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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진은 우리의 삶 닮았다…기다려야 하므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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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34·끝)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 4년이 되었다. 어렵지 않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공부를 할수록 그렇지만 않다는 것을 알았다. 수많은 사진을 촬영해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한장 얻기도 어려웠다. 멋진 장면을 촬영하려면 여러 번의 출사와 오랜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았다.

지난 크리스마스 휴일에 2박 3일 일정으로 아내와 함께 영종도로 갔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메고 떠났다. 처음 건너보는 인천대교는 길이가 21.38㎞나 되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다리로 규모나 웅장함에 입이 벌어졌다.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촬영한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 내림 현상. [사진 조남대]

을왕리 해수욕장에서 촬영한 검은 구름 사이로 비치는 빛 내림 현상. [사진 조남대]

을왕리해수욕장 선녀 바위 쪽에서 해넘이 풍경을 촬영하려고 기다렸지만, 구름이 자욱해 빛 내림 사진 몇장 찍는 데 그쳤다. 아무리 캄캄한 어두움이 있을지라도 한 줄기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와 추운 날씨로 인해 바닷가 식당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내 마음마저 허전하고 쓸쓸했다. 용유하늘전망대에 올라가자 인천공항을 비롯해 샤크섬과 무의도, 영종남로해안도로, 용유역 등이 눈 아래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기온이 낮은 데다 바람까지 강해 버티고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다.

물 빠진 갯벌 가운데에 ‘샤크섬(원래 이름은‘매도랑’이지만 상어 등지느러미를 닮았다고 하여 샤크섬으로 불린다)’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샤크섬의 일출이 멋지다고 해 다음 날 아침 일찍 거잠포선착장으로 갔다. 새벽이라 선착장으로 들어가는 쪽문만 열려 있지만 벌써 20여 명 이상의 사진가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한 채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날씨가 추울 것 같아 옷을 두툼이 챙겨입었지만, 장갑을 미처 가져오지 않아 셔터를 누르려고 손을 꺼내자 금방 얼얼해진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한 것이 금방 후회된다.

샤크섬으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샤크섬으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수평선에 내려앉은 옅은 구름 속에 저 멀리 뿌옇게 보이는 송도신도시 부근이 불그스름해지더니 빨간 태양이 살포시 얼굴을 내민다. 손톱만 하던 해가 공이 튀어 오르듯 순식간에 하늘에 걸린다. 상어 지느러미 안쪽으로 들어오는 멋진 모습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평상시는 상어 지느러미처럼 보이지만 각도를 잘 잡은 덕에 바닷속에서 솟아오르는 상어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듯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다. 처음 와서 경이로운 모습을 포착한 것은 크나큰 행운이다. 샤크섬 앞에는 조그만 배까지 떠 있어 한 폭의 그림 같은 사진이 되었다. 어느 정도 사진을 촬영하자 주변에 있던 동호회원들은 인천대교 위로 떠오르는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석산곶으로 간다며 서둘러 이동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갑자기 인천대교의 일출 장면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다음날 새벽에 올까 하고 일기를 살펴보니 구름이 많을 것으로 예보돼 있어 추후 다시 날을 잡아 찾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상을 보며 출사 날짜를 물색하다 12월 마지막 날 새벽에 출발했다. 7시경 석산곶에 도착하니 대여섯 대 주차할 수 있는 조그만 주차장에는 벌써 차가 빼곡하다. 모퉁이에 겨우 주차를 하고 인천대교 방향으로 둑길을 따라 1㎞ 정도를 걸어가자 많은 사람이 삼각대를 세워놓고 해 뜨기를 기다리고 있다. 일출 시각이 7시 47분이니 아직 30분 정도 여유가 있다. 모두가 삼각대에 카메라를 장착해 놓고 있는데 나 혼자 카메라만 달랑 들고 온 모습이 프로들 틈새에 아마추어가 끼어 있는 것 같아 좀 창피하기도 했다. 적절한 곳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지만 해가 어느 쪽에서 떠오를지 가늠이 되지 않아 대부분 우왕좌왕한다.

일출 직전의 인천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송도신도시. [사진 조남대]

일출 직전의 인천대교와 그 뒤로 보이는 송도신도시. [사진 조남대]

인천대교 주탑 위에 떠있는 태양. [사진 조남대]

인천대교 주탑 위에 떠있는 태양. [사진 조남대]

한참을 기다리자 송도신도시가 마치 불에 타는 듯하더니 인천대교 주탑 좌측 부분이 발갛게 달아오른다. 사진가들은 삼각대를 들고 달리기 시작한다. 기동력에서는 삼각대가 없는 내가 유리하다. 얼른 자리를 잡자 다른 사람들이 내 주위로 몰려든다. 아침 해는 주탑 좌측에서 솟아 서서히 떠오르면서 우측으로 이동하기 때문에 태양이 주탑 꼭대기에 올라있는 장면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조금씩 움직이며 촬영해야 한다. 처음보다 100여m 이상 이동하며 촬영한 결과 주탑이 횃불을 든 듯한 모습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옅은 구름이 낀 하늘로 인해 태양의 모습이 선명하지 않고 퍼진 모습이어서 한 번 더 찾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왔다.

새해 첫날은 해돋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몰려올 것 같아 둘째 날인 1월 2일 비슷한 시각에 다시 석산곶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다. 조금 더 지나자 몇 사람이 도착하는데, 사진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광객이다. 바다 건너다보이는 송도신도시는 안개 속에 잠겨 있다. 일출 시각이 지났는데도 해는 얼굴을 내밀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애타는 심정을 부여안고 좀 더 기다리자 인천대교 한참 위쪽으로 해가 불쑥 튀어 오른다. 의욕이 넘쳐 기상도 점검해 보지 않고 무작정 나오다 보니 원하는 장면을 담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인천대교 일출을 촬영하기 위해 두 번이나 더 나갔지만, 일기예보와 현지 해안가 사정이 달라 마음에 쏙 드는 사진을 촬영하지는 못하다 다섯 번의 출사 끝에 드디어 인천대교 주탑 사이로 떠오르는 멋진 장면을 촬영할 수 있었다. 도전하고 기다린 끝에 얻은 뿌듯함이 이런 기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천대교 2개의 주탑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인천대교 2개의 주탑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 [사진 조남대]

30년 이상 직장생활을 하면서 시간에 쫓겨 지내다 보니 아직도 서두르는 습성이 남아있다. 사진은 기다리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원하는 장면의 사진을 카메라 앵글에 담기 위해서는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고 그냥 지나가 버릴 수도 있지만, 최고의 한순간이 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멋진 한장의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기다리는 것은 괴로움이 아니라 희망이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출사 나가서 촬영한 수백장의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이 한장이라도 있으면 뿌듯하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가볍다. 사진은 기다림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준비하고 때를 기다려 도전하는 것은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하여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환희와 즐거움 때문에 사진 공부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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