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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 뒤에도 "걸그룹 코 성형"...극단선택 비웃는 '사이버 렉카'

중앙일보

입력

지난 10일 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지난 10일 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 사진 유튜브 캡처

“(걸그룹 멤버) ○○은 오똑한 성형 코로 유명하다. 전후 차이가 너무 극명해 팬들도 인정하고 있다.”

[이슈추적]

‘아이돌 판’에서 대표적인 ‘사이버 렉카’로 꼽히는 한 유튜버가 지난 10일 올린 동영상은 이 같은 말로 시작한다. 이 유튜버는 영상에서 “코 성형수술 상담을 갔는데 의사가 ○○ 코가 점점 쳐지고 실리콘이 비치니 너무 화려하게 하면 ○○처럼 된다는 말을 했다”는 출처 불명의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그대로 읽었다. ‘○○코처럼 성형하면 안 되는 이유ㄷㄷ’라는 이름의 해당 동영상은 공개 하루만인 11일 유튜브에서 4만5000여회 넘게 재생됐다. 여기에는 “○○ 코는 일반인에게 무리지” “○○ 코 잘 된 건 사실” 등과 같은 댓글이 우수수 달렸다.

이슈에 부리나케 달려가는 ‘사이버 렉카’

이처럼 온라인에서 화제가 되는 이슈 등을 재빨리 짜깁기한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를 ‘사이버 렉카’라고 한다. 교통사고가 나면 잽싸게 현장에 달려드는 렉카(견인차)에서 유래된 말이다. ‘사이버 렉카’는 대개 자극적인 제목이나 썸네일(동영상 미리보기 화면)로 시청자의 클릭을 유도한다. 자신이 직접 콘텐트를 만들지 않고 온라인에 올라온 글을 ‘복붙(복사해 붙임)’ 수준으로 읽는 식이다. 이들은 보통 수익(돈)과 직결되는 높은 조회 수를 목표로 삼는다.

사이버 렉카는 최근 손가락질을 받고 있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알려진 프로배구 삼성화재 김인혁(27)과 인터넷방송 BJ 잼미(27·본명 조장미)의 죽음 배경과 사이버 렉카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공감을 얻으면서다. 조회 수를 노리고 정확한 사실 확인 없이 차별·혐오 등에 기반을 둔 동영상을 만들어 특정인에 대한 루머나 악플을 확산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잼미 사망 원흉 처벌” 靑 청원 17만  

잼미의 영상. 유족은 “장미는 그동안 수많은 악플들과 루머 때문에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 잼미 유튜브 캡처

잼미의 영상. 유족은 “장미는 그동안 수많은 악플들과 루머 때문에 우울증을 심각하게 앓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사진 잼미 유튜브 캡처

비난 여론이 과열되면서 ‘사이버 렉카’ 유튜버 A씨(구독자 120만 명)는 지난 5일 해명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잼미 사망의 원흉”으로 지목된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A씨는 영상에서 “내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이슈를 선동하는 게 아니라 정리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해명 영상 공개 이틀 후 올라온 “A씨 등을 처벌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11일 오후 8시 기준 17만 명이 동의했다.

‘사이버 렉카’만큼 이들에게 판을 깔아준 유튜브 측도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잼미 사망 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유튜브도_공범’이라는 해시태그가 퍼져나갔다. “‘사이버 렉카’를 계속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언론인권센터는 지난 7일 “유튜브는 명예훼손과 모욕에 가까운 내용을 담고 있는 콘텐트가 업로드되고 유통될 수 있게 방치했으며, 신고하더라도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성명을 냈다.

“통제 불능…강력한 법으로 처벌해야”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전문가들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사이버 렉카’ 등을 더는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제도 개선이나 법 개정을 통해 이들이 원인을 제공하는 ‘사이버 불링’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유현재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학부 교수는 “이용자 인식 개선으로 자정이 가능한 수준은 이미 넘어선 것 같다”며 “현시대 폭력의 범위는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사이버 폭력까지 포함하는 만큼 ‘사이버 렉카’의 폭력을 막을 수 있는 강력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사이버 렉카를 멈출 수 없는 지금 상황은 법에 공백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정일권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유튜브 같은 플랫폼 규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사이버 렉카’ 등이 한 건이라도 걸리면 강력한 처벌로 ‘누구나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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