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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필카 100년 감성 그대로, 디지털 편의성을 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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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26면

[쓰면서도 몰랐던 명품 이야기] 독일 카메라 ‘라이카 M11’

지난 1월 100년 전통의 독일 명품 라이카가 5년 만에 내놓은 ‘M11’. 전통과 혁신의 상징답게 카메라 외형은 M시리즈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디지털 고성능 기능은 훨씬 편리해졌다. [사진 라이카]

지난 1월 100년 전통의 독일 명품 라이카가 5년 만에 내놓은 ‘M11’. 전통과 혁신의 상징답게 카메라 외형은 M시리즈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디지털 고성능 기능은 훨씬 편리해졌다. [사진 라이카]

SNS에 올린 온갖 사진들은 다양한 관심의 현재를 보여준다. 전 국민의 ‘사진작가화’가 이루어졌다는 게 맞다. 그런데 도통 카메라 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불과 얼마 전까지 큼직한 망원렌즈를 단 DSLR 카메라를 메고 니콘·캐논·소니파로 나뉜 자들이 무림의 세계마냥 자신들의 세를 과시하지 않았던가. 이러던 카메라 사용자들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이유는 하나다.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며, 실수해 사진을 망치는 일이 더 어렵다는 스마트 폰 카메라 때문이다. 세상이 원하는 카메라는 온갖 것을 통합하고 기대를 앞지르는 순발력으로 벌써 우리 손에 들려있다.

기존 카메라들의 몰락은 예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세상을 휩쓸었던 일본제 카메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다양한 기능과 고성능은 복잡해지고 크고 무거워졌으며 온라인에 사진 올리는 일이 번거로웠다. 이런 점이 아무렇지도 않았다면 천편일률의 디자인을 문제 삼았을 게다. 카메라의 아름다움이 다가오지 않으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카메라 형태가 비례와 균형을 갖춘 예술품 같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사람을 매혹시킨 정교한 기계의 끝점에 오랜 세월 카메라가 위치했던 건 당연한 일이다. 일본 카메라들은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 개성을 잃었다. 독일제 카메라를 무턱대고 모방했던 첫 출발의 관성을 멈추지 못해서다.

지난 1월 100년 전통의 독일 명품 라이카가 5년 만에 내놓은 ‘M11’. 전통과 혁신의 상징답게 카메라 외형은 M시리즈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디지털 고성능 기능은 훨씬 편리해졌다. [사진 라이카]

지난 1월 100년 전통의 독일 명품 라이카가 5년 만에 내놓은 ‘M11’. 전통과 혁신의 상징답게 카메라 외형은 M시리즈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디지털 고성능 기능은 훨씬 편리해졌다. [사진 라이카]

반대의 경우도 있다. 100년 전 만들어진 카메라 ‘라이카’다. 지금 보는 소형 카메라를 처음 만들어낸 회사가 독일 라이카다. 변화의 속도가 현기증 날만큼 빠른 시대에 변하지 않는 것의 안도감을 준다. 눈에 익은 형태의 익숙함과 성능의 신뢰가 풍기는 아우라도 불변이다. 아날로그 속성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디지털 결과만을 담는 선택을 했다. 그 바탕엔 처음부터 완벽했던 디자인의 아름다움이 있다. 라이카의 많은 모델들은 초기 카메라의 형태와 크기를 그대로 이어간다. 라이카의 감각적인 품질은 대체 불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디지털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를 부활시켰다. 만질 수 있는 예술품이 있다면 라이카 같은 것이 아닐까. 이를 욕망하는 인간의 선택은 이상할 게 없다. 자동차의 명가 포르쉐도 외형은 바꾸지 않는다. 최신형 엔진으로 성능을 높여 기대치 이상의 속도 감각을 충족시킬 뿐이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원형의 자부심이 없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디지털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어도 오리진의 힘은 흔들지 못한다는 걸 두 독일 브랜드를 통해 확인한다.

디지털을 어설프게 이해하면 기술적 결합의 장점만 보게 된다. 하지만 인간의 감성이 스며들 수 없는 기술이란 외면 받게 마련이다. 지금까지 선보인 이상한 모습의 디지털 카메라들이 하나도 살아남지 못한 이유다.

1954년 출시된 M3. [사진 라이카]

1954년 출시된 M3. [사진 라이카]

MZ세대가 라이카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사진은 스마트 폰으로 찍는 걸 당연시 여겼던 이들이 만만치 않은 가격대의 라이카를 사고 아날로그 감성에 빠져든다. 그들에게 라이카는 과거의 브랜드가 아니라 새로움의 대상이다. 디지털의 냉랭함 대신 자신의 손길을 거쳐야만 완성되는 아날로그 감성의 카메라가 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많은 것들이 압축되고 때론 흔적도 없이 제거되는 게 디지털이다. 과정은 보이고 만져지지 않는다. 디지털은 아날로그와 결합될 때 과정의 아름다움을 실감케 된다. 인간은 보고 듣고 만지고 먹고 냄새 맡는 과정을 통해서만 감각하는 게 맞다.

라이카의 대표제품은 ‘M시리즈’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각인된 라이카 M은 오스카 바르낙이 영화용 필름을 이용해 설계한 소형카메라의 원조다. 라이카 카메라는 인간의 보는 방식을 바꾸며 세계사의 굵직한 순간들을 잡아냈다. 스마트 폰을 만들어 세상을 바꾸어 놓은 스티브 잡스만큼 중요한 업적이다.

필름 대신 디지털 이미지 센서를 쓰는 현재도 당시 만든 M의 외형은 불변이다. 거리계 연동식 광학 파인더도 그대로다. 일일이 손으로 렌즈의 초점을 맞추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2022년 새로 나온 M11도 다를 게 없다. 시대착오라 여길 지 모르지만 라이카의 고집에는 이유가 있다. 스마트 폰을 쓰게 되면서 습관적으로 눌러대고 쌓여가는 사진이다. 편리함이 더해질수록 기억에 남는 게 없다. 대상과 일대일 눈을 맞추고 교감하는 과정의 부활이 소중해졌다. 라이카 M시리즈는 정지해 잠깐 머무르는 여유가 디지털 시대의 덕목이란 걸 일깨워줬다.

평소 라이카 카메라 본사에 꼭 한 번 가 보고 싶었다. 코로나 역병의 와중에 마침내 지난해 독일 베츨라에 있는 라이츠 파크에 다녀왔다. 라이카는 라이츠 산하의 카메라 브랜드다. 넓은 부지에 카메라 생산공장·연구실·판매점·전시장·호텔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실물과 대조하며 라이카의 역사와 진화를 확인했다. 라이츠 파크는 사진과 광학 기술을 내용으로 하는 테마파크인 셈이다. 100여 년 전 라이카가 출발했고, 다시 돌아와 자리 잡은 도시 베츨라는 전 세계 라이카 팬들의 성지다.

라이카를 이끄는 수장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회장도 만났다. 그는 1997년부터 디지털소프트웨어 회사를 운영했다. 위기가 라이카라고 해서 빗겨갈 수 없다. 앞선 기술을 수용하고 감각적 디자인을 입히는 노력이 그의 대처 방법이다. 기존 철판을 눌러 찍어내는 대신 알루미늄 궤를 파내 몸체가 만들어지는 기법도 적용시켰다. 이런 디자인은 알파 로메오와 폭스바겐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발테르 드 실바가 이끌고 있다.

완고해 보이는 라이카의 변신은 멈춘 적이 없다. 카우프만 회장은 붉은색 라이카 로고가 선명한 샤프의 스마트 폰을 내게 보여줬다. 1인치 크기의 이미지 센서가 달린 스마트 폰 카메라 화질은 놀랄 만했다. 라이카의 광학 기술은 누구와도 합작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독일의 안경 브랜드 마이키타(MYKITA)와 라이카가 손잡은 안경이 한 예다. 정교한 금속 프레임의 디자인과 조화된 라이카 렌즈의 우수함은 시력 보완의 영역으로 확대됐다.

라이카의 변신을 의아해하는 내게 카우프만 회장은 라이카의 본질이 광학임을 강조했다. “우린 다른 브랜드들처럼 향수까지 만들지 않는다.” 그룹인 라이츠사가 하지 못할 일이란 없지만, 브랜드인 라이카가 할 일은 정해져 있다는 거다. 오랫동안 라이카와 함께해온 애호가로서 안도감을 느꼈다. 

윤광준 사진가. 충실한 일상이 주먹 쥔 다짐보다 중요하다는 걸 자칫 죽을지도 모르는 수술대 위에서 깨달았다. 이후 음악, 미술, 건축과 디자인에 빠져들어 세상의 좋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게 됐다. 살면서 쓰게 되는 물건의 의미와 가치를 헤아리는 일 또한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생각한다. 『심미안 수업』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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