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왜 분노하나? 애국심보다 '나도 당할 수 있다'는 불안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2.12 05:00

업데이트 2022.02.1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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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을 인코스로 추월하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황대헌이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 사흘째인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 1조 경기에서 중국 선수들을 인코스로 추월하고 있다.연합뉴스.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올림픽 쇼트트랙 편파판정 논란

“모든 인류 구성원이 지니는 천부의 존엄성과 동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세계의 자유, 정의 및 평화의 기초다.”

1948년 12월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 전문의 첫 문장이다. 인류가 2차 세계대전 중 자행된 야만적 범죄를 반성하기 위해 만든 문서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서술했다.

이번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종목에서 불거진 ‘편파 판정’ 논란을 세계인권선언의 정신과 연결한다면 너무 거창해 보이는가? 그렇지 않다.

이번 편파 판정 논란에서 한국 국민, 특히 인권 감수성이 예민한 2030 세대가 크게 분노하는 건 단순히 애국심 때문만이 아니다. 한국 선수들뿐 아니라 동등한 자격의 각국 선수들이 편파 판정으로 보이는 상황에 피해받는 것을 납득하지 못한다. 그 기저에 깔린 건 시대의 화두인 공정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한 분노다.

이는 권리의 보편성과 직결된다. 세계인권선언의 대부분 조항에서 주어는 “모든 사람은”으로 돼 있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 이런 기본적 권리의 보편성을 정립하는 게 세계인권선언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가 목격한 것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선수들 중 일부의 보편적 권리가 침해당하는 장면이었다. 누구는 손도 안 댔는데 실격이고, 누구는 두 손을 써서 밀쳐대도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경기에서 헝가리의 사올린 샨도르 류(왼쪽)과 중국의 렌지웨이가 결승선을 향하다 접촉이 이뤄졌다. 연합뉴스

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탈 실내 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결승 경기에서 헝가리의 사올린 샨도르 류(왼쪽)과 중국의 렌지웨이가 결승선을 향하다 접촉이 이뤄졌다. 연합뉴스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고 하지만, 반복되는 오심은 의도적 권리의 침해로 보일 수밖에 없다. 같은 규칙 하에서 경쟁하는 선수들 중 일부에 공정하지 못한 결과를 강요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세계인권선언 7조의 정신을 어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보편적 권리, 인권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 있다. 보편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의 파괴가 주는 불편함은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조금 각도를 바꿔보자. 올림픽이라는 축제 이면에 있는 보편적 권리 침해다. 애초에 미국 주도로 이뤄진 ‘외교적 보이콧’(선수단만 참가하고 정부 대표단은 보내지 않음)의 원인이 됐던 신장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다.

중국 정부는 부정하지만, 합리적 의심은 끊이지 않는다. 중국이 재교육 시설이라고 주장하는 수용소에서는 성폭행을 비롯해 고문이 자행된다고 국제 인권단체 앰네스티 등은 증언을 바탕으로 지적한다. 구타와 전기 충격, 고통스러운 자세 유지, 수면 박탈 등이 보고됐다. 위구르족의 출산율과 인구 밀도를 낮추기 위해 불임 시술과 낙태를 강요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장 자치구 우루무치에 있는 한 위구르족 수용소. 영국 BBC방송이 위구르족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을 폭로하면서 중국 광전총국은 지난달 BBC가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와 코로나19 관련해서 왜곡된 가짜뉴스를 보도했다″며 ″1년간 방송 면허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신장 자치구 우루무치에 있는 한 위구르족 수용소. 영국 BBC방송이 위구르족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을 폭로하면서 중국 광전총국은 지난달 BBC가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와 코로나19 관련해서 왜곡된 가짜뉴스를 보도했다″며 ″1년간 방송 면허 신청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 외교적 보이콧을 결정하며 위구르족에 대한 인권 탄압을 ‘반인도범죄’로 규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국이 외교적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기로 결정한 게 아쉬운 건 불참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중국 내 인권 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공식 입장조차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정부가 중국 인권 문제에 공개적 입장 표명을 자제하는 이유에 대해 “한‧중 간 특수관계에 비춰 우리 정부는 중국 내부 문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계속 자제해 왔다”(지난해 5월 브리핑)고 말했다. 보편적 가치인 인권 문제에 대해 아무 거리낌 없이 ‘특수관계’를 이유로 댔다.

보편성의 파괴가 주는 공포는 나도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있다. 중국에서 이뤄지는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한국인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너무 먼, 황당한 이야기 같은가? 아니다.

인도로 망명해 살고 있는 티벳 국적 남성이 뉴델리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로 망명해 살고 있는 티벳 국적 남성이 뉴델리에서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9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이 외교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국 내에 수감돼 있는 한국인들로부터 “교도관이 전기봉을 양쪽 다리에 사용해 졸도했다” 등의 심각한 증언이 나왔다.

이에 대한 중국 측의 입장이 더 가관이었다. 규정 자체가 수형자에 대한 전기곤봉 사용을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적 권리 보호에 대한 자의적 해석의 결과다.

베이징 올림픽 편파 판정 논란에 대한 분노는 곧 식을 것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보편적 권리를 지켜야 하는 이유, 이런 보편적 권리가 지켜지지 않을 때 누구나 당할 수 있는 공포스러운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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