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곰치를 회로 먹고 튀겨 먹는다? 동해서 경험한 놀라운 발견 [백종원의사계MDI]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못생겨도 흐물흐물해도 맛은 그만인 그놈
곰치국의 재료 미거지, 튀겨 먹어도 회로 먹어도 좋았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백종원의 사계 MDI’는 티빙(Tving) 오리지날 콘텐트인 ‘백종원의 사계’ 제작진이 방송에서 못다 한 상세한 이야기(MDI·More Detailed Information)를 풀어놓는 연재물입니다.

찬바람이 불면 한국인은 본능적으로 뜨듯한 국물을 찾는다. 그냥 뜨겁기만 해서 숟가락으로 입에 떠 넣었을 때 델 정도면 곤란하고, 한두 번 후후 불고 들이켜면 곧바로 몸 안의 온기로 변하는 그런 온도가 중요하다.

차가운 동해 바다에선 생선국이 제격. 광어나 도미 같은 전국구 어종들 말고 동해안의 영혼이 살아 있는 음식들이라면 도루묵탕, 삼식이탕(삼세기탕이라고도 한다), 곰치국(물곰탕)을 꼽을 수 있다. 도루묵은 꼬드득 꼬드득 알 씹어 먹는 재미가 일품이고, 삼식이와 곰치국은 뼈에서 나오는 국물이 달고 시원해 특히 해장국용으로는 전국적으로도 비길 자가 많지 않다. 전날 밤, 방어회와 방어 김치찌개에 빠졌던 ‘백종원의 사계’ 팀은 그래서 다음날 아침 곰치국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 곰치국에도 알고 보니 비밀이 있었다. 곰치국은 곰치로 끓이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사계 MDI’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가장 많이 좌절한 부분이 어류의 이름이다. 대체 왜 한국의 물고기 이름은 일반 대중이나 어민들이 알고 있는 이름과 어류도감에 나오는 이름이 절대 일치하지 않는 것인가. 어류를 가장 많이 다루고 구분하는 어민들이나 수산시장 상인들이 알고 있는 이름과 어류도감의 이름이 일치하지 않는다면 대체 이건 어디서 지어 온 이름일까.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우리나라 각 지역의 사계절 풍광과 제철 식재료를 함께 소개하는 '백종원의 사계'는 티빙(Tving)에서 볼 수 있다. 인터넷 캡처

이런 푸념을 하고 있는 걸 보면 이미 많은 분들이눈치채셨겠지만 곰치국의 곰치 역시 정확한 이름이 아니다. 포털이나 어류도감에서 곰치를 검색하면, 장어목곰치과의 무시무시하게 생긴 고기가 나온다. 생김새로 보아 끓여 먹으면 곰치국 비슷한 맛이 날 것 같기도 하지만, 곰치국의 재료인 생선은 이 곰치가 아니다. 미거지다.

미거지라는 물고기는 쏨뱅이목 꼼치과에 속한다. 꼼치과의 대표적인 어종으로는 미거지와 꼼치가 있는데, 이 두 가지는 사촌 이내의 관계다. 대략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어종의 대표 주자라고 할 수 있다. 동해안에서는 미거지가 주로 잡히고, 서해와 남해에서는 꼼치가 많이 잡힌다는 정도. 생김새도 거의 비슷하지만 끓여 놓으면 맛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그래서 정리를 시도해 보면 이렇다.

1. 쏨뱅이목 꼼치과에는 미거지와 꼼치가 있다.
2. 이중 동해안에서는 주로 미거지가 잡히고, 미거지를 동해 어민들은 보통 곰치나 물곰이라고 부른다. 신기하게도 끓여 먹을 때에는 각각 곰치’국’과 물곰’탕’이 된다. 물론 똑같은 음식이다.
3. 서해와 남해에서는 꼼치가 잡힌다. 이 꼼치를 남해에서는 물메기라고 부르며, 역시 끓이면 물메기탕이라는 음식이 된다. 꼼치국이나 꼼치탕이라는 음식은 없다.

이해가 되셨는지? ‘백종원의 사계’를 제작하면서 줄곧 느끼는 것이지만, 언젠가 ‘어류명 현실화 계도기간’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전에 나오는 이름, 실제로 불리는 이름, 음식이 되었을 때의 이름이 다 다르면 소비자는 대체 어쩌라는 것인가. 어류도감대로 하자면 물메기라고 부르지 말고 꼼치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인데, 이 꼼치는 『자산어보』에도 해점어(海點魚)라고 표기되어 있다. 점어(點魚)가 바로 메기니 해점어는바다메기, 즉 물메기라는 말인데 과연 꼼치라는 이름은 어디서 온 것인지. 이런 상황이니, 동해안에 가서 곰치국을 드시고 나서 “왜 곰치국을 곰치로 끓이지 않았느냐”고 따지지 마시길.

아무튼 제작진은 촬영을 위해 아침 일찍 어시장에 미거지를 사러 나갔다가 신기한 얘기를 들었다. 미거지(지금부터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그냥 곰치라고 쓴다. 동해안 어디를 가도 미거지를 미거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만나기 힘들다. 다들 그냥 곰치라고 부른다)를 회로 한번 먹어 보라는 권유였다. “여기서는 그렇게도 먹는다”는 말.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물론 백종원 대표도, 걸어 다니는 어류 사전인 김지민씨(입질의 추억)도 곰치회라는 음식은 처음 들어본다는 거였다. 곰치국을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유를 주로 ‘콧물 같은 식감’으로 꼽는다. 흐물흐물해서 그리 맛있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선으로 회를 뜨다니. 회 맛을 표현할 때 ‘쫄깃쫄깃한 식감’을 뺄 수 없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곰치회가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없는 이유다.

예상대로 한점씩 먹어 본 사람들의 평가는 썩 좋지 않았지만 필자는 나름 신선한 매력을 느꼈다. 곰치회는 흔히 말하는 식의 ‘맛이 없는’게 아니라 ‘맛을 느낄 수 없는’ 맛이었다. 어찌 보면 투명한 젤리 같은 맛. 비리지도 고소하지도 기름지지도 않은 깨끗한 맛이랄까. 입에 착 붙는 별미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차고 싱싱한 맛만으로도 독특한 매력을 인정해 줄만 했다.

“이건 이렇게 먹을 건 아닌 거 같아. 내가 뭐 좀 해볼게.”

곰치회에 만족할 수 없던 백종원 대표는 절반 이상 남은 회 접시를 들어 튀김으로 승화시켰다. 그 자리에서 튀김옷을 입혀 끓는 기름에 튀겨 낸 곰치 튀김. 살이 연한 곰치이기 때문에 자칫 긴 시간을 튀기면 아예 액체가 될 위험도 있었으나 노련한 백 대표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순식간에 튀김 한 접시를 만들어냈다.

이 곰치 튀김은 엄청나게 위험한 음식이다. 겉껍질이 맨손으로 들 수 있을 정도로 식은 상태라도 속에 있는 곰치 살은 엄청나게 뜨거운 상태이기 때문. 해물찜에 들어 있는 미더덕을 무심코 씹었다가 입안을 데듯, 백종원 대표의 곰치 튀김을 입에 넣은 사람들은 다들 거의 동시에 비명을 터뜨렸다. 그렇게 다들 입천장이 훌러덩 벗겨지는 고통을 겪었지만, 맛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다. 바삭한 겉껍질과 젤리 같은 속살의 조화는 크림치즈를 튀긴 듯한 식감에 느끼함이 전혀 없는 말끔한 뒷맛이 보태지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튀김은 튀김이고, 메인인 곰치국으로 달려가야 할 상황. 백종원 대표는 껍질을 벗겨 손질해 온 곰치 살과 뼈를 통째 넣고 국물을 우려내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끓기 시작했을 때 김치 투입. 간밤에도 방어 김치찌개를 먹었지만 이번 곰치국은 김치를 넣되 곰치 특유의 달고 시원한 국물 맛을 해쳐선 안 된다.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티빙 '백종원의 사계' 미거지편. 인터넷 캡처

위에서도 말했듯 동해안의 미거지나 남해의 꼼치나 생선의 맛은 거의 차이가 없지만 음식으로 곰치국과 물메기탕은 큰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곰치국은 김치를 넣고 끓이는 것이 기본이고 물메기탕은 맑은 탕으로 나오는 것이 기본이다. 물론 속초에도 유명한 춘선네처럼 김치를 넣지 않고 고춧가루를 살짝 넣어 매운탕 식으로 끓이는 집도 있기는 하지만, 김치=동해안식, 맑은탕=남해식이라는 등식은 상당히 일반적으로 통한다.

그렇게 끓여진 곰치국에 계란 프라이까지 보탠 해장 한 상 차림. 하지만 곰치국을 한 숟가락씩 떠 넣은 두 사람은 눈이 마주치자 저절로 다시 “해장술 한 잔?”에 의기투합하고…. 죄는 유난히 시원하게 끓여진 곰치국 때문이었을지.

다양한 음식과 식재료의 세계에 탐닉해 ‘양식의 양식’, ‘백종원의 국민음식’, ‘백종원의 사계’를 기획했고 음식을 통해 다양한 문화의 교류를 살펴본 책 『양식의 양식』을 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