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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류호정이 고발한다

정의당의 페미니즘은 실패했다, 류호정도 그렇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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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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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성평등 대한민국'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배경은 지난해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관련 기자회견. 그래픽=박경민 기자

지난해 12월 선거대책본부 출범식에서 '성평등 대한민국' 플래카드를 들고 있는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배경은 지난해 박원순 전 시장 성폭력 사건 관련 기자회견. 그래픽=박경민 기자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을 봤다. 영화 속에서 돌봄 일을 하는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이모는 “한 사람을 돕는 것은 모든 사람을 돕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에 동의하는 시민은 좋은 시민일까?

한국리서치의 지난해 9월 3~7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한국의 대표적인 소수자 집단, 예컨대 장애인·빈곤층·노인·성소수자·외국인·난민·탈북자·중국동포의 권리 보장에 관한 정책이 확대돼야 하는지 아니면 축소돼야 하는지 물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생각한 응답자는 그렇지 않은 응답자보다 ‘확대’를 더 많이 선택했다.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할수록 소수자에 대한 태도가 '관대하다'고 볼 수있다.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속 피터 파커(오른쪽)와 메이 숙모. [중앙포토]

영화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속 피터 파커(오른쪽)와 메이 숙모. [중앙포토]

실제로 페미니스트는 서로 연결되어 돌보는 것에 관심이 많다.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그런 의미다. 여성 권리와 주체성을 확장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이론인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가치는 '평등'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우리 헌법 제10조의 정신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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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세상이다. 기댈 곳 없는 요즘이다. 고독사와 자살이 늘고, 우울 수치가 증가하는 지금 대한민국에는 돌봄이 필요하다. 서로 돌봄을 실천하는 페미니즘이야말로 정말 필요하다.

벌써부터 동의하지 않는다는, 헛소리 말라는 조롱이 귀에 들린다. 일종의 검열 효과다. 불과 5년 전과 달리 2022년 대선판에서 ‘페미’는 금기어가 됐다. 표를 갈구하는 기득권 정치는 ‘여성가족부 폐지’‘N번방 방지법 폐지 ‘(성범죄 고발) 무고죄 강화’를 선전한다. (이대남의 지지를 등에 업은) 제1 야당 대표 당선과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라는 ‘정치적 효능감’으로 무장한 2030 남성들이 이에 환호하고 열광한다. 한편 이런 현상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이들의 말과 글에는 좌표가 찍힌다. 무섭게 댓글이 달린다. 입에 담을 수 없는 모욕이 난무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그놈의 '워마드' 타령이 한편에 있다. 군인을 우롱하고, 남아를 공격하며, 남성을 혐오하는 워마드 탓에 페미니즘이 변질됐다는 주장은 논리라도 있어 차라리 다행이다. 하지만 '일베'가 보수 우파의 상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워마드가 여성주의를 대표할 수는 없다. 누가 그런 저급한 행동에 동의하겠는가? 복잡하고 진지한 이유 탓에 대놓고 비판 못하는 여성운동가들을 이해한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워마드 XXX!”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엘리트 여성운동가들의 실책이 다른 한편에 있다. ‘문재인 페미니스트 정부와 민주당’은 박원순·오거돈 성폭력 사건을 방관하는 것으로 모자라 피해호소인이라는 해괴한 신조어를 만들었다.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를 옹호했으며,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아들의 여혐을 감쌌다. 소름 돋는 내로남불은 셀 수가 없고, 페미니즘은 난처해졌다.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낯을 들 수 있는데, 그랬다간 민주당 진영은 물론 이른바 민주개혁 진영, 깨어있다는 그 모든 진영에서 퇴출이다. 불가능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달 17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복귀 기자회견장에는 심 후보와 정의당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적힌 걸개그림이 걸렸다. [중앙포토]

지난달 17일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복귀 기자회견장에는 심 후보와 정의당에 대한 세간의 비판이 적힌 걸개그림이 걸렸다. [중앙포토]

얼마 전 정의당 심상정 대선 후보는 모든 일정을 전면 취소하고 칩거에 들어갔다. 며칠 뒤 돌아온 심 후보 복귀 기자회견장에는 심상찮은 백드롭이 걸렸다. ‘심상정’이라는 글자 속에 정의당과 심상정을 비난하는 어휘들이 들어있다. 교조주의·선생질, 그리고 '노잼'이 있다.

맞다. 정의당은 좋은 정책을 잘 알리지 못했다. 류호정도 마찬가지다.
기후정의 실현, 차별금지법, 동물복지법,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같은 정의당 정책은 페미니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서로 연결하고 돌보는 정책이다.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는 정의당의 ‘정강’이 페미니즘을 채택한 것일 수도 있다. 상호적인 거니까.
반면 페미니즘을 악마화하는 정당은 기후정의를 배타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의 노동권은 중·소상공인의 부담을 핑계로 부정하지만, 정작 그들을 위한 유통발전법이나 대·중소기업 상생협력법은 상임위에 처박아 둔다. 국민을 각자도생하게 만든 뒤 능력주의와 공정으로 포장한다. 우리는 그런 문제를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다. 그저 ‘중계’하기 벅찼다.
정의당은 페미니즘을 쉽게 설득하지 못했다.

류호정도 마찬가지다. 

나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 도전하면서 열 개의 글을 썼다. 내가 누군지 정리하고,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자가 검증의 일환이었다. 그 중 세 번째 글 “성상품화의 중심에서 ‘아니’라고 말하기(https://blog.naver.com/hovan9289/221724871829)”에는 내가 왜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가 담겨 있다. ‘탈코르셋’ 같은 페미 선언을 피곤한 것으로만 여겼던 류호정이, 젊은 남성 유저가 대부분인 게임업계에서 겪었던 일들은 '계기'가 됐다. 성희롱과 침묵, 그로 인한 또 다른 피해자의 용기는 류호정을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누구나 같은 경험을 갖고 있지 않기에 우리의 언어는 더 쉽고, 가능하다면 ‘잼’이었어야 했다. 총칼로 하던 전쟁은 말글로 하는 정치가 됐는데, 우리의 무기는 낡고 고리타분하고 무뎠다. 공감과 연대를 구하기 위해 더 관심과 흥미를 좇았어야 했는데, 잘 안됐다. 게을렀고 부족했다.

정의당 대표단, 국회의원단, 전국 당직자와 활동가들이 피켓을 들었다. 피켓에는 “당당하게 다시 뛰겠습니다” “겸손하게 다시 뛰겠습니다” “제대로 다시 뛰겠습니다”가 적혀 있었다. 아침 8시에 여의도역에 서서 살을 에는 듯한 추위 속에 시민들께 고개를 숙이며 피켓 속 글귀를 다시 한번 다짐했다.

페미니즘은 행복추구권의 한면이다. 공감과 연대의 공존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을 거라 믿는 페미니스트들이 더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더 모여야 한다. 모든 작용에는 반작용이 있다. 혐오의 캐치프레이즈가 표가 된다면, 그것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유권자도 분명히 있을 거다.

정의당과 류호정의 역할은 이제, 잘 알리고, 쉽게 설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누군가를 돕는 것은, 모두를 돕는 것이다. (When you help someone, You help everyone)

[박가분의 인정불가]남성에게도 공정한 잣대를

류호정 정의당 의원 글에 대해 박가분 작가가 보내온 답글 형식의 칼럼을 붙입니다. 글 전문은 중앙일보 사이트(www.joongang.co.kr/series/11534)의 류호정 칼럼 하단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