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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컬러를 입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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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30면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지난 7일 열린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황대헌 선수가 심판 판정으로 실격됐다. 이날 BTS의 리더 RM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황대헌이 중국 선수들을 추월하고 1위로 올라서던 순간을 담은 중계 영상과 함께 박수 치는 손 모양과 최고라는 엄지손가락 이모티콘을 올리고 황대헌을 응원했다. 이에 중국 네티즌들은 댓글 기능이 막혀 있는 RM의 개인 인스타그램 대신 BTS 공식 계정으로 몰려가 게시물마다 구토하는 모양의 악플 이모티콘을 달았다. 이를 본 전 세계 ‘아미(BTS 팬클럽)’들은 BTS의 상징인 보라색 하트 이모티콘을 달면서 구토 이모티콘이 보이지 않도록 밀어냈다. 그렇게 하루 동안 BTS 인스타그램 공식계정에는 보라색 하트의 물결이 이어졌다.

BTS와 아미의 상징이 보라색이 된 건 2016년 팬미팅 자리에서였다. 이날 멤버 중 뷔가 자신들을 응원해 주는 팬들을 향해 “사랑해”라는 말 대신 “보라해”라고 외쳤다. “무지개의 마지막 색인 보라색처럼 끝까지 상대방을 믿고 서로 오랫동안 사랑하자”는 의미였다.

겨울올림픽서 BTS 상징 보라색 소환
소화 힘든 색도 ‘배색’ 잘하면 돋보여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받아들이는 감각의 70%가 시각이고, 그중 컬러에 의한 자극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패션뿐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 전반에 걸쳐 ‘컬러 마케팅’이 활발하게 펼쳐지는 이유다.

미국의 팬톤 컬러연구소가 지난해 연말 2022년의 컬러로 ‘베리 페리(Very Peri)’를 발표했다. 지난 23년 동안 팬톤 컬러연구소는 한 해를 대표하게 될 트렌드 컬러를 선정해 왔고, 패션·가전·가구·인테리어 등 산업 디자인 전반에 영향을 끼쳐 왔다.

올해의 컬러인 ‘베리 페리’는 블루와 레드를 적절히 조합한 신비한 보랏빛으로 풍부한 창의성과 상상력, 활기차고 즐거운 태도, 역동적인 존재감과 신뢰를 상징한다. 팬톤 컬러연구소 측은 “코로나19와 메타버스의 등장으로 전례 없는 변화를 맞게 된 지금, 블루가 가진 평온한 자신감과 레드가 가진 대담한 호기심을 조합해 가능성 가득한 미래 세대를 맞자는 의미로 베리 페리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팬톤 컬러연구소가 기존 컬러 팔라트에서 색을 고르지 않고, 역사상 처음으로 새로운 색상을 만들어 낸 이유도 글로벌 혁신과 디지털 세상에 대한 변화의 기대감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실 보라색은 누구나 선택할 수는 있지만, 누구도 쉽게 소화할 수 없는 색이다. IRI 색채연구소가 펴낸 『컬러 콤비네이션』은 “보라색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진 색”이라며 “고귀함·권력·우아함·신비함을 상징하지만 반대로 우울과 허영도 상징한다”고 정의했다. 이 복잡 미묘한 컬러를 누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그런데 컬러의 세계에는 ‘배색(配色)’이라는 단어가 존재한다. 두 가지 이상의 색이 서로 잘 어울리도록 배치한다는 뜻이다. 옷을 비롯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제품이 두 가지 이상의 색과 어울려 있음을 떠올려 보자. 코카콜라의 강렬한 붉은 로고가 소비자의 눈에 잘 띄는 것은 콜라의 검정색과 배색됐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녹색 사이렌 또한 흰 바탕 위에 있기 때문에 유혹 같은 커피 한잔의 여유로 다가온다. 흰색과 어울린 노랑은 달걀프라이처럼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파랑과 어울린 노랑은 이케아 로고처럼 활기차게 느껴진다.

세상의 모든 색은 옆에 어떤 배색을 두느냐에 따라 이미지와 느낌이 전혀 달라진다. 좋아하는 여러 색을 잘 배색해서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 진정한 컬러의 힘이란 이런 게 아닐까.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 표를 보면 빨강·파랑·오렌지·노랑 막대기가 나란히 보인다. 이 색들이 국민을 위해 진짜 좋은 배색으로 어울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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