로 고생한 적이 있지만 통화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절망을 넘어 희망을 본 이들이 낼 수 있는 씩씩한 목소리가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고집불통’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며 “아버지의 고집 덕에 우리가 다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었고 전국을 누비고 해외 무대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많은 분들이 저를 ‘분홍 립스틱’ 원조 가수로 기억해주십니다. 감사한 일이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가족의 외동딸’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발인은 16일, 빈소는 한양대병원 장례식장(02-2290-5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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