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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한복, 손흥민=손오공 후손이란 中…숨겨진 저의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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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입은 조선족은 ‘트로이 목마’였죠. 중국이 이용한 걸로 보여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Voluntary Agency Network of Korea)’ 박기태(48) 단장은 베이징 겨울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한 ‘조선족 한복’에 대해 “숨겨진 저의가 있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복은 한국 것이지만 조선족 고유 의상이기도 하다”는 중국 정부 논평에 대해서도 “동북 공정의 데자뷔”라고 비판했다.

지난 9일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 박기태(48) 단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지난 9일 민간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 박기태(48) 단장이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 단장은 올림픽 개막식에 앞서 ‘중국 한푸’ 관련, 패션잡지 보그와 한차례 신경전을 펼치기도 했다. 보그는 지난 2일 한복과 흡사한 한푸 의상을 입은 중국인 유튜버 ‘시인’(Shiyin) 사진을 SNS에 올렸다. 시인은 “한복은 중국 옷을 베낀 것”이라고 줄곧 주장해온 인물이다. 보그는 그가 입은 한복 풍 의상을 ‘한족이 통치하는 중국에서 입었던 의복 양식’으로 소개했다. 반크는 이 사진에 ‘Sponsored by China’라는 비판 문구를 넣고 포스터로 만들어 뿌렸다. 박 단장은 “중국의 ‘한복 공정’은 ‘김치·손흥민·세종대왕·김연아’로 이어져 온 ‘문화공정’이다. 과거 역사 왜곡을 펼쳤던 그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족 한복’이 소수 민족 우대차원이라고?”

최근 보그 잡지 비판했다. 의도는 뭔가.
한복 논란은 해프닝일 수 없다. 과거부터 역사 왜곡 논란을 끊임없이 일으킨 중국이 수많은 문화 중 뜬금없이 한복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잡지 모델로 나선 유튜버 시인도 ‘모든 한국 문화는 중국에서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등 전력이 화려하다. 보그 지가 이런 사람을 모델로 세웠다. 숨겨진 저의가 있다. 사기꾼이 사기 칠 때 속마음을 다 드러내나. 그런 불순한 의도를 세련되게 비판하고 싶었다. 그래서 ‘Sponsored by China’, ‘중국 정부의 돈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한국이 왜 분노하는지 세계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보그 독자들이 잡지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반크는 패션잡지 보그에 등장한 중국 유튜버 '시인'의 사진에 비판 문구를 실어 우회적으로 중국의 '한복 공정'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반크

반크는 패션잡지 보그에 등장한 중국 유튜버 '시인'의 사진에 비판 문구를 실어 우회적으로 중국의 '한복 공정'을 비판하는 포스터를 제작했다. 반크

중국 정부 배후 주장은 근거가 약하지 않나. 감정 섞인 비판이란 의견도 있다.
우리는 그 모델이 등장한 맥락을 소개했을 뿐이다. 중국은 절대로 ‘한푸는 한국 한복과 다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이런 걸 방치하니 중국은 계속 선을 넘는다.
올림픽 개막식 한복 논란 때도 중국 정부는 ‘한복 공정’ 부정했다.
2005년의 데자뷔다. 당시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통째로 뺏어가려 했다. 한국은 한복 논란과 비교도 안 되게 분노했었다. 중국이 얼마나 놀랐겠나. 중국은 “민간 학자들의 연구일 뿐이다. 조심하겠다”라고 해명했다. 지금과 똑같은 방식의 해명이다. 우린 또 금방 잊었다. 하지만 중국은 포기 안 한다. ‘만리장성’부터 ‘고구려·발해’까지 왜곡이 계속된다. 맥락을 봐야 한다. 조선족이 평소 입는 한복과 개막식에 나온 한복이 같나. 조선족은 일종의 ‘트로이 목마’다. 중국이 이용한 것처럼 보인다. 동북공정 때도 중국 정부는 행동하지 않았다. 해외 교과서 등을 움직였다. 한편에선 “중국이 해외교과서 역사 왜곡을 추진했다는 근거가 있느냐”라고 반문한다. 어떤 나라가 중국을 대신해 고구려와 발해 역사가 중국 역사라고 홍보할까. 중국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지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일 오후 중국 베이징 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개회식에서 한복을 입은 한 공연자가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조선족’ 등 소수민족 반발 우려해 전통의상인 한복을 입힐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던데.
과거엔 중국 정부가 조선족 출신을 간부로 많이 썼다. 한글 교육이나 한국문화도 많이 존중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조선족 학교도 점점 한국어 교육을 막고 지원을 끊는다. 만약 중국 정부가 조선족의 한국문화 존중해주고, 한국어 수업시간 늘려줬다면, 이런 의견도 수긍됐을 것 같다. 하지만 중국은 조선족 문화를 단절시키려 한다. 또 다른 소수민족을 탄압한다. 소수민족을 우대하고 싶었다면서 왜 탄압을 하나. 앞뒤가 안 맞는다.
문체부 장관 등 정부의 소극적 대처 비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분노했다. 외교부 장관이 그랬다면 이해한다. 하지만 문체부 장관은 달라야 한다. 우리 문화 정체성에 대해 가장 강하게 대표성을 갖고 이야기해야 할 부처 장관이 외교부 장관처럼 상대방을 배려한다. 본인이 외교부 장관인 것처럼 행동했다. 문체부 장관이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게 더 큰 갈등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개인적인 판단으론 백기를 든 것 같아 안타깝다.
얼마 전엔 토트넘 구단 ‘중국 설’ 홍보에 손흥민 선수가 담겼다. 어떤 맥락인가.
여러 문제가 맞물려있다. 춘제(春節·중국 설)에는 전 세계가 (설을 축하하는) 빨간색으로 도배된다. 문제는 아시아의 모든 설이 다 중국 것인 양 ‘Chinese New Year’라고 말한다는 점이다. 우린 한복 입고 떡국 먹고 세배하고, 아시아 각국도 저마다의 문화로 설을 보내지만, 중국은 ‘다 원래 우리 것’이라고 생각한다. 유엔(UN)도 수년째 설 우표에 ‘중국 설’이라고 썼다. 구글·애플도 그렇다. 중국 홍보 대행사다. 토트넘이 춘제 홍보에 손 선수를 갖다 붙인 것도 해프닝으로 치부해선 안 되고 민감해야 한다. ‘중국엔 한푸가 있으니 한복 비슷하게 입힐 수 있지’, ‘조선족이 한복 입으니까 개막식에서 그럴 수 있지’, ‘손흥민 선수가 아시아 대표니까 춘제 홍보할 수 있지’…‘그럴 수 있지’가 반복된다면 의심해야 한다. ‘손흥민은 중국 손오공의 후손’이라고 말한 맥락과 ‘음력 설이 중국 것’이라고 말한 걸 결합한 중국의 의도와 그 맥락을 봐야 한다.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구단은 중국 춘제 홍보물에 손흥민 선수 이미지를 포함시켰다. 반크는 토트넘에 공식 항의했고, 구단 측은 반크 항의를 수용했다. 반크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구단은 중국 춘제 홍보물에 손흥민 선수 이미지를 포함시켰다. 반크는 토트넘에 공식 항의했고, 구단 측은 반크 항의를 수용했다. 반크

미국 미술관 속 만리장성이 평양까지 뻗은 이유

과거 ‘동북공정’과 전개가 비슷하다.   
당시 구글에 ‘고구려’를 검색했더니 내로라하는 해외 사이트에 “한국 역사는 668년부터”라고 되어있었다. 668년은 고구려가 멸망한 때다. 668년 이전 한국 역사를 부정한 셈이다. 고구려가 우리 역사가 아니란 말이다. 동시에 중국은 ‘고구려가 그들의 역사’라고 홍보했다.
각종 해외 책자엔 만리장성 길이가 왜곡돼 평안도와 그 이남으로 뻗어있다. Oxford· Glexcoe 출판

각종 해외 책자엔 만리장성 길이가 왜곡돼 평안도와 그 이남으로 뻗어있다. Oxford· Glexcoe 출판

‘만리장성’을 북한까지 늘여놓기도 하던데.   
10년 전쯤 미국 LA 게티 미술관(The Getty·게티 센터)에 들렀다. 정문에 들어서자 중국 전시관 입구 큰 벽에 걸린 대형 지도를 봤다. 만리장성이 평안도까지 들어가 있었다. 미국 유명 박물관에 그려진 만리장성이 왜 한반도를 넘어 평안도, 평양 근처에 와 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유네스코에 올라간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북경 근처 허베이 성 산해관이다. 10년 넘게 만리장성이 마치 생물처럼 점점 늘어났다. 또 만리장성을 넓혀나간 곳들엔 고구려·발해 성(城)터가 있다. 이게 중국 성으로 둔갑했다. 우리는 우리 것만 지키느라 바빠서 중국이 만든 지도 속 만리장성까지 확인할 여유가 없는데, 중국은 몰래 왜곡한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해외나가면 중국관을 꼭 들린다. 한국역사 왜곡이 한국 전시관에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중국관이 바로 옆인데 못 본다. 일본도 중국처럼 권위 있는 기관을 통해 역사를 왜곡한다. 박물관·미술관·UN을 통해 왜곡하면 쉽다. 그들 자료로 만드니 우린 알 수 없다. 일본의 군함도·사도 광산 유네스코 등재 노력도 마찬가지다.
미국 LA 게티미술관 중국 전시관에 걸린 중국 지도엔 만리장성이 평안도까지 이어져 있다. 반크

미국 LA 게티미술관 중국 전시관에 걸린 중국 지도엔 만리장성이 평안도까지 이어져 있다. 반크

중국의 ‘문화공정’, 예고하는 침략은 없다

수십년간 이어져 온 논란, 중국 본심은 뭐라고 보나. 
중국 공산당은 오랜 기간 일사불란하게, 꾸준하게 움직인다. 결과를 봐야 한다. 2005년 동북공정 당시 ‘고구려·발해 역사 왜곡은 민간 학술연구다’, ‘만리장성 왜곡은 중국 정부가 모르는 일이고 학자들이 했다’면서 얼렁뚱땅 넘어간 게 15년 전이다. 최근 한복, 작년엔 김치, 그 전엔 ‘독립운동과 세종대왕도 중국 것’이라고 했다. 점점 범위가 넓어지는데도 의도를 물어야 하나. 말이 아닌 행동이 진심 담긴 대화일 수 있다. 한국은 상대방이 속마음을 말하기만을 기다리는 순진함이 있다. 강도가 100m 밖에서 차근차근 우리집 대문 근처로 올 때, ‘그냥 놀러 온 걸 거야’라면서 놔둔다. 문 앞에 다 와도 ‘안 들어올 거야. 집 구경하는 걸 거야’라면서 또 놔둔다. 그리고 문 열고 덤빌 때가 되어서야 ‘왜 이래? 그동안 들어온다고 말 안 했잖아’라고 말할 건가. 어떤 나라가 침략할 때 목적 밝히고 들어오나. 속내를 들키면 그들은 숨기고 방어하면 그만이다.

박 단장이 처음 반크를 만들었을 땐 거창한 목적이 없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인터넷 홈페이지 개설 숙제로 ‘사이버 관광 가이드’ 홈페이지를 만든 게 반크의 시작이었다. 한국을 알고 싶은 외국대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을 주선해주는 펜팔 사이트였다. 이랬던 반크는 왜 사이버 민간외교 전장에 뛰어들었을까. 그는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 친구들에게 영어로 된 한국 지도를 보내주면서, (지도 속) 왜곡된 정보에 충격을 받았던 게 시작”이라고 했다.

“독도가 왜 다케시마?”…CIA가 20년만에 낸 첫 대답은

어떤 정보가 왜곡됐나.   
눈에 띈 건 ‘내셔널지오그래픽’과 ‘CIA’ 자료였다. CIA는 약 200개 국가 정보를 한 달 주기로 업데이트한다. 또 매년 전 세계 지도를 발행하는데, 1999년부터 CIA는 독도를 ‘Liancourt rocks(리앙쿠르 락스)’, ‘Takeshima/Dokdo(다케시마/독도)’라고 썼다. 독도 주변 바다는 ‘Sea of Japan(일본해)’으로 썼다. 해설에선 “1950년부터 한국이 점거해 일본과 치열하게 싸운다”고 적었다. 그래서 “CIA가 일본 정부 기관도 아니고, 한국 입장은 안 듣고 왜 일본 입장에서만 설명 하느냐. 그 근거를 알고 싶다”는 내용의 메일을 CIA에 보내기 시작했다.
CIA가 발행하는 지도 속 동해는 20년째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어 있다. 독도는 'Takeshima/Dokdo'로 병기 되어있다. 2005년부터 일본 지도엔 독도에 화살표가 추가됐다. CIA 홈페이지

CIA가 발행하는 지도 속 동해는 20년째 Sea of Japan으로 표기되어 있다. 독도는 'Takeshima/Dokdo'로 병기 되어있다. 2005년부터 일본 지도엔 독도에 화살표가 추가됐다. CIA 홈페이지

답장이 오던가.  
20년째 메일을 보냈는데 CIA는 무시하고 있다. 답변이 한 번 왔다. “참고할 게”. 얼마나 거만한가.
항의했으면 조금은 변화가 있을 법도 한데. 
나쁜 변화는 있었다. 옛날엔 CIA가 ‘리앙쿠르 락스(다케시마/독도)’라고만 썼는데, 2005년부턴 일본 지도 속 독도 부근에 화살표를 넣었다. 여길 보라는 듯이. 또 ‘일본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등 일본 측 주장이 반영된 설명도 늘었다. CIA가 일본 편을 드는 것 같았다. CIA가 발행한 한국 지도에 화살표가 추가된 건 2007년쯤이다. 일본의 로비 결과로 추측한다. 반면 내셔널 지오그래픽은 며칠 만에 일본해 표기를 바꾸겠다는 답변을 줬다. 이 내용을 갖고 출판사 약 1000곳에 편지를 보냈다. 놀랍게도 해외 유명 교과서·관광·지도 출판사들이 동해 표기를 바꾸겠다는 답변을 보냈다. 20년 전엔 동해 표기가 3% 정도였는데, 지금은 40% 정도다. 그래서 일본·중국 탓을 안 한다. 한국 대응이 문제였을 뿐이다. 반크는 20년째 ‘절대로 한국 정부 욕하지 말자’는 원칙을 갖고 활동한다. 정부가 답이 아니니까.

외세의 잦은 침략으로 잃은 건 땅 아닌 꿈과 상상력

‘독도·동해’ 표기 바꾼다고 문제가 다 해결될까.  
한국은 삼면이 바다다. 그런데 해외 지도는 물론이고, 한국 정부에서 만든 지도에도 바다가 좁게 그려져 있다. 대부분 동쪽 바다 끝은 독도다. 독도 너머 바다를 안 그린다. 남해도 제주도가 끝이다. 가끔은 마라도를 제주도 위로 올려버린다. CIA 지도에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면 한국 땅은 좁은 감옥에 갇혀있는 모양이다. 바다를 거의 안 넣는다. 반면 일본 지도엔 일본 본토보다 몇 배 큰 바다가 웅장하게 펼쳐져 있다. 심지어 한국 땅도 다 포함됐다. 자신들이 동북아시아 주인인 줄 안다. 한국은 독도라는 섬에만 관심을 갖지, 독도 주변 바다가 우리 영토라는 것엔 별 관심이 없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CIA가 발행한 한·중·일 지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일본 중국과 달리 바다 영토 범위가 매우 좁게 그려져 있다. 일본지도엔 한국 영토가 모두 담겼다. CIA 홈페이지

CIA가 발행한 한·중·일 지도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일본 중국과 달리 바다 영토 범위가 매우 좁게 그려져 있다. 일본지도엔 한국 영토가 모두 담겼다. CIA 홈페이지

어떤 면에서 중요하다고 보나. 
인간 운명은 생각의 범위에 달렸지 않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외세의 잦은 침략으로 땅만 뺏긴 게 아니다. 상상력과 꿈도 뺏긴다. 우린 한국 땅을 벗어나 상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가 우릴 어떻게 바라보는지, 우리를 어떻게 알려야 하는지 고민하기 어렵다. 빼앗기면 분해하고, 흥분하는 데만 익숙하다. 침략과 지배를 위한 게 아니라도, 올바른 미래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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