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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원 샀는데 230만원, 복권처럼 짜릿"…리셀로 돈버는 그들 [밀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달 14일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서 사람들이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17만9000원에 판매된 ‘에어 조던 1 로우 G’는 리셀 시장에서 80만 원에 팔렸다. [유튜브 캡처]

지난달 14일 신세계백화점 대구점에서 사람들이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를 구매하기 위해 매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17만9000원에 판매된 ‘에어 조던 1 로우 G’는 리셀 시장에서 80만 원에 팔렸다. [유튜브 캡처]

혹시 이 사진 보신 적 있으신가요? 지난달 14일 대구 신세계 백화점의 매장 오픈 시간 모습인데요. 수십명의 사람들이 한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바로 나이키 운동화 매장입니다. 시가 17만원의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만 하면 ‘리셀시장’을 통해 50만원 이상의 웃돈을 얹어 되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즘 이처럼 한정판 상품, 이른바 ‘희귀템’을 구매해 되파는 ‘리셀’이 MZ 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취미와 재테크 사이에 위치하는 MZ세대만의 리셀 문화를 밀실팀이 취재했습니다.

[밀실]<제84화> #취미가 돈이 되는 '리셀 문화'

“복권 당첨 같은 짜릿함”…운동화 추첨에 가족 계정 총동원

29살 직장인 정은혜씨는 우연히 회사 동료의 권유를 받아 리셀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됐습니다.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는 과거에 매장에서 선착순으로 판매를 하다가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온라인 추첨제로 바뀌었는데요. 은혜씨는 첫 응모에서 당시 가장 핫하던 ‘나이키 조던 1 트레비스 스캇’이라는 모델에 당첨이 됐습니다.

정은혜씨가 당첨된 '나이키 조던 1 트레비스 스캇 프라그먼트 레트로 하이 OG SP 밀리터리 블루(2021년)' 모델. 은혜씨는 이 모델을 시장에 160만원 선에 판매했다. [정은혜씨 제공]

정은혜씨가 당첨된 '나이키 조던 1 트레비스 스캇 프라그먼트 레트로 하이 OG SP 밀리터리 블루(2021년)' 모델. 은혜씨는 이 모델을 시장에 160만원 선에 판매했다. [정은혜씨 제공]

“정가는 30만원이지만 리셀시장에서 160만 원 정도 가격대였어요. 지금은 230만원까지 올랐더라고요.”

이후로도 은혜씨는 한 번 더 운동화 구매에 성공해 7만원의 차익을 남겼습니다. 이제는 부모님과 남동생 계정을 포함해 4개의 계정으로 날마다 운동화 구매에 응모하는 게 일과가 됐습니다.

은혜씨는 운동화에 당첨될 때의 기준을 ‘복권당첨’에 비유했습니다.

“10만 원짜리 소액이라도 복권에 당첨되면 정말 기분이 좋잖아요. 그런 기분이죠. 더군다나 리셀은 제가 손해 보는 게 전혀 없으니 그런 게 특히 좋은 것 같아요. 그냥 시간 맞춰서 클릭만 몇 번 하면 되는 거니까요. 당첨되면 구매 금액의 몇 배에 달하는 수익률이 나오니까 웬만한 재테크보다 낫다고 생각해요.”

‘진짜 가격’은 따로 있다…네이버·무신사도 뛰어든 리셀 시장  

크림 홈페이지에서는 운동화의 과거 시세와 현재 실시간 매수가, 실시간 매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크림 홈페이지 캡처]

크림 홈페이지에서는 운동화의 과거 시세와 현재 실시간 매수가, 실시간 매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크림 홈페이지 캡처]

업계에서는 국내 리셀 시장 규모를 약 5000억원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대기업들도 리셀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2020년 네이버의 자회사 스노우는 ‘크림’을 출시했습니다. 크림은 출시 이후 매월 평균 10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이용자 중 20·30세대가 70%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크림 측 관계자는 밀실팀과의 통화에서 “지난해 성장률이 그 직전해 성장률에 비해 5배로 뛰어올랐다. 가품 이슈가 불거지는 상황에서 검수를 해주는 시스템이 신뢰를 얻고 있고, 20대 사이에서 ‘한정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신사도 비슷한 리셀 플랫폼 '솔드아웃'을 내놓았고, 중고거래 서비스 '번개장터'도 2020년 국내 스니커즈 커뮤니티 '풋셀'을 약 44억원에 인수해 리셀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연간 거래액 2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리셀 업체인 스탁엑스(StockX)도 지난해 한국시장에 진출했습니다.

돈이 되는 취미…“튤립거품과 달라”

희귀식물을 재배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 ‘식테크’도 리셀의 한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몬스테라 알보

몬스테라 알보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 학원을 운영하던 박선호(39)씨는최근 들어 원예업이 본업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코로나로 학원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책상을 치운 교실은 화분을 위한 공간이 됐습니다. 학원 매출 구멍을 메우기 위해 식물을 팔려고 보니, 희귀식물 가격은 기존 구매 가격을 훌쩍 넘겨 있었습니다.

“블로그에 몬스테라 알보 한 덩이를 올렸는데 50만원에 팔렸어요. 제가 90만원에 사 온 식물의 10분의 1조각이 50만원에 팔린 거예요. 이후 경매에서는 그다음에 150만 원, 270만 원 그리고 거의 300만 원 이상까지 갔습니다.”

몬스테라 알보 7개로 시작한 박씨는 지금 모종 화분만 70여개, 신품종 개발 화분까지 모두 1000개의 화분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식물 판매로만 연 매출 1억원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박씨는 “식테크를 두고 ‘튤립 거품’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튤립은 거래 절벽 시기가 있어서 가격이 확 내려가는 시즌이 있는데 몬스테라는 그렇지 않다. 또 조직 배양도 불가능해서 대량생산이 어려워 당분간은 가격이 계속 갈 것 같다. 실제로도 2년 넘게 희귀식물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수요와 공급, 그 밖에 MZ가 만든 시장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됩니다. 원상품을 만드는 기업이 빠지고 ‘소비자와 소비자가 만나’ 형성된 리셀 시장은 정보 습득이 빠르고 유행에 민감한 MZ세대가 만든 새로운 시장입니다.

오늘도 MZ 세대는 점찍어둔 운동화의 판매 가격을 띄운 시세창을 노려보고, 마음에 드는 희귀식물이 중고시장에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이 시장의 가격이 언제 거품처럼 꺼질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재테크와 취미를 동시에 잡으려는 MZ세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걸로 보입니다.

밀실은 '중앙일보 레니얼 험실'의 줄임말로 중앙일보의 20대 기자들이 도있는 착취재를 하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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