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때 태어난 아이, 눈 마주보며 소통하고 놀아줘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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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27면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아이 경험과 두뇌 발달

2018년생 예진이는 만 4살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그림을 무척 잘 그린다. 유아들은 일반적으로 진료실에 들어오자마자 장난감부터 찾는데 예진이는 종이와 색연필부터 찾는다.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였다.

“선생님, 종이 있어요?” 예진이는 의자에 앉기도 전에 그릴 것부터 찾았다.

“색연필도 줄까?” 내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뇨, 집에서 색연필 가져왔어요.” 예진이는 어깨에 둘러맨 앙증맞은 코코몽 가방 안에서 주섬주섬 색연필을 꺼냈다. “예진아, 오늘은 뭐 그릴 거야?” 내가 물었다. “음…, 엄마 아빠요.” “그래! 그러자.” 나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예진이가 그림 그리는 행동을 쳐다보았다. 예진이는 사람 얼굴을 동그라미로, 몸통은 세모로 표현했고 제법 힘 있게 그려나갔다. 나는 아이가 엄마 아빠 얼굴을 어떻게 묘사할지 궁금해하면서, 부모와 잠시 대화를 했다. 몇 분이 지난 후 예진이가 “선생님! 저 다 그렸어요. 짜잔~” 하며 종이를 내 얼굴에 바짝 갖다 댔다. 나는 적당한 거리에서 보려고 책상 위에 그림을 올려놓고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예진이 부모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왜 웃는지 몰랐다.

팬데믹만 경험한 아이, 언어 능력 등 저하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천근아의 세상 속 아이들

“선생님, 예진이가 요새 사람들을 다 이런 식으로 그리네요.”

나는 그림을 다시 세세하게 봤다. 엄마 아빠 이외에도 동생, 유치원 선생님, 예진이 자신까지 총 5명을 그렸는데 얼굴 속에는 눈 아래로 전부 사각형이 그려져 있었다.

“예진아, 사람들 입이 왜 다 네모야?”라고 내가 묻자 “아, 사람들이 다 마스크 쓰고 있는 거예요”라고 아이가 대답했다. “하하. 그래? 재밌네. 사람들이 모두 마스크를 쓴 거구나. 그런데 마스크 벗은 얼굴들도 너무 궁금한걸?” 나는 예진이의 반응을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안돼요. 마스크 벗으면 바로 코로나 걸리는데.” 예진이가 대답했다. “가족들은 집에서 다 벗고 있지 않나?” 내가 다시 물었다. “지금 여기는 바깥이에요. 엄마 아빠가 유치원으로 저랑 동생 데리러 나온 거예요. 여기 유치원 선생님도 같이 있잖아요.” 예진이는 그림을 가리키며 즉석에서 상상한 것을 유창하게 설명해 나갔다. 부모는 예진이의 이런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봤다. 나도 함께 웃었다. 다만, 그림 속 사람 얼굴의 반이 네모로 가려져 있고 그나마 드러난 눈은 무표정하다는 점이 뭔가 마음에 걸렸다.

예진이는 동생이 태어난 후로 어린이집 거부가 심해져서 내원했던 아이다. 수개월간 놀이 치료를 하면서 어린이집도 잘 가고 거의 호전됐다. 그래서 곧 치료 종결을 앞두고 있다. 부모가 그림을 보며 생각에 잠긴 나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예진이가 사람 얼굴을 매번 이렇게 그리는 거…, 괜찮은 거죠?” “아, 네. 아이가 본 요즘 세상 사람들이 이런 것을 어쩌겠어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부모님께서 아이 앞에서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고 아이와 웃으며 교감하면서 대화도 많이 나누어 주세요. 부모는 아이에게 세상의 거울과 같은 존재이니까요.”

내 이야기를 듣더니 부모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실은 예진이 아빠가 결벽증이 있어서 집에서도 수시로 손 소독하고 밥 먹을 때 빼고는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에게 병균 옮기면 안 된다면서요. 게다가 저한테까지 집안에서도 마스크 잘 쓰라고 하도 잔소리를 해서 저도 참 힘듭니다. 여보! 들었지? 아이한테 다양한 표정 많이 보여주라고 하시잖아!” 예진이 엄마는 남편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예진이 가족의 이야기는 영유아 자녀를 둔 집에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2020년 3월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이 23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그 당시 태어난 아기들은 이제 걸음마기 나이가 되었다. 아기들이 태어나서 유일하게 보는 사람의 온전한 얼굴은 부모와 가족뿐이다. 며칠 전 모 방송사 뉴스에서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 소개된 미국 브라운대 숀 디오니 교수팀의 최근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코로나19로 인해 영유아들의 뇌 발달이 저해될 수 있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꽤 반향이 컸다.

그 연구는 다음과 같다. 생후 3개월에서 3세 사이의 영유아를 대상으로 언어 영역, 퍼즐 맞추기, 서기, 걷기 등 운동 능력과 같은 뇌 발달 상태를 점수화했다. 팬데믹 발생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로 나누어 2011~19년에 태어난 영유아들의 점수는 85~115점 사이(평균 100점), 2020년 이후 태어난 아기는 80점 아래(평균 78점)였다. 이 연구 결과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게 있으나 소아정신과 전문의로서 어느 정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즉, 아이들이 생후 초기 경험하는 자극의 정도가 뇌 발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유아들은 생후 3년 동안 경험해야 할 최소한의 적절한 경험과 환경이 있다. 일반 영유아라면 마땅히 받아야 할 보편적인 경험과 자극에 의해서 기대되는 뇌 발달, 즉, ‘경험-기대형 뇌 발달(experience-expectant brain development)’이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시기다. 이 시기의 영유아들에게 주어질 환경이란 대단하고 수준 높은 것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너무 과할 경우 독이 된다.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환경이 제공되면 된다. 정상적인 환경이라는 뜻은 아이가 시각·청각 등의 오감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 이러한 경험들은 아기의 뇌에서 감각피질이 왕성하게 발달하도록 돕고 향후 정서적, 사회적, 언어 발달 그리고 더 나아가 고위 인지 발달의 토대를 갖추게 만든다.

그러나 이 결정적이고 중요한 시기에 아기의 뇌가 받아야 할 최소한의 환경 자극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이 기능이 영구적으로 상실될 수 있다. 그래서 위에서 소개한 2020년 3월 이후 태어나 팬데믹 세상만 경험한 아기들의 뇌 발달이 저하되어 있다는 연구 결과를 간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의 뇌 발달은 ‘경험-의존형 뇌 발달(experience-dependent brain development)’이다. 영유아기 발달의 많은 측면을 결정해 주는 발달 과정으로서 위에서 언급한 정서적, 사회적 발달, 언어 및 인지 발달이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이 긍정적 경험을 많이 할수록 뇌신경 세포의 수가 늘어나고 신경 연결망이 촉진된다. 아이에게 제공된 환경의 질에 따라 개인의 고유한 뇌 발달이 결정되기 때문에 이를 ‘경험-의존형’이라 일컫는다. 예를 들어, 모든 아기는 언어 기능에 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아이의 의사소통 능력은 유아기에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언어적 자극에 얼마나 노출되느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조기보다 적기교육해야 뇌 제대로 발달

둘 다 ‘뇌 가소성(neural plasticity)’ 이론에 대한 이야기다. ‘뇌 가소성’이란 인간의 뇌는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적응하고, 어떤 환경적 경험이 주어지느냐에 따라 뇌신경 발달이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이론이다. 팬데믹 동안 필수적인 자극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에게는 이제부터라도 경험하게 해주면 된다. 어린아이들의 뇌는 어른보다 훨씬 더 유연하기 때문이다.

영유아기 초기부터 인지적 학습을 과도하게 시키는 것은 그 시기에 아이들이 꼭 받아야 할 감각적 경험과 애착을 통한 정서적 안정감을 희생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다시 말하면 ‘경험-기대형 뇌 발달’이 방해를 받는다. 3~4세 유아가 받아야 할 필수적인 경험은 의사소통 경험과 상호작용 놀이 자극이다. 그래야 ‘경험-기대형 뇌 발달’이 제대로 형성된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조기교육보다 적기교육을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예진이와 부모가 3개월 만에 병원을 찾았다. “예진이 그림 속 사람들은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있나요?” 내가 웃으며 물었다. “네. 여전해요. 근데 신기하게도 엄마 아빠 얼굴은 눈·코·입 전부 다 그려주더라구요. 실은 저희 부부가 요새 집안에서는 절대 마스크 안 쓰고 얼굴 보며 놀아주는 시간을 배로 늘렸어요. 그래서 그런지 예진이 그림 속 우리 표정이 항상 웃고 있네요.”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해 등장인물을 가명으로 처리했고, 전체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일부 내용을 각색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천근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 교수. 연세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세브란스병원 소아정신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2008년 영국 국제인명센터(IBC)의 ‘세계 100대 의학자’로 선정. 서울시교육청 자문위원, 가정법률상담소 교육위원, 법무부 여성아동정책심의위원으로 활동했다. 저서로는 『아이는 언제나 옳다』, 『엄마 나는 똑똑해지고 있어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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