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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브랜드 성공 키워드는 진정성, 가지 않는 길 가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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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18면

광고·브랜딩 전문가 조언

30년 경력의 브랜딩·광고·마케팅 전문가 이근상 KS’IDEA 대표. 신인섭 기자

30년 경력의 브랜딩·광고·마케팅 전문가 이근상 KS’IDEA 대표. 신인섭 기자

지난 1월 중순 광고회사 케이에스아이디어(KS’IDEA)로 이근상(58) 대표를 만나러 갔다. “대표님, 뵈러 왔는데요.” 질문을 받은 사무실 직원이 다른 직원에게 물었다. “KS, 어디 가셨지?” KS는 이근상 대표의 이니셜이다. “사내에선 누구라도 각자 이름의 이니셜로 불려요. 2~3년 전까지만 해도 갓 입사한 젊은 직원이나 대학생 인턴들은 당황하며 ‘KS님’이라고 부르더니 요즘은 짤 없어요. 역시 Z세대에요.”(웃음)

2004년 설립된 케이에스아이디어에는 대표 이하 누구도 따로 방이 없다. 실내에는 20여 개의 책상이 두 줄로 나란히 늘어섰는데 이 대표의 책상은 문에서 가장 먼 창가에 있었다.  “이번 달엔 제가 운 좋게 이 자리를 잡았죠.(웃음) 우리 사무실엔 고정 책상이 없어요. 한 달에 한 번씩 자신이 앉고 싶은 곳에 앉거든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그날의 자리를 정하도록 하고 싶은데 디자이너들이 사용하는 컴퓨터랑 모니터가 커서 매일 아침 옮기기는 어렵더라고요.”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표지.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 표지.

18년 전 개인 회사를 창립하면서 회사 내 직급과 직함을 없애고 이니셜 호칭을 사용하는 등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없앴다. 아마도 실리콘밸리보다 먼저 아닐까. 청바지에 검정 풀오버 스웨터, 짧은 머리를 한 이 대표의 모습이 스티브 잡스를 연상시킨다. “팀 중심으로 프로젝트 성격은 변해 가는데 여전히 국장님, 차장님…. 층층시하 조직문화에 얽매어 눈치 보면서 보고서의 보고서를 결재 받아가며 일하는 게 맞는 일인가. 아이디어는 위아래 가리며 떠오르는 게 아닌데 말이죠. 누구보다 혁신을 부르짖는 광고회사가 위계질서를 따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죠.”

30년 넘게 대기업 광고 성공 신화

광고 회사 코래드에 입사해 광고인으로서 첫발을 디딘 이 대표는 최연소 기획본부장으로 당시 대우 자동차의 모든 광고 캠페인을 기획했다. 국내 최고의 독립 광고회사 웰콤에선 부사장으로 퇴사하기 전까지 경쟁 프레젠테이션 20연승 무패 기록을 세웠다. 당시 작성했던 기획서는 지금도 온라인에서 화제다. 당시 그가 기획한 대표작들로는 ‘쉿 레간자(자동차 광고)’ ‘오래 오래 입고 싶어서(트롬 세탁기 광고)’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현대카드)’ 등의 광고들이 있다. 케이에스아이디어 설립 후에도 그는 줄곧 바디샵·한국투자증권·프로스펙스·파라다이스그룹·아우디·NH투자증권 등의 브랜드 광고들을 기획했다.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출판사 ‘타라북스’. [사진 몽스북]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출판사 ‘타라북스’. [사진 몽스북]

이렇게 평생 대기업 광고를 만들었던 그가 최근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몽스북)이라는 마케팅·세일즈 관련 책을 냈다. “30년 넘게 큰 브랜드를 위해 브랜딩·마케팅·광고를 해왔던 사람이 갑자기 ‘작은 브랜드’를 주제로 다루려니 배교자가 된 느낌도 들었지만, 변해야 할 건 변해야 하니까요.” 그는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관점이 달라졌다고 했다. ‘나’에서 ‘우리’, ‘성장 지향성’에서 ‘지속 가능성’이라는 잣대로 세상을 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브랜드를 받아들이는 소비자의 태도가 크게 변화했죠. 광고를 통해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던 소비자들이 SNS 등 다양한 디지털 환경을 통해 정보 생산과 탐색의 주체가 되어 스스로 브랜드를 찾아내고 선택하고 있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그동안 큰 브랜드를 성장시켰던 기존 방식은 동력을 잃었고, 반대로 작은 브랜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해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할 최고의 기회를 맞았죠.”

그는 “작은 브랜드는 큰 브랜드의 방식으로 큰 브랜드와 싸워서는 안 된다”고 했다. 말하자면 『이것은 작은 브랜드를 위한 책』은 경험 많은 선배가 이제 막 작은 브랜드를 시작해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이들을 위한 브랜딩·마케팅·광고 가이드이자 응원서다.

그가 말하는 큰 브랜드와 작은 브랜드는 상징적 개념이다. 큰 브랜드는 ‘빠르게, 가능한 크게, 최대한 넓게’ 성장해온 브랜드나 기업을 통칭한다. 반대로 작은 브랜드는 ‘느리게, 적게, 좁게’ 시작하는 자영업자·소기업이다.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소형핸디 다리미 ‘로라스타’. [사진 몽스북]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소형핸디 다리미 ‘로라스타’. [사진 몽스북]

“작은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해선 빠른 성장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사람도 성장기까진 하룻밤 사이 키가 얼마나 컸는지가 관심사겠지만, 성인이 되어서까지 키 재기를 하고 있다면 어리석은 거죠. 이제 지적으로, 감성적으로, 인간적으로 깊어져야죠. 소비경제시장이 충분히 성숙한 지금이 큰 브랜드와는 다르게 규모는 작지만 가치 있는 다양한 브랜드들이 등장할 때라고 생각해요.”

308쪽에 달하는 책은 총 23개의 챕터로 구성돼 있다. 각 챕터는 ‘크기의 개념을 바꿔라’ ‘라포를 만들어라’ ‘해오던 것에 질문을 던져라’ ‘30미터만 앞서가라’ 등 이 대표가 조언하는 핵심내용을 소제목으로 했다. 그 안에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작지만 가치 있는 브랜드의 실제 선례와 이 대표가 30년 간 경험한 사례들이 채워져 있다. 책을 주문하고 받아보기까지 평균 9개월이 걸리는 작은 출판사 ‘타라북스’, 1개에 300만원을 훌쩍 넘는 소형 다리미 ‘로라스타’, 로컬푸드 레스토랑 컨셉트로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타이틀을 거머쥔 ‘노마’ 등이 그 예다.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가벼운 친환경 신발 ‘올버즈’. [사진 몽스북]

작은 브랜드로 성공한 사례. 가벼운 친환경 신발 ‘올버즈’. [사진 몽스북]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를 물었더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가,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가는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이 3가지가 작은 브랜드가 성공하기 위한 덕목”이라며 “이 3가지를 축약한 핵심 키워드는 ‘진정성’”이라고 답했다. “서울 약수동에 가면 에스프레소만 파는 카페가 있어요. 한국인에게 에스프레소는 낯설지만 사장은 자기가 좋아하는 에스프레소 문화를 사람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 가게를 운영하죠. 규모는 작아도 그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는 이유에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이란 자신만의 형용사를 가지라는 의미다. “신발을 내가 처음 만든 것은 아니지만 ‘이런 신발은 내가 처음’이라는 형용사를 달 수 있어야 해요. 세상에서 가장 편한 친환경 신발을 컨셉트로 하는 ‘올버즈’가 좋은 예죠. 만드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를 충족할 수 있으니까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브랜드란 단순히 착한 브랜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물건을 팔아 수익을 남기는 게 기업의 목적이고, 소비자 역시 자신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소비행위로 즐거움을 얻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경제 전반에 어떤 긍정적인 영향력을 남겼는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시장 30% 작은 브랜드로 채워져야

책의 사례 중에는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도 있다. “벤치마킹하고 싶다면 다른 카테고리에서 성공한 방법을 가져오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이키가 자신들의 경쟁 상대는 닌텐도라고 말한 적이 있죠. 같은 분야에서만 기웃대면 영원히 넘버2가 될 수밖에 없어요. ‘애플 투 애플’보다는 동네 앞 떡볶이 장사 아줌마의 오랜 노하우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는 게 훨씬 나아요.”

그는 우리 소비경제시장이 ‘지속가능한 숲’을 일구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고 했다. 큰 나무들도 있어야 하지만 키 작은 관목도, 풀도, 이끼도 존재해야 건강한 숲이 된다는 말이다.

“결국 토양의 문제죠. 건강한 소비경제 구조를 갖추려면 시장의 30% 이상이 작은 브랜드로 채워져야 합니다. 모든 브랜드가 전 국민을 상대로 세계 1위만을 꿈꾼다면 동네상권은 몰락할 수밖에 없어요. 일본의 몇 백 년 된 스시집이 빌딩은 못 올려도 가치를 인정받고 동네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소가 된 것처럼 토양, 즉 패러다임이 변해야겠죠.”

그가 제안하는 방법은 ‘브랜드 공동체 형성’이다. 판매자와 소비자가 같은 곳에 서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브랜드를 함께 일궈야 한다는 의미다. “MZ세대의 주요한 창구인 SNS가 브랜드의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창이 아니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광장이 돼야 해요. BTS의 팬클럽 ‘아미’가 단지 콘서트 티켓을 사는 구매자가 아니라, BTS 콘텐트를 함께 만드는 브랜드 구성원이 된 것처럼 말이죠.”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광고계 후배가 “책의 내용이 좋긴 한데 너무 이상적이다”라고 남긴 댓글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상적이고 개념적인 철학은 자칫 굶어죽기 딱 좋죠.(웃음) 이 책이 시장을 건강하게, 다양하게 만들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만들어가기 위한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좋은 브랜드의 진정성이란 만드는 사람에게도 사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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