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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수소, RE100, 택소노미? 대선후보 화제된 '환경용어' 총정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RE100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입니까?"(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블루수소 생산 산업 비전에 대해 말씀해달라."(이재명 후보)
"EU(유럽연합) 택소노미가 원전을 그린 에너지로 인정한거 아닙니까?"(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수소충전소에 세워진 수소 차량 충전구에 충전건이 꽂혀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수소충전소에 세워진 수소 차량 충전구에 충전건이 꽂혀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열린 대선 후보 4인 토론회에서 나온 발언 중 일부다. 환경·기후 관련 질의가 오가면서 일반인에겐 알쏭달쏭한 용어가 여럿 나왔다. 이재명 후보가 '알이백'이라고 발음한 RE100, 블루·그린·그레이 등 색을 붙인 수소 등이다. 최근 원전 포함 여부로 뜨거워진 '택소노미'도 화두가 됐다.

환경 정책이나 기후 대응과 관련해 종종 나오는 단어들이지만, 여전히 설왕설래가 이어진다. 왜 대선 토론회에 갑자기 등장했고, 얼마나 중요한 걸까. 해당 용어들의 의미와 배경 등을 '총정리'했다.

지난 3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네 명의 후보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뉴스1

지난 3일 열린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네 명의 후보들. 왼쪽부터 심상정 정의당 후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뉴스1

#블루 수소

수소는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색 기체다. 하지만 산업계에선 생산 방식, 탄소 배출 등을 두고 편하게 '색깔'로 종류를 구분한다. 크게 나누면 그린과 블루, 그레이 3가지다. 풍력·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 탄소 배출이 거의 없는 수소를 그린 수소라고 한다. 그 반대편엔 화석 연료에 고온·고압 공정을 거치는 그레이 수소가 있다. 그 중간에 있는 게 블루 수소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 생산 과정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CO2)를 포집해서 저장한 수소를 말한다. CCS(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이 필요하지만, 그린 수소보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든다는 장점이 있다. 몇몇 외국 정부에선 탄소 중립의 수단으로 블루 수소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해 말 발표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K-택소노미)에서도 '2030년까지 한시 인정'이란 조건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녹색 경제 활동에 포함됐다.

지난해 3월 블루 수소 생산 플랜트 시설 모형을 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세번째). 연합뉴스

지난해 3월 블루 수소 생산 플랜트 시설 모형을 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세번째). 연합뉴스

하지만 환경단체 등에선 화석 연료를 쓰는 블루 수소를 '친환경'으로 볼 수 없다는 목소리가 강하다. 이산화탄소를 일부 활용한다 해도 온실가스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지난해 8월 미국 코넬·스탠퍼드대에서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블루 수소의 탄소 배출량은 그레이 수소의 89~92%에 달했다. CCS 포집기 설치나 추가적인 에너지 사용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그레이 수소보다 더 큰 비용이 투입된다는 지적도 있다.

새로운 에너지원인 수소는 기후 변화 이슈가 대두함에 따라 석유 등 기존 자원을 대체할 확률이 높다. 그렇게 '수소 경제'가 커질수록 블루 수소를 둘러싼 친환경 논란에도 불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차기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도 중요한 변수인 셈이다.

오동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그린 수소의 경제성 확보 시점을 2030~2035년경으로 보고 있는데, 그 전에 그레이·블루 수소를 너무 빠르게 늘리는 건 문제가 있다. 블루 수소를 청정 수소로 인정하려면 그레이 수소 대비 탄소 감축량 등을 규정할 법·기준 같은 정책적 노력부터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독일의 한 석탄 화력 발전소 앞에서 풍력 발전 터빈이 돌아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해 3월 독일의 한 석탄 화력 발전소 앞에서 풍력 발전 터빈이 돌아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RE100

RE100은 전 세계적 기후 위기 속에 등장한 신조어다. 풀어쓰면 ‘재생에너지(Renewable Energy) 100%’라는 뜻이다. 말 그대로 각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약속이 담겼다. 영국에 있는 국제 비영리 단체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2014년 시작한 자발적 캠페인의 일환이다.

여기에 동참하려면 늦어도 205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전기 사용 100%를 달성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입 기업들은 그보다 빠른 2030년을 목표로 내걸었다.

RE100 로고. 더 클라이밋 그룹 홈페이지 캡처

RE100 로고. 더 클라이밋 그룹 홈페이지 캡처

RE100의 목표는 인류가 직면한 기후 변화를 막는 것이다. 기후 변화 시계가 갈수록 빠르게 돌면서 RE100에 참여하는 업체도 꾸준히 늘고 있다. 더 클라이밋 그룹에 따르면 10일 현재 350곳의 글로벌 기업이 가입했다. 애플과 3M, 에어비앤비,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샤넬, 화이자 등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후발주자' 국내 산업계도 점차 참여도를 늘리고 있다. 2020년 SK 계열사 6곳이 처음 가입한 뒤 아모레퍼시픽, KB금융그룹 등도 뛰어들면서 14곳으로 늘었다.

자발적 캠페인이라지만 RE100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후 위기 속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무거워지고, 결국 기후 변화 대응이 매출과 투자 유치, 협력업체 선정 등과 연계되곤 해서다. 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정부와 산업계도 앞으론 외국 정부나 주요 글로벌 기업들과 RE100을 두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기업이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글로벌 수출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RE100은 기후위기 대응을 넘어 국내 주요 기업의 수출 경쟁력과 직결되는 요소가 됐다"라고 밝혔다.

지난 2일(현지시간) EU 집행위가 택소노미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AFP=연합뉴스

지난 2일(현지시간) EU 집행위가 택소노미 관련 기자회견을 연 모습. AFP=연합뉴스

#택소노미
택소노미는 그린 택소노미, 녹색분류체계라고도 부른다. 온실가스 감축 등에 기여하는 친환경 경제 활동을 분류하는 기준점이다. 친환경 사업에 대한 자금 투자(녹색 금융)를 유도하기 때문에 산업계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EU에서 2020년 택소노미 제정안을 공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국내서도 지난해 12월 이른바 'K-택소노미' 가이드라인을 첫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생산, 무공해 차량 제조 등이 광범위하게 담겼다.

일반인에겐 생소하지만 RE100처럼 새로 만든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긴 역사를 가졌다. 택소노미의 사전적 의미는 '분류체계' '분류학' 등이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해 주로 생물학 등 과학 분야에서 쓰였다. 각 생물의 동일한 특징에 기반해 그룹을 나누고 정의하는 연구다. 하지만 최근 들어선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녹색 경제 활동을 일컫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연과학보다는 사회과학에 더 가까운 용어가 된 것이다.

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한빛원전 6호기 전경. 뉴스1

전남 영광군에 위치한 한빛원전 6호기 전경. 뉴스1

경제 활동을 친환경·비(非)환경으로 나누는 택소노미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원자력 발전이다. 탄소중립이 전 세계 각국의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등과 함께 원전도 꾸준히 육성해야 하냐는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번 대선 후보들도 환경 정책에서 가장 첨예하게 의견이 나뉘는 것 중 하나가 탈(脫)원전 여부다.

EU 집행위는 이달 초 원전을 택소노미에 조건부 포함했다. 일부 회원국과 전문가 등이 반대했지만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 처리"를 전제로 원전도 녹색 활동으로 인정한 것이다. 앞으로 EU 회원국과 유럽의회 등에서 내용을 검토한 뒤 큰 반대가 없으면 채택될 예정이다. 반면 한국 환경부는 정부의 탈원전 기조에 발맞춰 원전을 K-택소노미에서 제외했다. "국제 동향을 지속 파악하고 국내 상황도 감안해 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향후 포함 여부는 불투명하다.

그래도 여전히 원전, 천연가스 포함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나무 등을 원료로 쓰는 바이오에너지도 친환경이 아니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국내 택소노미 분류나 산업계 전반이 출렁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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