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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이게 나라냐”는 비노조 택배기사의 울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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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택배노조 CJ대한통운 본사 무단 점거

정부,불법 눈감아 '노조 편향' 비판 자초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전국비노조택배기사연합 기사들이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불법 침입 및 점거 농성'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2.13/뉴스1

(서울=뉴스1) 황기선 기자 = 전국비노조택배기사연합 기사들이 1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의 CJ대한통운 본사 불법 침입 및 점거 농성'을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2.2.13/뉴스1

민주노총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 CJ대한통운본부의 CJ대한통운 본사 점거가 닷새째 이어지고 있다. 회사는 어제 “법치국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말하기 힘든 수준의 폭력과 불법이 자행되는 현장”이라며 “엄정한 법 집행을 다시 한번 정부에 요청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지난해 6월 택배기사 과로사 방지를 위한 사회적 합의가 불씨가 됐다. 당시 결정한 택배요금 인상분 배분을 놓고 회사 측과 노조 간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28일 파업에 돌입한 택배노조는 택배 요금 인상에 따른 초과 이윤(노조 주장 연 2500억~3500억원) 분배를 요구해 왔다. 하지만 회사는 노조가 말하는 초과 이윤 자체가 근거 없는 인상액을 토대로 한 잘못된 추정액이라고 주장한다.

보다 근본적인 갈등은 회사와의 직접 대화를 둘러싸고 벌어졌다. 택배노조는 업계 1위인 CJ대한통운과 협상해 교섭 상대로서 인정받겠다는 전략이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가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본사가 아닌 대리점과 계약하고 있는 만큼 대화에 직접 나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해 6월 CJ대한통운에 원청 사용자로서 택배노조와 교섭하라고 판정했지만 회사 측은 불복해 행정소송을 냈다. 아직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았는데, 노조가 장기 파업에 이어 본사 무단 점거까지 나선 것은 지나치다. 사회적 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노조 주장도 근거가 부족하다.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분류 인력 투입 등 사회적 합의가 이행되고 있다는 현장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택배업계에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생업을 위해 농수산물 판매에 나선 농어민과 소상공인이 있고, 소비자가 있다. 이들은 지난 설 대목에 배송 지연으로 큰 고통을 겪었다. 이번 파업에 참여한 민주노총 소속 택배기사만 있는 게 아니라 비노조 택배기사들도 있다.

파업 장기화로 물량이 줄어 생계를 위협받는 비노조 택배기사들은 “일하고 싶다”고 호소한다. 택배노조가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32조 위에 군림할 순 없다. 비노조 택배연합의 한 택배노동자는 중앙일보의 ‘나는 고발한다’ 코너에 게재된 글에서 택배노조의 불법을 방관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이게 나라가 맞냐”고 묻고 있다.

며칠 전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문재인 정부를 노조 편향적이라고 평가했다. 현 정부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관련 노동3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해고자 노조 가입 등 노조 입장만 반영하고 대체근로 허용, 생산 핵심시설 점거 금지 같은 사측의 대항권 요청은 묵살했다. 택배노조의 본사 무단 점거는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면 쉽게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