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인 듯 혼자인 듯 고독을 즐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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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20면

낭만적 은둔의 역사

낭만적 은둔의 역사

낭만적 은둔의 역사
데이비드 빈센트 지음
공경희 옮김
더퀘스트

재택근무, 방역 수칙의 틈을 뚫고 우리는 수시로 밖으로 쏘다닌다. 사람과의 접촉이 그립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혼자 있는 상황을 못 견뎌 하는 것 아닐까. 팬데믹을 자기 내면과 마주할 흔치 않은 기회로 활용하자는 구호도 수상쩍기는 마찬가지다. 최악의 순간에나 가능한 일 아닐까. 그만큼 쉽지 않아 보인다는 얘기다.

옛사람들은 어땠을까. 2000년도 더 된 고질병이라는 게 책의 진단이다. 책의 표현대로라면, ‘혼자 있기’와 ‘함께 있기’ 사이에 인간의 갈등의 역사는 그만큼 길다는 거다. 그런 생각에 따라 혼자 있는 막막한 시간을 견뎌내거나 선용하기 위해,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흔들리면서, 사람들이 어떤 것들에 매달렸는지를 광범위하게 추적했다. 18세기 이후 영국의 시와 산문, ‘대중관찰 조사’ 같은 사회학 보고서, 출판문화 등을 훑은 사회문화사 성격이다.

유럽인들 ‘뻘짓’의 역사지만 우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니, 우리 여가 문화 중에 아무래도 서양 박래품(舶來品)이 많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표 수집, 카드 게임 같은 것 말이다. 품종 개량한 조류와 동물을 전시해 경쟁하는 ‘팬시(Fancy)’는 낯설다. 매어놓은 곰에 개가 덤비게 하는 놀이, 투계, 조련한 개를 활용한 쥐잡기 대회가 모두 팬시로 묶인다. 쥐잡기가 발전해 애견가 클럽이 결성되면서 동물 등급 제도와 혈통 대장이 생겨났다고 소개했다.

프랑스 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가 1873년에 그린 ‘독서(녹색 우산)’.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사진 더퀘스트]

프랑스 화가 베르트 모리조(1841~1895)가 1873년에 그린 ‘독서(녹색 우산)’. 미국 클리블랜드 미술관 소장. [사진 더퀘스트]

책은 새로운 소일거리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져 소비됐는지 당대인들의 내면 풍경까지 보여준다. 가령 19세기의 낚시 예찬론 가운데 이런 문장이 있다.

“어떤 삶도, 그 어떤 삶도 잘 통제된 낚시꾼의 삶처럼 행복하고 기쁘지 않을 것이다. 법조인이 일에 싸이고 정치가가 음모를 막거나 꾸밀 때, 우린 카우슬립 강변에 앉아 새소리를 들으며 앞에서 흐르는 은빛 물줄기 같은 고요에 잠긴다.” (122쪽)  21세기의 누군가가 낚시의 역사를 편찬할 때 최초의 텍스트로 삼을 만한 글이다.

왜 여성의 바느질이 실용적 기예라기보다 정신수양처럼 느껴지는지 궁금증도 풀린다. 바느질이나 자수는 중산층 여성들이 분주한 가정생활 가운데 분리된 혼자임을 느낄 수 있는 여가활동이었다. 19세기 비턴 여사는 『살림 백과』에서 남성의 흡연과 바느질을 이렇게 비교했다고 한다.

“바느질에는 특이하게 위로를 주는 면이 있고, 그것은 애연가들이 담배를 피울 때 경험하는 위로와 비슷하다. 여자가 혼자 있다면 바느질이 사색을 유도한다.” (99쪽)

한땀 한땀 바느질은 성차별과 가사 독박 현실에 눈뜨기 시작한 근대 여성들이 내면의 ‘자기만의 방’을 마련하는 방편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흡연은 초창기부터 이중적이었다. 자유의지로 시작하지만 중독에 빠져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없게 되는 모순을 말하는 게 아니다. 집단활동이었다. 경쟁의식에서 습관이 시작된다. “손때 묻은 파이프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거나 틈틈이 청소하”는 것만으로도 위안과 기분전환이 됐다(220쪽). 그런데 개인 활동이기도 했다. 한데 모여 담배를 피우면서도 집단에서 자신을 분리시키는 수단이었다는 거다. 담배가 타들어 가며 몽상도 끝나가지만, 노골적으로 타인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물러나 있을 수 있는 편리한 수단으로 담배 만한 게 없다는 얘기다.

산책이나 발길 닿는 대로 걷는 만행(漫行, 찰스 디킨스가 도시 탐험의 대가였다고 한다), 수도원·감옥 같은 곳의 독방, 외로움. 이런 항목들을 다루며 책은 깊어진다. 저자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했다. 고독은 집단 속에 있지 않으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상태, 고독한 상태가 길어져 비용편익이 낮아지면 찾아오는 감정이 외로움이다. 그래서 우리는 쏘다녔던 거다. 코로나가 길어지니까 말이다. 이런 이야기 속에서 한참을 소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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