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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윤·안 단일화, 국정 비전·철학부터 합의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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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철수 전격 제안, 단일화 논의 급물살

투명·신속한 협상으로 진정성 보여야

대선 때마다 막판 변수로 등장했던 단일화 논의가 이번에도 어김없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단일화 담판 의지를 거듭 피력해 온 데 이어 안 후보가 어제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를 제안했다. 대선을 23일 남겨놓은 시점에서 공식화한 야권 후보 단일화 이슈가 3·9 대선의 최대 분수령으로 떠오른 셈이다.

그동안 안 후보는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며 정권교체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윤 후보와의 단일화엔 “당선이 목표”라며 일축해 왔다. 동시에 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으로부터도 단일화 러브콜을 받아왔음에도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아 유권자들에게 혼선을 초래했다. 그러나 안 후보가 13일 윤 후보와 단일화할 뜻을 공개 천명한 만큼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해소된 의미가 있다. 또 그동안 두 후보 모두 정권교체를 한목소리로 외쳐온 점에서 단일화의 명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단일화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곤란하다. 당선만을 목표로 한 정치공학적인 이벤트성 단일화로는 당선이 보장되지도 않을뿐더러 단일화 이후에도 적잖은 부작용을 드러내 온 게 지난 역사의 교훈이다. 1997년 DJP(김대중·김종필)연합은 공동정부를 목표로 내걸었음에도 결국 2년여 만에 파국을 맞았다. 2002년 노무현·정몽준, 2012년 문재인·안철수 단일화를 돌아보면 국정 철학을 공유한 정책 연합이 아니라 승부에 집착한 ‘자리 나누기’의 성격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윤·안 후보는 단일화 논의에 앞서 바람직한 국정 운영 방향과 비전에 대한 철학부터 합의해야 한다. 이어 어떤 정책들을 공유하는지, 집권하면 어떻게 정권을 공동으로 운영할 것인지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협상의 전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유권자들이 단일화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노력 없이 두 후보가 밀실에서 대선후보와 총리 자리를 교환하는 나눠먹기식 단일화 협상을 한다면 여론의 몰매를 맞고 공멸할 우려가 높다.

게다가 단일화 방법론을 놓고도 윤 후보는 양자 간 담판, 안 후보는 초당적 여론조사를 주장하며 대립하고 있다. 오늘(14일) 후보 등록 마감에 이어 내일(15일)부터 공식 선거운동 기간이 개시되는 빠듯한 대선 시간표를 고려할 때 양측이 단일화 방법론을 놓고 기 싸움과 줄다리기로 협상을 질질 끌면 유권자들의 염증과 피로감만 키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선 때마다 단일화 논란이 정책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 온 흑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정권교체는 단일화의 필요조건일 뿐 자체가 목표가 될 순 없다. 단일화의 최종 목표는 윤·안 후보가 내세워 온 ‘공정과 상식’ ‘경제과학 강국’ 같은 가치와 비전의 실현임을 두 후보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