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이재명·윤석열과의 꿈 같은 24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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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2.11/뉴스1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주최?방송 6개사 공동 주관 2022 대선후보 초청 토론회 시작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2022.2.11/뉴스1

요즘 ‘역대 대통령들의 마이야히’라는 동영상이 인기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12명의 얼굴 사진에 애니메이션 효과를 넣고 몰도바 그룹 오존(O-Zone)의 ‘보리수나무 아래의 사랑(Dragostea Din Tei)’을 합창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지난해 화제가 됐던 이 영상이 새 대통령 선출을 앞두고 역주행 중이다. 신기하고 웃긴 콘텐트인데 씁쓸한 댓글이 여럿이다. ‘정말 마음이 짠하네요. 다들 너무 즐거워 보여서….’

그러고 보니 전직 대통령의 환한 얼굴을 본 게 언제였던가. 새삼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불행을 절감한다. 얼마 전 사면 복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퇴원하면 대구로 간다고 한다. 서울 삼성동 자택은 팔았고 퇴임 후 거주하려던 내곡동 집은 검찰이 압류해 경매로 매각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 관계자는 “옥중에서 쓴 책 『그리움은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습니다』의 인세 수입이 상당해 대구 집값(25억원) 마련에 큰 도움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경호·경비 이외엔 연금·비서관·운전기사 지원 등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지 못한다.

개헌·집무실 이전 등 솔깃한 공약
선거 다음날에 실천 의지 판가름
어선격침, 정권수사 약속은 깨야

대통령의 불행이 상기되는 시점에 나온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4년 중임제 개헌 공약은 반갑다. 제왕적 대통령이 5년간 군림하는 현 체제가 불행을 잉태한다는 진단이 많다. 바람직한 권력 구조를 두고선 논란이 많지만, 군사독재 직후에 디자인한 ‘87년 체제’를 개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넓게 형성돼있다. 이 후보는 자신의 임기를 1년 줄여서라도 개헌을 하겠다고 말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역시 “수퍼 대통령 시대를 끝내자”며 개헌을 주장한다.

대선 때면 쏟아지는 공약은 5년 주기로 심연에 묻혀 있던 국민의 열망을 흔들어 깨운다. 당선 이후 돌변하는 모습을 매번 목격하면서도 잠시나마 즐거운 상상에 빠진다. 윤 후보는 광화문 정부서울청사로 들어가겠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지만 경호의 어려움을 이유로 번복한 사안이다. 지금도 청와대 홈페이지엔 광화문 대통령이 국정 과제로 버젓이 올라있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마무리된 이후 이전계획 수립’이라고 적었다. 현 정부의 국정 과제를 윤 후보가 계승하는 모양새다.

노무현 정부 때 민정수석·시민사회수석·비서실장으로 대부분 시간을 청와대에서 보낸 문 대통령이 당선 뒤 경호 이슈를 꺼낸 점은 의아하다. 윤 후보라면 더 어렵지 않을까. 전직 청와대 경호처 간부는 “대통령 경호는 군과 경찰에서도 대규모 인원을 투입하기 때문에 집무실 이전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특히 정부서울청사는 대로변에 있어 테러 등에 취약점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구중궁궐 청와대에 산다고 안전한 건 아니다. 2020년 7월 정창옥씨가 국회에서 문 대통령을 신발로 습격했던 사건이 일례다. 일련의 과정을 아무리 뜯어봐도 정씨가 허수아비를 세워 두고 신발을 투척하는 훈련을 했을 것 같진 않다. 50대 민간인이 신발을 대통령 바로 옆까지 날리는 세상인데 특수 훈련을 받은 북한 공작원이라면 어떨까. 정부서울청사조차 겁난다면 24시간 청와대에서 나오지 말아야 한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역시 광화문에서 집무하겠다는 생각을 밝힌 지 오래다.

후보들의 공언이 죄다 흔쾌하진 않다. 이 후보는 중국 어선을 격침하겠다고 했다. 사드 미사일을 추가 배치하겠다는 윤 후보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릴 중국에 핵폭탄 경고를 날린 셈이다. 윤 후보의 현 정부 적폐 수사 발언도 걱정스럽다. 문 대통령이 곧바로 격노했다. 웃는 얼굴의 전직 대통령을 한 명도 갖지 못하는 우리 국민이 측은하지 않은가.

이런 섬뜩한 내용만 빼면 기대되는 약속이 많다. 국민연금 개혁이 대표적이다. 네 후보 모두 고치겠다니 이제야 청년들에게 면이 서게 됐다. 대통령 공약을 실천하려면 임기 초반부터 서둘러야 한다는 사실은 ‘대통령 선거공약의 입법화에 관한 연구’(신현기, 2013) 등이 말해준다.

후보들이 던진 공약의 진정성은 이제 24일 뒤면 판가름난다. 이 후보가 당선될 경우 개헌 준비를 시작하는지 관찰하면 된다. 임기 초부터 움직이지 않으면 권력 구조 개편은 불가능하다. 윤 후보는 취임 첫날 광화문으로 가겠다는 약속을 이행하는지 보면 안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려면 선거 다음 날부터 정부서울청사 경호 준비에 들어가도 빠듯하다. 만약 당선이 확정된 직후 이런 기미가 안 보인다면 우리 국민은 또 한 번 속은 거다. 그렇다면 국민도 새 대통령의 허언을 어떻게 갚아줄지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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