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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진 건 도전의 증거…하뉴·첸, 발레리노 이승민에게 갈채를 [뉴스원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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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엿새에 걸쳐 진행된 발레계의 올림픽,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이승민 학생이 선보인 무대입니다. 가장 자신있다는 시저 점프를 보여주고 있네요. 공중에서 자기 키만큼 높이 날아서 하는 고난이도 테크닉입니다. EPA=연합뉴스

지난주 엿새에 걸쳐 진행된 발레계의 올림픽,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에서 이승민 학생이 선보인 무대입니다. 가장 자신있다는 시저 점프를 보여주고 있네요. 공중에서 자기 키만큼 높이 날아서 하는 고난이도 테크닉입니다. EPA=연합뉴스

지난달 서울 모 발레학원에서 턴을 돌려다 넘어지는 인간을 보신 적 있다면, 반갑습니다. 네, 저입니다. 턴 돌 때만 넘어지는 건 아닙니다. 기본 중의 기본, 그랑 플리에라는 동작 중 마의 4번 포지션에서도 자주, 아니, 매번, 사시나무 떨듯 볼썽사납게 흔들흔들 거리죠. 비루한 제 이야기는 그만, 지난주 끝난 세계 발레 꿈나무들의 로망 콩쿠르,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의 자랑스러운 발레리노 이승민 선화예고 학생과, 진행 중인 베이징 겨울올림픽 얘기를 해볼까요. 먼저, 베이징 남자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네이선 첸 선수. 그에게 4년전 평창 올림픽은 악몽이었습니다.

미국 네이선 첸 선수가 금메달을 직감한 듯 경기 직후 웃고 있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네이선 첸 선수가 금메달을 직감한 듯 경기 직후 웃고 있습니다. 로이터=연합뉴스

평창에서 그가 이렇게 넘어지고 말았을 때, 많은 피겨 팬들의 마음도 무너졌지요. AP=연합뉴스

평창에서 그가 이렇게 넘어지고 말았을 때, 많은 피겨 팬들의 마음도 무너졌지요. AP=연합뉴스

중국계 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네이선 첸은 어린 시절부터 ‘천재’ 수식어를 달았습니다. 월드 챔피언십 등 굵직한 대회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적도 여러 번이죠. 그런 그가, 평창에서 넘어졌습니다. 17위. 그 뒤, 그는 가장 소중했을 스케이트의 끈을 잠시 풉니다. 예일대에 진학해 학업에 열중하고 친구들도 사귀면서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피겨 이외의 것을 하면서도 살아갈 수 있구나”라고 느꼈다고 합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일까요. 그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빛 점프를, 그것도 여러 번 뛰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미소도 지었죠. 승리를 예감했을 겁니다. NYT는 “네이선 첸은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거로 유명하다”며 “그러나 이번만큼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평창의) 두려움을 떨쳐내고 본인의 경기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는 극찬과 함께요.

이번에 넘어진 건 그의 호적수인 하뉴 유즈루(羽生結弦) 선수였습니다. 엉덩방아를 찧고 실수를 연발하며 메달 순위 밖으로 밀렸습니다. 전인미답의 4.5 회전 쿼드러플 악셀에 도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뉴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가 남겼다는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할 의무가 있다”는 말도 멋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물론 우리가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차준환 선수도 있죠. 넘어졌지만 바로 다시 일어난 진정한 프로. 한국 남자 피겨 역사에 세계 5위라는 쾌거를 새긴 차준환 선수에게 기립박수를 보냅니다.

발레계의 청소년 올림픽 격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의 파이널리스트. 20명 중 6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발레계의 청소년 올림픽 격인 프리 드 로잔(Prix de Lausanne)의 파이널리스트. 20명 중 6명이 한국인이었습니다. [Prix de Lausanne Gregory Batardon]

지난주 프리 드 로잔 콩쿠르에선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15~18세 발레 꿈나무 중 20명이 파이널리스트로 뽑혔습니다. 그중 6명이 한국인이었죠. 화제가 됐던 최연서 학생 인터뷰는 기사 끝 링크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남성 무용수들의 약진도 인상적이었는데요, 401번으로 무대에 오른 이승민 학생은 큰 응원을 받았습니다. 중간에 살짝 넘어졌지만 바로 다시 일어나 아름다운 무대를 완주했기 때문입니다. 귀국해 격리 중인 승민 군을 11일 영상통화로 만났습니다. 누나인 경민 양도 전도유망 발레리나입니다.

넘어졌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바로 일어나는 모습 멋졌습니다.  
“제가 무용을 하면서 무대에서 넘어져 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이렇게 큰 콩쿠르 무대에서 처음으로 넘어진 거였어요. 그것도 제일 중요한 순간이었거든요. 그 순간 멘탈이 살짝 나갔었어요. 어떻게 하지, 그런 생각도 했지만, 아니야 괜찮아 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객석에서도 (응원의) 박수를 많이 쳐주시더라고요. 힘이 됐죠. 관객분들과 제가 뭔가 통하고 있구나,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 자신감 있게 임했어요.”  
바닥 상태가 좋지 않았거나 하진 않았을까요. 넘어지는 학생들이 상당수였는데요.  
“음 글쎄요...저는...바닥(때문)은 아닌 거 같아요.”  
로잔의 자랑스러운 한국 학생, 이승민 군. 선화예고에 재학 중인 만 17세입니다. [Prix de Lausanne]

로잔의 자랑스러운 한국 학생, 이승민 군. 선화예고에 재학 중인 만 17세입니다. [Prix de Lausanne]

로잔 이전과 이후의 이승민 발레리노는 어떻게 다른가요.  
“누군가가 시켜서 추는 춤이 아니라 제가 추고 싶은 춤을 위해서 뭔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선생님들께서 지시해주시는 것을 배우는 입장이었는데요, 로잔에선 ‘네가 하고 싶은 걸 해봐’라는 말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연습하다 힘들 때도 많잖아요. 어떻게 극복하세요?  
“음, 저는 극복을 한다기 보다, 극복을 당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안되는 동작도 있고, 저도 거울도 보기 싫을 때도 있거든요. 완벽한 걸 좋아해서 빨리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더 힘이 들어요. 안 되면 될 때까지 1000번 하면 되겠지, 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집에 가서도 머릿속으로 계속 정리를 하고요. 다음날 또 안 되면 또 반복해요. 그렇게 하다 보면 어느새 되어 있더라고요.”  
어떤 무용수가 되고 싶나요.  
“무대를 즐기고 행복한 무용수요. 누나를 따라서 발레를 시작했는데요, 그때도 점프를 뛰고 턴을 도는 게 재미있고 행복했어요. 아직은 어떤 무용단이 저와 맞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그냥, 뭔가 항상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취미리노(취미로 발레하는 남자)들도 늘고 있긴 하지만 아직도 남자가 무슨 발레를 하냐는 오해와 편견을 가진 이들이 있는데요.  
“음 저는 발레를 하면서 창피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서(웃음). 그런 생각을 하는 분들께는 그냥, 발레를 하면 더 아름다운 남성미를 갖출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요?  
“항상 저를 도와주시는 선생님들께 너무 감사해요. 응원해주는 친구들도 고맙고요. 그리고 제 고민을 항상 잘 들어주시는 부모님과 누나에게도 꼭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하뉴 선수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김경록 기자

하뉴 선수의 도전 정신에 박수를. 김경록 기자

차준환 선수와 네이선 첸, 하뉴 유즈루, 이승민 무용수의 앞날을 뜨겁게 응원합니다. 넘어지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죠. 저를 ‘사람’으로 빚어주고 계신 유니버설발레단 출신 김현우 발레조아 원장님과 국립발레단 출신 박현경 호아나발레 선생님 말씀처럼, “넘어진다는 건 뭔가를 시도했다는 증거”이자 “100번 넘어지면 100번 다시 일어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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