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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학’ ‘해적’ 대본 쓴 흥행사 천성일 "세상 복잡할수록 단순해지려 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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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올초 각각 극장가와 안방 흥행을 휩쓴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각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극본을 쓴 천성일 작가가 10일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올초 각각 극장가와 안방 흥행을 휩쓴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각본,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 극본을 쓴 천성일 작가가 10일 취재진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저는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모든 것을 단순화하는 버릇이 있죠. 이쪽저쪽 말고 다른 게 있을 것이다, 생각하는 순간 글을 못 쓰게 되거든요.”

영화 '해적 2'·드라마 '지우학' #설 극장가·넷플릭스 동시 흥행 #"OTT 세계 1위? 바뀔 것 없죠"

좀비 학원물 ‘지금 우리 학교는’(1월 28일 출시), 판타지 모험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1월 26일 개봉, 이하 ‘해적 2’)로 각각 넷플릭스‧극장가 흥행 1위를 휩쓴 시나리오 작가 천성일(51)씨가 집필 비결을 이렇게 밝혔다.
10일 화상 인터뷰로 만난 그는 장르도, 시대 배경도 전혀 다른 두 작품의 각본 및 극본을 “우연히 동시기에 집필했다”고 했다. 한효주‧강하늘 주연의 ‘해적 2’는  영화 제작자(하리마오픽쳐스 대표)이기도 한 천 작가가 8년 전 기획‧제작‧오리지널 각본을 맡은 866만 흥행작 ‘해적: 바다로 간 산적’을 잇는 속편이다. 조선 시대, 사라진 고려 왕실의 보물을 찾아 나선 해적과 의적들의 코믹한 활극을 그려 12일까지 누적 118만 관객을 동원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주동근 작가의 동명 웹툰을 토대로, 좀비가 창궐한 고등학교에 고립된 10대들의 처절한 생존 고투를 담아 출시하자마자 전 세계 넷플릭스 TV 부문 1위에 올랐다.

보물 쫓는 해적, 좀비 맞선 10대…‘사람'이 곧 드라마

천 작가는 ‘해적2’에 대해 “‘살기 빡빡하고 힘드시죠? 우리 2시간 동안 같이 모험 떠나듯 놀아봐요’가 메시지였다”고 설명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에 대해선 “좀비 특성, 재난 상황보다 좀비로 인해 무너지는 학생들의 관계가 더 중요했다. 학생들의 우정과 사랑은 하이틴 로맨스 구조를 많이 차용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기획하는 과정에서 살아남는 것들은 여전히 사람에 대한 이야기”란 그는 “가령 ‘해적’의 해랑은 여성 캐릭터를 메인으로 내세운 장단점을 따지기보단, 그 많은 남자 무리를 이끄는 한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했다”고 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웹툰을 영상물로 옮겨올 때도 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람 사이에 관계가 형성되고 파탄나는 게 가장 큰 드라마”라면서다.

판타지 모험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촬영 당시 현장 모습이다. 배우 한효주, 강하늘이 각각 조선 시대 바다를 호령하는 해적선 주인과 고려 장수 출신 의적 두목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판타지 모험 영화 '해적: 도깨비 깃발' 촬영 당시 현장 모습이다. 배우 한효주, 강하늘이 각각 조선 시대 바다를 호령하는 해적선 주인과 고려 장수 출신 의적 두목 역할로 주연을 맡았다.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지금 우리 학교는’은 10대들의 이야기지만, 좀비 액션 수위 탓에 청소년 관람 불가 등급을 받았다. 사춘기 첫사랑부터 빈부격차‧학교폭력 등 사회 문제를 많은 수의 등장 인물에 녹여내다 보니 ‘산만하다’ ‘12부작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는 반응도 나왔다. 관람평 중엔 고등학생들이 제대로 된 구조를 받지 못하고 학교에 갇힌 모습이 세월호 참사가 떠오른다는 것도 있다. 천 작가는 “극 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는데 어느 부족은 아이들이 죽었을 때 슬퍼하고 어느 부족은 노인이 죽었을 때 슬퍼한다고 한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회로 갈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 출몰지가 된 고등학교를 무대로 살아남은 학생들의 사투를 그렸다. 지난달 28일 전세계에 공개된 지 10일 만에 TV 비영어 부문 역대 시청 순위 5위에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바이러스 출몰지가 된 고등학교를 무대로 살아남은 학생들의 사투를 그렸다. 지난달 28일 전세계에 공개된 지 10일 만에 TV 비영어 부문 역대 시청 순위 5위에 올랐다. [사진 넷플릭스]

천 작가는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2008)으로 각본 데뷔 후 시대‧장르를 넘나드는 영화‧드라마로 흥행의 단맛‧쓴맛을 다 봤다. 배우 김하늘이 베테랑 국가정보 요원을 연기한 코미디 ‘7급 공무원’(2009)의 제작‧각본을 맡아 403만 관객을 동원했고, 이어 극본을 쓴 KBS2 사극 드라마 ‘추노’(2010)는 최고 시청률 34%를 기록했다.
반면 그가 제작‧각본 한 가수 박진영 주연 코미디 영화 ‘5백만불의 사나이’(2012)는 관객 10만, 직접 연출까지 겸한 감독 데뷔작 ‘서부전선’(2015)은 관객 60만에 그치며 흥행 참패했다. “‘서부전선’이 더 아픈 손가락이죠. ‘지금 우리 학교는’ 윤찬영 배우가 ‘서부전선’ 팬이라고 잘 봤다기에 ‘금칙어’라 그랬죠.(웃음)”
그는 “이런 공식 석상에선 작품의 흥망을 투자금 손실 기준으로 얘기하지만, 방구석에선 달라요. 가령 ‘더 패키지’(2017‧JTBC)는 시청률 2~3%밖에 안 나온 드라마지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고 어디 가서 망했다는 얘기는 안 해요. 영화 ‘소수의견’(2015‧관객 38만명)도 의미 있고 재밌는 작품이라 손실은 났어도 마음 속에서 흥한 작품으로 기억하고요.”

그는 “영화는 어디 있을지 모를 섬을 찾아 떠나는 느낌이다. 길도 없고 무섭지만 도달했을 때 쾌감이 제일 좋다. 코로나 이후로 극장에서 볼만한 규모감‧깊이감이 있는 영화들만 보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면서 “방송은 드라마 포맷과 내용의 경직된 게 많이 풀어지는 과정 같다. OTT(온라인 스트리밍)는 창작자의 자유를 많이 열어주고 제작단에서 관리는 타이트해지는 느낌”이라 비교했다. 10년 전과 흥행공식도 달라졌다고 했다. “장르‧배우에 대한 충성도가 적어졌다. 누구 작품이니까 성공 보장되는 것들이 상당히 없어졌다”면서다.

‘지우학’ 세계 1위 달라질 것 없어…올림픽 같은 경쟁 아니죠  

또 “‘해적’이 코로나의 중심에 서 있어 여러 스태프가 공들인 것이 (평시보다 관객 수에서) 빛을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 학교는’의 세계적 반응이 향후 창작 활동에 영향을 미칠 것 같진 않다고 했다. “국내에서도 살아남기 힘든데 해외에선 어떤 게 먹힐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죠. 가장 인상적인 건, 우리 현실의 학교를 있는 그대로 그렸는데 해외 시청자들이 이해한다는 게 놀라웠어요. 영어가 짧아서 다 해석은 못 하지만 해외 반응도 보고 했는데 그로 인해 뭔가 달라지진 않을 것 같아요. (창작은) 올림픽처럼 기록 경쟁하는 분야가 아니잖아요. ‘다음에 몇 등 해야지’ ‘어디 나가서 메달 따야지’ 다음을 계산하진 못하죠.”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 설치된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팝업존에 시민들이 모여 각종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센트럴시티에 설치된 넷플릭스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 팝업존에 시민들이 모여 각종 체험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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