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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을 나치 독일에 비유한 英 국방 "뮌헨 느낌 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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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월러스 영국 국방부 장관이 서방의 외교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관측을 내놨다. 월러스 장관은 13일(현지시간) 더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배치한 군대는 언제든 공격에 나설 수 있는 규모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막기 위한 서방의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유화 정책에 비유했다. 그러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탱크 엔진을 끄고 우리 모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겠지만, 서방 일부에서 뮌헨의 분위기가 느껴진다(whiff of Munich in the air)"고 말했다.

월러스 장관(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11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월러스 장관(왼쪽)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11일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AP=연합뉴스]

그가 말한 '뮌헨의 분위기(느낌)'란 2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한 뮌헨 협정을 의미한다. 1938년 9월 독일 뮌헨에서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 4개국은 독일인 거주 지역인 체코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넘기는 대신 체코 국경을 보장한다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는 이 협정을 무시하고 이듬해 체코를 병합한 데 이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더 선데이 타임스는 그의 이같은 발언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영국의 외교적 노력이 '허수아비(straw man)'에 불과할 수 있다는 좌절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2차 대전을 막지 못한 뮌헨 협정처럼 서방의 외교적 노력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는 앞서 지난 1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참모총장 등 러시아 측 고위 인사들과 몇 시간 회담을 갖기도 했다.

월러스 장관은 "걱정스러운 것은 (서방의) 외교 노력은 커지고 있지만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미국에서도 러시아가 며칠 내 침공에 나설 것이란 경고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영국의 한 외교 소식통도 더 선데이 타임스에 "우리는 미국과 긴밀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있으며 러시아 군사 행동과 관련해 상황이 심각하고 위험하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영국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하면서 자국민에게 철수를 권고한 상태다. 13일 더 선데이 타임스는 영국이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대전차 미사일에 대한 훈련을 지원할 영국군이 곧 떠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영국 외무부는 11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자국민에게 "상업적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을 때 떠나야 한다"고 권고했다. 멜린다 시몬스 우크라이나 주재 영국 대사는 "키예프에 필수 인력은 남아있지만, 일부 대사관 직원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철수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월러스 장관은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카불 함락 당시와 유사한 자국민 대피 작전은 펴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유에 대해 "러시아는 막강한 공중 방어 능력을 갖고 있어서 침략이 시작되면 하늘길이 막힐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고 싶어도 (탈출할 수 있는) 환경이 될 수 없다"며 "예방을 위해선 (침공 전에 미리)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월러스 장관은 13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크라이나 상황 악화를 고려해 예정했던 가족과의 유럽 휴가를 중단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지난해 아프간 사태 당시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부 장관은 그리스에서 여름 휴가를 계속 보내다가 비판을 받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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