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만판 ‘신과함께’ 감독 “생전 아쉬움 죽어서 완성할 기회 있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각본, 연출을 겸한 구파도 감독(오른쪽)이 주연 배우 왕정과 촬영 당시 현장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의 각본, 연출을 겸한 구파도 감독(오른쪽)이 주연 배우 왕정과 촬영 당시 현장에서 익살스런 포즈를 취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어릴 때 밥 남기면 지옥 가서 다 먹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무서웠어요. 지옥 가는 것도 무서운데 먹을 것도 없으면 어떡해요. 죽어서 먹으려고 조금씩 밥을 남겼죠.”

9일 개봉 '만년이…' 구파도 감독 #한국·대만 합작, '신과함께' 영향도

밥 남기지 말라는 부모 훈수를 거꾸로 받아들인 엉뚱한 소년. 영화감독으로 자라 사후세계에 관한 판타지 영화까지 만들었다. 지난해 대만에서 개봉해 자국 영화 흥행 2위에 오른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9일 개봉)의 구파도(44) 감독 얘기다.

'신과함께' 영향 받은 한국·대만 합작 영화

영화는 초등학교 때 첫눈에 반한 샤오미(송운화)와 평생 결혼하길 꿈꾼 샤오룬(가진동)이 청혼하려던 순간 벼락을 맞고 저승에 가면서 시작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샤오룬은 또 다른 망자 핑키(왕정)와 함께 이승의 커플을 맺어주는 ‘월하노인’(月下老人) 임무를 수행하다 전생의 사랑과 재회하게 된다. 구파도 감독과 출세작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에 이어 만난 가진동을 비롯해 송운화‧왕정 등 대만 청춘스타가 뭉쳤다.
한국의 ‘영화사벌집’이 현지 제작진과 협업해 만든 한국‧대만 합작 영화이기도 하다. 구파도 감독이 학교 폭력 문제를 좀비 장르에 녹여낸 전작 ‘몬몬몬 몬스터’(2017)를 본 영화사벌집이 먼저 제안하며 공동 제작하게 됐다. 2017~2018년 대만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큰 흥행을 거둔 한국영화 ‘신과함께’ 영향도 받았단다.

대만 감독 구파도의 사후 세계 판타지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서 '월하노인' 콤비로 활약하는 망자 샤오룬, 핑키 역 배우 가진동과 왕정. 이들이 처음 저승에 가는 영화 초반은 MTV 예능쇼처럼 유쾌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대만 감독 구파도의 사후 세계 판타지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서 '월하노인' 콤비로 활약하는 망자 샤오룬, 핑키 역 배우 가진동과 왕정. 이들이 처음 저승에 가는 영화 초반은 MTV 예능쇼처럼 유쾌한 분위기로 그려진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신과함께’를 보면서 잔혹하다고 생각했어요. 죽어서 심판을 받다니 살면서 많은 긴장과 스트레스가 있겠구나, 했죠. 살아있을 때 아쉬움이 남은 일들을 죽어서 완성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난해 7월 이 영화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구파도 감독은 당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밝혔다. “한국 범죄 관련 영화들과 ‘엽기적인 그녀’를 좋아해서 작품 구상할 때 참고하곤 한다”는 그를 9일 한국 개봉 직후 e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반려견 죽은 뒤 딸 태어나…이 영화 만든 계기

영화는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출발했다. “2019년 봄 키우던 강아지 ‘아루’(영화 속 강아지 이름을 여기서 따왔다)가 죽고 저와 아내는 몇 날 며칠을 울었죠. 그해 9월 딸이 태어나 아빠가 되고 나서 이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영화에선 죽음과 태어남이 뫼비우스의 고리처럼 돌고 돈다. 극 중 인물들의 전생 인연은 아시아 사후 관념을 토대로 했다. “윤회와 환생, 차안(깨닫지 못하고 고생하며 살아가는 상태), 피안(동경하는 경지, 깨달음의 세계) 같은 개념들”이라고 구파도 감독은 설명했다.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서 로맨스 호흡을 맞춘 배우 가진동(왼쪽)과 송운화. 극 중 두 사람의 애틋한 인연을 상징하는 붉은 목도리(Red Scarf)는 같은 제목의 엔딩곡으로 탄생해 유튜브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4일까지 3418만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대만 안팎에서 사랑받고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영화 '만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에서 로맨스 호흡을 맞춘 배우 가진동(왼쪽)과 송운화. 극 중 두 사람의 애틋한 인연을 상징하는 붉은 목도리(Red Scarf)는 같은 제목의 엔딩곡으로 탄생해 유튜브에서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14일까지 3418만 조회수를 기록할 만큼 대만 안팎에서 사랑받고 있다. [사진 그린나래미디어]

주인공들의 로맨스가 큰 줄기지만, 월하노인 수행 과정을 오디션 예능처럼 보여준 장면부터 생사를 넘나드는 공포‧판타지, 수 대에 걸친 복수 액션 등 쉴 새 없이 장르를 넘나든다. 데이트 폭력, 환경문제 등 여러 사회 화두도 망자들의 사연과 대사에 녹아있다. “맥락을 따라가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지만 “예상을 깬 감동”이란 호평도 나온다(이상 메가박스 실관람평).
특히 반려동물 유기 반대, 입양 권유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한 구파도 감독이다. 작은 생명체도 소중하다는 메시지를 누구든, 어떤 존재로 환생하게 될지 모른다는 설정에 거듭 녹여냈다. 생전 선행과 부덕의 크기에 따라 똥‧선인장‧매미부터 개‧인간‧고양이 등 환생 등급을 세분화한 것도 재밌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 다른 자연 혹은 사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여 구분한 것이지 생명의 귀천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라고 구파도 감독은 강조했다. 고양이로 태어나려면 인간으로 환생할 때보다 덕업을 더 많이 쌓아야 하도록 묘사했다. “인간은 고양이 집사일 뿐”이라서다.

만년 지나도 안 변하는 것? 집착 내려놓은 사랑 

사랑의 유통기한이 1만년이라고 선언하는 한국판 제목은 극 중 여러 번 나오는 대사에서 따왔다. 여러 생에 걸친 복잡한 인연들 속에 “내려놓기”라는 큰 주제를 담아냈다. 구파도 감독은 “저도 한때 밑바닥까지 추락하고 저한테 일어난 일들을 원망했다. 하지만 세상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고 더 깊게 사랑하게 됐다”고 돌이켰다.
이번 영화는 지난해 개봉한 나홍진 감독 제작의 태국 공포 영화 ‘랑종’에 이어 한국 영화의 영향력이 큰 아시아 국가에서 나온 합작 영화란 점도 주목된다. 아시아 문화권끼리의 공감대와 나라별 특성을 겸비해 한국과 현지 시장을 동시에 공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 영화보다 상대적 저예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외의 신선한 IP(지적재산)를 한국 영화사가 확보할 수 있다는 것도 이점이다. 영화사벌집 관계자는 “이번 영화 총제작비는 한국 돈 50억원 정도로 대만 시장에선 큰 규모다. 비슷한 규모의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200억원은 들었을 것”이라며 “한국판 리메이크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