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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가분의 인정불가

류호정 의원님, 남성에게도 공정한 잣대가 필요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박가분 연구자이자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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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미니즘과 관련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 글에 대한 박가분 작가의 답글입니다.

존경하는 류호정 의원님
1. 메갈리아·워마드 문제에 대한 더 진지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우선 메갈리아·워마드식 폭언이 여성주의를 대표할 수 없다는 의원님의 공식 선언이 매우 반갑습니다. 다만 저는 그 선언이 2016년에 이미 정의당 내부에서 나왔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쉽습니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신남성연대가 주최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렸다. [뉴스1]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인근에서 신남성연대가 주최한 '페미니즘 규탄' 집회가 열렸다. [뉴스1]

또 지겨운 ‘워마드 타령’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2015년 페미니즘 뉴웨이브’ 혹은 ‘페미니즘 리부트’ 시절로 되돌아가 봅시다. 워마드의 원조 격인 메갈리아는 남연갤(남자연예인갤러리) 등 당시 이미 만연했던 여초갤(여성 중심 커뮤니티)의 패륜·막장 문화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게 신화적 날조를 통해 ‘일베의 여혐에 저항하는 행위(미러링)’로 미화되었고 이들의 혐오스러운 언행은 ‘사회운동’으로 격상됐습니다. 2016년 9월 한국여성재단이 후원한 ‘여성회의:새로운 물결 페미니즘 이어달리기’에서 여성단체들은 (남성)혐오 논란을 일으키고 있던 메갈리아를 ‘페미니즘의 새로운 물결(뉴웨이브)’로 규정했습니다.
문제는 그들의 폭언이 (워마드 등장 이전부터) 단순히 일베가 아닌 성 소수자·어린이·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향했다는 걸 여성단체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메갈리아·워마드의 패륜·막장 행위들은 결국 홍대 남성 누드모델에 대한 몰카 성범죄라는 명백한 ‘증오범죄’로 이어졌습니다. 그 몰카 피해자야말로 보호받아야 할 약자 아닌가요? 정말 페미니즘이 류 의원님 말씀대로 “서로를 연결하고 돌보는 것”이라면 피해자와 연대해야 하지 않나요? 하지만 제 기억으로는 정의당과 여성단체들은 몰카 피해자를 되려 적반하장 식으로 비난하는 2차 가해 행위(혜화역 시위)를 옹호하기 바빴습니다. 피해자의 인권은 철저히 짓밟혔습니다. 대표적인 페미니즘 내로남불입니다.
웹 설문조사에서 ‘착한 응답’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페미니즘이 모두와 연대하고 돕는다’는 말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는 이유입니다. 지난해 5월 한국일보·한국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페미니즘·페미니스트에 거부감이 든다’는 남성 응답자는 20대 77.3%, 30대 73.7%, 40대에서는 65.9%였습니다. 이들은 류의원님 생각과 달리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반감을 가진 게 아닙니다. 페미니스트의 ‘선택적 정의, 연대, 도움’에 질렸기 때문입니다.

2. 페미니즘은 남성 취약함도 공정하게 들여다봐야 합니다
공석이든 사석이든 페미니스트와 토론할 때마다 놀라곤 합니다. 여성이 겪는 고통·억압과 남성이 겪는 고통·억압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 대단히 인색합니다. 그리고 여성의 곤경 및 취약함에 대한 남성의 ‘우선적 공감’은 당연한 것이라는, 일종의 ‘채권자 의식’을 가지고 있더군요. 이러한 자신의 인식을 정당화하려고 통계 왜곡을 일삼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남성집단에 대한 ‘후려치기’는 1990년대생 이후부터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직시해야 합니다.

최근 한 언론사는 청년 여성의 자살사망률 급증문제를 고의적 ‘학살’에 비유하는 자극적 기사 제목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는 통계에 대한 비과학적 해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도 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은 (특히 젊고 고학력층인) 여성의 고통을 존재론적으로 더 특별히 취급해야 한다고 전제합니다. 물론 2030 여성들이 최근 현실을 불만족스럽게 여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기성 페미니즘 진영의 진단과는 사뭇 다릅니다. 최근 서울대 행복연구센터·카카오같이가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2030 여성들의 주관적 행복감이 최하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30 여성의 물질주의·신경증 지수가 가장 심하고 감사지수는 낮으며 남과 비교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이들의 불행의식을 과연 페미니즘이 치유할 수 있을까요?
젊은 여성의 주관적 불행을 과도하게 부풀리고 엉뚱한 처방을 내놓는 페미니즘 담론은 오늘날 청년 대중의 공정의식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지난 2021년 4월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에서 20대 여성 자살문제가 불거지자 ‘여성전용’ 자살방지 게시판을 운영하는 전시성 행정을 펼치다가 많은 네티즌의 항의에 직면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살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겪는 계층은 남성노인이기 때문입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60, 70, 80대 남성 노인은 10만 명당 각각 44.8명, 64.5명, 118명의 비율로 자살했습니다. 이들의 자살 사망률은 다른 성별·연령집단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만일 ‘조용한 학살’이라는 표현이 자살문제를 공동체적 관심의 결여에 의한 ‘사회적 타살’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만들어진 레토릭이라면, OECD 1위의 빈곤율과 자살 사망률을 기록하는 남성노인이야말로 ‘조용한 학살’을 당한다고 해야 옳습니다.
이처럼 (젊은 고학력) 여성의 곤경을 우선시하는 건 다른 계층의 고통을 주변화하고 연대의식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취약계층에 대한 정의롭고 공정한 접근을 방해합니다. 이런 비판을 능력주의로 후려치는 건 논점 회피에 불과합니다.
앞서 보았듯 ‘젊은 여성에 대한 조용한 학살’ 운운하는 저 선동 속에서 정작 고독사 문제를 겪는 계층은 중장년 남성이라는 사실은 은폐됩니다. 지난해 서울시복지재단이 분류한 고독사 위험계층 중 65.7%가 남성이었으며 연령대별로는 중장년층이 34.6%를 차지했습니다. 더 나아가 학습부진아와 학업 중도탈락은 남학생이 더 많습니다. “페미니즘은 서로 연결되어 돌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들이 겪는 문제 또한 진지하게 다뤄야 합니다. 그리고 말이 아닌 행동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3. ‘나만의 정의’는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행동이 뒤따라야 이 말에 신뢰를 보낼 수 있습니다. 류의원님 글을 요약하면 ‘정의당은 페미니즘 정당이고 페미니즘은 좋은 것이니 페미니즘과 정의당의 좋음을 앞으로 더 잘 알리겠다’ 입니다. 최근 정의당 지지율 하락을 ‘홍보 부족’ 탓으로 돌리는 인식 속에서 세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려는 결의보다는 도덕적 허영심을 과시하려는 모습이 엿보이는 것 같아 걱정스럽습니다. 저 역시 과거 일천한 노조 경험을 통해 ‘나는 이렇게 정의롭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는 과시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정의당이 발의한 차별금지법 부작용에 대한 상당수 시민의 우려를 단순히 혐오나 차별의 발로로 후려치지 않길 바랍니다. 학생 인권조례를 예로 들겠습니다. 저도 지지합니다만, 그 조례에 근거해 설립된 학생인권센터가 무고한 교사를 성추행범으로 몰며 무리한 징계를 하려다 사망에 이르게 한 안타까운 사고(고 송경진 교사 사건)가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걱정하는 건 이런 ‘악마’가 숨어 있는 정책 속 ‘디테일’입니다. 특히 동료 시민을 손쉽게 차별주의자나 혐오주의자로 몰아가는 일부 활동가들의 독선적 모습도 고쳐야 할 나쁜 습관입니다. 그들이 제2, 제3의 고 송경진 교사 사건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정책을 내세우며 그것이 절대 선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사회운동가의 선명성으로 봐줄 수 있으나 정책을 합리적으로 다듬어야 할 정치의 역할은 아닙니다. 게다가 정의당이 최근 내세운 여러 정책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보기에 절대 완벽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민생정책과 사회경제적 의제에서도 정의당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그다지 차별화되지 않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도 산업 안전 인프라에 대한 공공투자 강화 방안이나 산업현장 안전감독 인력을 확충하기 위한 일자리 보장제 등 실질적 사각지대를 줄이는 방법에 대한 고민보다는 손쉬운 엄벌주의로 빠집니다.
무엇보다 정의당이 어떤 정당이고 최근 어떤 이념과 정책을 주축으로 내세우는지 시민들은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정책추진 과정의 아마추어리즘과 정책의 부실한 내용 그리고 이 과정에서 보여준 독선적인 태도입니다. 정의당의 주관적 선의와 정책을 잘 몰라서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발언은 정치적 책임을 시민과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남 탓 정치’입니다. 검찰개혁 문제나 청년층 지지율 하락현상에서 민주당이 빠진 함정을 정의당이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상기한 문제를 개선해 다가오는 대선에서 좋은 결과를 거두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