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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T 20회 500만원인데, 380만원 환급" 이 꼬드김, 진짜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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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요지경 보험사기] 

대학교수인 A(57)씨는 ‘도수치료 마니아’다. 2017년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최근 5년간 보험사에 도수치료를 받았다며 실손의료 보험금을 청구한 횟수만 272회, 받아낸 보험금은 4300만원에 달한다.

보험사가 A씨에게 “도수치료가 치료목적인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A씨는 “조사라는 용어가 협박으로 들린다”며 협조를 거부했다. A씨는 “회복되면 알아서 청구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보험금 청구는 계속되고 있다.

도수치료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도수치료 장면. 해당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중앙포토]

회사원 B(42)씨도 2016년 이후 도수치료로만 4435만원의 실손보험금을 타갔다. B씨는 통원 대신 6개월에 한 번씩 병원에 입원해 도수치료를 받았다. 그때마다 ‘자전거를 타다 넘어졌다’ ‘술을 먹고 침대에서 떨어졌다’ 등의 사유를 보험사에 제출했다. 보험사가 “치료 목적인지 살펴봐야겠다”는 의견을 내도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겠다”며 보험금을 받아내고 있다.

A씨와 B씨와 같은 일부 가입자의 과잉 치료로 실손보험 보험료가 오르고 있다. 특히 비급여 진료인 도수치료는 정해진 단가가 없다 보니 과잉 의료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진료 항목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병원급의 도수치료 회당 비용은 최저 2000원에서 최고 50만원이다. 평균 금액은 9만8355원이다.

A보험사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 현황.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A보험사 도수치료 보험금 지급 현황.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2009년 9월 이전에 판매된 1세대 실손보험의 경우 본인 부담금 없이 가입자가 고가의 도수치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도수치료로 지급되는 보험금은 매년 늘고 있다.

대형 손해보험사 C사가 도수치료에 지급한 보험금은 2018년 480억원에서 2021년 786억원으로 불었다. 지난해 가장 많이 청구한 가입자의 청구금액은 4892만원, 청구 횟수는 279회다. 도수치료로 보험금을 청구한 가입자의 연간 평균 청구 횟수도 같은 기간 4.3회에서 5.4회로 늘었다. 건당 청구 금액은 13만4000원 수준이다.

용어사전도수치료

시술자의 손을 이용해 치료 목적으로 환자의 신체에 힘을 가하는 치료 방법이다. 재활의학과나 정형외과 등 근골격계에 대한 지식을 가진 전문의 등이 시술할 수 있다.

도수치료로 과잉 의료가 이뤄지는 수법은 다양하다. 최근에는 도수치료 비용을 부풀린 뒤 보험금 청구가 안 되는 시술을 패키지로 묶어 시술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온열치료나 미용시술 등을 함께 묶는다.

최근에는 운동치료란 명목으로 퍼스널트레이닝(PT)을 해 준 뒤 도수치료로 청구하는 병원도 생겼다. 강남의 한 병원은 도수치료와 운동치료 등을 20회에 500만원가량에 결제한 뒤 실손보험금으로 380만원가량을 환급받을 수 있다며 환자들을 모으고 있다. 30만원 상당의 맞춤 깔창까지 사은품으로 지급하고 있다.

금융당국과 보험사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새로운 약관을 담은 실손보험을 출시할 때마다 도수치료 횟수를 제한하고 있다. 2017년 4월 출시된 3세대 실손보험은 도수치료를 특약형 상품으로 따로 뗀 다음, 치료 횟수도 연간 50회, 350만원 한도로 제한했다. 지난해 7월 출시된 4세대 실손보험은 도수치료 10회마다 증상이 완화되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게 했다.

A보험사 도수치료 보험금 청구 현황.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A보험사 도수치료 보험금 청구 현황. 그래픽= 전유진 yuki@joongang.co.kr

다만 정책이 바뀔 때마다 병원들은 빈틈을 공략할 묘수를 찾아내고 있다. 도수치료 진료비를 낮추고, 다른 치료의 진료비를 올려 총액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강남의 한 병원은 기존에 19만원이던 도수치료 비용을 3300원으로 낮췄다. 대신 다친 부위에 냉각 스프레이를 뿌려 통증을 완화하는 신장분사치료를 18만6000원으로 올린 뒤 패키지로 시술해주고 있다.

실손 보험금 누수를 막기 위한 창과 방패의 싸움이 이어지면서 금융당국과 보험업계는 도수치료에 대한 보험금 지급을 깐깐하게 하는 방안을 만들고 있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일정 횟수 이상부터는 도수치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받아 제출하게 하는 것이다. 약관을 변경할 수 없는 만큼, 보험금 지급 심사 기준을 깐깐하게 해 허위·과다 진료를 막겠다는 취지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소수 가입자의 도덕적 해이와 병원들이 부추긴 과잉진료로 다수의 가입자가 손해를 보고 있다”며 “의료적으로 필요한 치료를 받는 대다수의 가입자는 심사 기준이 깐깐해지더라도 문제없이 보험금을 지급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손의료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험연구원]

실손의료보험 손해율 및 손실액 전망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보험연구원]

지난해 9월 말까지 손해보험업계의 실손보험 손실액만 1조9696억원이다. 생명보험업계까지 포함할 경우 지난해 실손보험으로만 3조원 가까운 적자가 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사들은 이렇게 누적된 적자를 이유로 매년 실손보험료를 큰 폭으로 올리고 있다. 상위 5대 손해보험사(삼성·현대·DB·KB·메리츠)와 상위 3대 생명보험사(삼성·한화·교보)들은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1세대 실손보험 보험료를 평균 63.6% 올렸다. 올해에도 보험사들은 실손보험료를 평균 14.2%씩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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