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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에서 ‘뇌섹남’으로…뇌과학자가 NFT에 꽂힌 이유 [추기자의 속엣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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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기자의 속엣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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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사람의 소개로 만나 속엣말을 들어봅니다. 그 인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요. 인연 따라 무작정 만나보는 예측불허 릴레이 인터뷰를 이어갑니다.

 [프롤로그]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요즘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꽂힌 분야는 바로 NFT(non-fungible token·대체 불가능 토큰)이죠. 그가 유튜브에서 메타버스, 인공지능(AI)과 함께 자주 다루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뇌과학자가 디지털 자산 공부를? 그 속내가 궁금했습니다. 최근 장 박사와 공감(APoV) 프로젝트를 함께 한 티앤씨재단의 소개로 속엣팅이 성사됐습니다.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학자가 책 쓰고 강연만 해서는 살긴 어려운 세상이 됐다"고 했다. 최근 NFT에 꽂혔다는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현동 기자

뇌과학자인 장동선 박사는 "학자가 책 쓰고 강연만 해서는 살긴 어려운 세상이 됐다"고 했다. 최근 NFT에 꽂혔다는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현동 기자

장동선(42) 박사는 ‘다중’ 직업인이다. 뇌과학자이자 지난 3일 10만 구독자를 달성한 유튜버이자 방송인, 작가, 강연가이기도 하다. 최근엔 티앤씨재단의 APoV 컨퍼런스에 참여해 ‘공감’을 뇌과학으로 풀어내려 했고, 카카오 임팩트 재단 사외이사로 합류하는 등 기업과의 협업도 진행 중이다. 국가연구소(독일 국가기술연구소·DZNE)와 대기업(현대차그룹 미래기술전략팀장), 개인사업(궁금한뇌연구소)까지 “어떻게 보면 현대 과학자가 갈 수 있는 길은 다 가봤다”는 그는 “학자가 책 쓰고 강연만 해서 살긴 어려운 세상이 됐다. 과학기술 전공자가 갈 수 있는 모든 길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가고 있다”고 했다.

“메타버스 시대 ‘사람 간 소통’이 뇌과학 핵심”  

그런 그가 최근 NFT에 꽂혔다. 책 『AI는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 출간을 앞두고 있던 그를 지난달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는데, NFT가 그 핵심에 있다”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다른 사람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디지털 공간에서는 인간과 기계의 알고리즘이 공존하는데, 이때 인간이 기계의 노예가 아닌 주체가 되도록 디자인해주는 게 뇌과학이죠. NFT는 한 사람의 정체성을 디자인하는 도구이고, 뇌과학은 여기에 도움을 줍니다. 제 관심은 ‘미래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연결되고 소통하는가’에 있어요.

용어사전대체 불가능 토큰(NFT)

 고유성을 갖는 디지털 자산의 한 형태. 최초 발행자와 소유권, 판매 이력 등 관련 정보가 블록체인에 모두 등록되어 있어 복제나 위변조가 불가능하다.  최근 디지털 예술품이나 온라인 스포츠, 게임 등 거래 시장에서 영향력이 급증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미래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이미 현실에 가까워진 ‘메타버스’다. 장 박사는 “메타버스는 내 몸과 공간을 이용하는 다음 단계 인터넷일 뿐”이라고 했다. “컴퓨터가 없어도 렌즈를 통해 화면을 보고, 키보드가 없어도 손가락으로 입력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면서다. 그는 그러나 “지금은 메타버스의 기술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 메타버스가 현실이 되면 ‘내 삶은 어떻게 바뀌는가’에 대한 논의는 없다”고 지적했다.

“메타버스에선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갖고 남의 행세하기가 쉬워져요. 오프라인에서 인증 수단은 지문, 홍채, 얼굴, 뇌파를 넘어 궁극적으로 DNA까지 갈 겁니다. 온라인에선 NFT가 그 역할을 하죠. 가상 공간에서 디지털 화폐로 물건을 사고 팔려면 나를 인증해야 하잖아요.” 그는 “지금까지는 NFT나 암호화폐를 투기 조장이나 국가의 통화주권을 손상시키는 부정적 존재로 봤지만, 내년부터는 각국 정부 공조 하에 가상화폐도 공식 자산으로 인정되며 제도권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했다. “이미 시작된 트렌드를 막을 수 없는 세상이 됐다”면서다.

용어사전메타버스

3차원의 가상세계. ‘가상’을 뜻하는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 가상현실(VR)에서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통해 실제 현실과 같은 사회, 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다.

“상상했던 세상이 현실로? 신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 뇌과학 박사가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 뇌과학 박사가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 뇌과학 박사가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 뇌과학 박사가 25일 서울 혜화동 대학로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현동 기자

그는 다만 “진짜 메타버스 기술은 최소 2~3년, 길게는 8~10년 후에나 실현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앞으로 올 세상을 함께 준비해야 혼돈을 막을 수 있다”며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다”고 했다. 그가 유튜버가 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 잔여백신 예약에서 봤듯이 이젠 디지털 격차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됩니다. 누군가는 메타버스에서 얻은 지식과 정보로 투자하고, 여기서 소외된 이들과의 빈부 격차는 50~60년 후엔 수천 조 원으로 벌어질 겁니다. 일부만 누리는 기술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까요. 결국 사회 전체가 암울해지면 앞선 이들에게도 절대 이롭지 않죠.”

장 박사는 그러면서도 “상상만 했던 세상이 진짜 현실이 된다니 신난다”고 했다. 그가 2005년부터 몸담았던 막스플랑크 바이오사이버네틱스 연구소엔 세계 최고의 사이버 기술을 보유했다는 사이버네움이 있다. 실제 경험하기 어려운 극한의 상황을 가상공간에서 재현하는 곳으로, 포뮬러1 드라이버들이 안개나 어둠 속에서 레이싱 테스트를 하는 식이다. 그는 “운 좋게도 전 세계에서 몇 군데 되지 않는 가상현실을 연구하는 곳에 있었다”고 했다. 그는 “우주여행을 예측만 하는 사람은 일론 머스크같이 현실로 만드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학자의 최종 단계는 예측을 넘어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의 가상현실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독일에서 태어나 7살에 한국에 이주한 장 박사는 청소년기 내내 ‘이방인’이었다. 어릴 적 엄마에게 “까만 머리가 더러워?”라고 물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는 그는 “독일에선 외모가 달라서 암묵적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았고, 한국에선 ‘독일 아이’라며 따돌림을 당했다”고 했다. 중학교까지 9년간 홈스쿨링을 하는 동안 ‘학교에 안 다닌다’는 이유로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스스로도 “나는 이상한가”를 고민했다.

‘왕따’ 설움, 유대감으로 바꿔준 PC통신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가 주관하는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 우승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의 출발점이었다. 과학자들이 춤과 악기 등 재능을 총동원해 어려운 과학 지식을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고, 청중의 평가로 우승자를 가린다. 2015년 사이언스슬램 파이널에 참석한 모습. [사진 장동선]

2014년 독일 과학교육부가 주관하는 과학 강연 대회 ‘사이언스 슬램(SCIENCE SLAM)’ 우승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장동선의 출발점이었다. 과학자들이 춤과 악기 등 재능을 총동원해 어려운 과학 지식을 재미있고 쉽게 전달하고, 청중의 평가로 우승자를 가린다. 2015년 사이언스슬램 파이널에 참석한 모습. [사진 장동선]

그의 안식처 중 하나가 중1 때 입문한 PC통신이었다. 천리안 ‘고전음악연구회’ 동호회 최초 발기인으로 참여해 오프라인 번개 모임을 30번 넘게 진행했고, 공상과학(SF)소설 동아리인 ‘멋진신세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는 “실제 세상에선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다가 인터넷 세상이 열리면서 오프라인에서 경험하지 못했던 연대와 유대감을 온라인으로 일찍 경험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경험 때문일까. 그는 “기술이 중요해질수록 미래의 정답은 마음이 통하고 안전한 공동체에 있다”고 강조한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에 대한 불안감 속에 경험과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과는 더욱 끈끈해지고, 온라인 공간에서도 무엇이든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하는 커뮤니티가 더욱 중요하다”면서다. “그 역할을 제가 PC통신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14살부터 했었네요. 앗, 그걸 이제 깨달았어요. 그 경험이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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