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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잃어버린 30년’ 올 수 있다는 경제학계의 경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75호 30면

무책임한 돈 풀기 공약에 재정적자 악화

일본식 장기 침체 경고 엄중하게 인식해야

투자 활성화, 생산성 향상 위한 해법 시급

정치권의 무책임한 포퓰리즘 공약이 현실화하면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과 같은 장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한국경제학회 등 55개 학회가 참여한 ‘2022 경제학 공동 학술대회’에서 경제학자들이 내놓은 우려의 목소리다. 기조연설자로 나선 김인준 서울대 명예교수는 “재원과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은 손실보상, 선별과 보편 동시 재난지원금 지급, 기업 간 이익 공유제 등 포퓰리즘 정책이 난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선심성 정책으로 국가채무 비율이 치솟으면 “유사시 국가신인도가 크게 의심받게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학자들의 경고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염명배 충남대 명예교수는 “이른바 ‘빚의 복수’ 현상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빚을 늘려가며 정부 지출을 확대할 경우 금리 상승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져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국민 고통을 가중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장용성 서울대 교수는 인플레이션→임금 상승→고용 감소와 제품값 상승→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면서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다.

최근 여러 경제 지표에 나타난 한국 경제는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가운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고공 행진을 이어간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재정적자가 급증하면서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50%를 웃돈다. 무역수지도 두 달 연속 적자를 기록하며 ‘쌍둥이 적자’의 비상등이 켜졌다. 대외 경제 여건도 좋지 않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는 등 원자재 가격이 뛰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는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서두를 수 있다고 예고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예고만으로도 국내 금융시장은 매우 불안한 흐름을 보인다. 주가와 원화가치는 급락했고 시장금리는 크게 올랐다. 무리한 ‘빚투’(빚내서 투자)로 집이나 주식을 추격 매수한 사람들은 자산가격 하락과 대출이자 급증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염 명예교수는 문재인 정부 5년간 경제·재정정책에 대해 “재정 중독, 재정 만능주의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나라의 모든 문제를 오로지 재정으로 해결하려는 강박증이 ‘재정 중독’이다.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을 맞았던 이유가 재정 중독의 달콤한 유혹에서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다음달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선거용 돈 풀기 경쟁이 심각한 모습이다. 이미 정부가 14조원 규모로 편성해 국회에 제출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를 놓고 ‘묻지마 증액’ 경쟁에 열을 올린다. 재정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이 힘으로 밀어붙일 태세다. 가뜩이나 재정적자가 심각한 상황에서 다시 대규모로 돈을 푼다면 미래세대에 모든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반면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은 한시가 급한데도 득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경제학계의 경고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라도 포퓰리즘 경쟁을 멈추고 한국 경제에 활력을 되찾아주는 방안을 찾는 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일시적으로 만든 일자리는 지속 가능할 수가 없다. 민간 투자를 활성화해 생산성을 높이면서 고용과 소비를 촉진하고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을 끌어내야 한다. 전현배 서강대 교수가 “떨어진 주력 제조업의 생산성을 회복하고 서비스업 생산성을 높이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 이유다.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규제는 과감히 걷어내야 한다. 무책임한 돈 풀기 대신 기업들이 투자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여야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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