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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 정책 헛바퀴, 더 절박해진 청년 취업]해마다 세금 수조원 쏟아부은 일자리 3~6개월로 끝…청년 고통지수만 높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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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5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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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여파로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공고를 살피는 구직자들. [뉴스1]

코로나19 여파로 좁아진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공고를 살피는 구직자들. [뉴스1]

2020년 11월. 쇼호스트를 꿈꾸던 임상훈(가명·29)씨는 우연히 접한 디지털 마케팅에 흥미를 느껴 뒤늦게 진로를 바꿨다. 남들과 비교해 스펙이 부족하다고 느낀 그는 뭐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에 지원했다. 중소·중견기업에서 정보기술(IT) 분야를 활용할 수 있는 직무에 투입돼 6개월간 나라에서 인건비를 지원해준다고 하니 월급이 밀릴 걱정도, 갑작스레 해고될 걱정도 없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턴 기회조차 받기 어려웠던 임씨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회사 생활 부푼 꿈 첫날부터 산산조각”

하지만 임씨의 꿈은 출근 첫날부터 산산조각이 났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한 그는 회사 소셜미디어(SNS) 관리와 콘텐트 제작 업무를 맡게 됐다. 포토샵 등의 편집 프로그램이 필수인 직무였지만 회사에서는 “돈이 없으니 프로그램을 깔아줄 수 없다”며 “알아서 콘텐트를 만들어보라”고 지시를 내렸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돈 받고 피시방 나가는 기분”이라며 자조 섞인 말들이 오갔다. 임씨는 “국가에서 주관하는 사업이기에 믿고 참여했는데 6개월 동안 시간 낭비만 하다가 계약해지 통보를 받고 버려졌다”며 “정부는 마치 ‘기회라도 줬으면 된 거 아니냐’는 식으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다.

그로스 마케터를 꿈꾸던 박효림(가명·28)씨의 2020년 여름도 다르지 않았다. 광고홍보학 전공인 박씨는 데이터를 배우면 마케팅 직무 취업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행정안전부 공공빅데이터 청년인턴에 지원했다. 경기도 내 공공기관에 투입된 그는 업무 공간이 없어 재택근무와 출근을 번갈아 했다. 박씨는 “출근날까지 기관은 몇 명이 오는지 몰랐다더라”며 “자리가 없어 10명씩 쪼개 출근했고, 디지털 댐 구축 업무를 한다더니 종일 엑셀 작업만 하다 왔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동일한 프로그램을 이수하다 중도포기를 결정했던 이수정(가명·27)씨는 “데이터 비전공자도 뽑는다더니 준비된 교육과정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며 “보여주기식 사업과 일처리에 실망해 국가사업에는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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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채로 시간을 보냈던 이들은 더욱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 다시 내던져졌다. 지난해 8월 첫 인터뷰 후 5개월이 지난 지금, 2019년~2021년에 걸쳐 사업에 참여한 이들 중 현재 3명은 취업, 1명은 공공기관 취업준비생, 1명은 프리랜서로 근무 중이다. 취업에 성공한 3명의 경우 모두 참여했던 프로그램과는 무관한 업무를 담당한다. 임씨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으로 시간을 낭비한 바람에 취업준비 기간이 더 길어졌다”며 “기업에서도 국가 지원 일자리 사업의 내실이 좋지 않다는 걸 알다 보니 스펙으로 쓰기도 어려워 프리랜서의 길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박씨 또한 “질 좋고 색다른 경험을 기대했는데 지금 돌아보니 결과적으로 당시의 경험을 살리진 못했다”고 말했다.

4년간 배울 내용 두 달 인강으로 압축

정부가 임금 대부분을 지원하는 직접일자리 사업의 규모는 매년 확대됐지만 청년들의 신음은 끊이지 않는다. 2017년 1조7000억원 수준이던 직접일자리 사업 지출 규모는 2020년 2조9000억원, 2021년에는 3조1000억원(추산)까지 4년 새 2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그러나 고용 세부지표의 상황은 달랐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청년(15~29세) 체감실업률은 25.4%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22.9%)과 비교해 2.5%포인트 증가했다. 체감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더해 삶의 질을 수치화한 청년층 경제고통지수도 2015년(22.2) 집계 이후 최고치인 27.2로 급증했다. 정부는 취업률과 고용률 지표를 내세우며 상황이 나아졌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2016년부터 총 취업자 수 대비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해 2020년에는 두 자릿수(10.2%)를 기록했다. 지난 5년간 사라진 일자리를 공공부문 일자리로 메꿨다는 뜻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수조 원에 달하는 세금을 투입하는데도 청년고용이 나아지지 않았던 이유는 직접일자리 사업이 사실상 세금 낭비였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체 일자리 예산(30조1000억원) 중 직접일자리 예산은 3조 원대 수준으로 약 10%에 불과하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는 한국의 효과적인 정책 대응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 재정 자문단인 국가재정운용계획 지원단의 평가와는 괴리가 컸다. 지원단은 보고서를 통해 “전체 노동예산에서 직접일자리 예산 비중을 비교했을 때 OECD 가입국(4.4%)보다 한국(31.7%)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수년간 사업을 증액했음에도 노동시장의 사정은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기에 직접일자리 예산 축소를 통한 재정 투자 재배분이 요구된다”고 명시했다.

실제로 직접일자리 사업은 취업과 연계조차 되지 않는 공공 일자리 양성에 사용돼 ‘3~6개월용 일자리’를 제공하는 데 그쳤다. 참여자들 사이에서 최악의 정책으로 불리는 행정안전부의 ‘공공빅데이터 청년인턴십 운영’, 고용노동부의 ‘청년 디지털 일자리’ ‘청년 일경험 지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들은 디지털 댐 건설, 데이터 전문가 양성 등을 위해 각각 교육, 정부 및 공공기관과 기업 내 관련 인턴십을 거쳐 전문가를 양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실제 프로그램은 겉핥기식에 불과했다.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선을 가르쳐주겠다면서 하나의 기능을 배우는 데 배정된 강의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한 대학 컴퓨터공학과 교수에게 교육 시간표를 보여주자 “말 그대로 ‘나는 교과서를 읽었으니, 알아서들 배워라’ 정도의 교육”이라고 평가했다. 프로그램의 질을 증명하듯 2020년 행안부 공공데이터 관련 청년인턴십 모집인원 8440명의 선발 인원 중 약 25%(2108명)가 사업 한 달 만에 중도 포기 후 이탈을 결정했다.

민간 일자리 취업 연계 사업 도입해야

과도한 예산 투입과 성과 미달로 지적도 받았지만, 예산 조정은 없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분석 기초자료’를 통해 인턴십만으로는 빅데이터 분석 역량을 갖추기 어렵고, 예산 확대 근거 또한 빈약해 운영사업의 구조와 규모에 적정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하지만 행정안전부는 3년간 예산을 늘려 2021년에는 본예산만 163억원을, 고용노동부는 4676억원을 투입했다. ‘세금 일자리’ ‘단순 알바’라는 비난이 잇따르자 행안부는 “이 사업은 공공기관에 인력을 배치하기 때문에 인턴 종료 후 곧바로 해당 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데이터 분야 인재를 양성하려던 것이지, 일자리를 제공하려던 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고용노동부 역시 “일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직무 경험을 제공한 것”이라며 “기회 제공이라는 취지상 계속근로자 비율만으로 성과를 평가하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수십억원의 예산을 투입했지만 사실상 성과는 없었다는 것을 자인한 셈이다. 행안부는 올해에도 공공빅데이터 청년 인턴십에 72억원가량의 세금을 투입할 계획이며, 고용노동부는 지난해로 디지털 일자리 사업을 종료하고 ‘청년 일자리 도약 장려금’을 새로 도입할 예정이다.

무늬만 일자리에 불과했던 정부의 직접 일자리는 결국 취업준비생들에게 장애물로 전락했다. 전라북도에 거주하는 박선영(가명·26)씨는 “지방에 거주해 인턴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내게 이 프로그램은 유일무이한 기회였다”며 “자격증을 취득하고,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점수를 올릴 수 있었던 6개월을 낭비하는 바람에 아직도 취업을 못 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고 심정을 털어놨다. 주무현 한국고용연구원 연구사업본부장은 “(청년들을) 잠깐 쓰고 버리는 식의 직접 일자리 사업은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에 취업 역량을 지속해서 제고시키는 데는 명백한 한계가 있다”며 “직접 일자리가 아닌 직업훈련, 고용서비스 등 민간 일자리 취업에 연계될 수 있는 사업 도입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청년 고용률 최고치라는 정부 … 일자리의 질 고려 안 해 현실과 괴리

지난달 1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소셜미디어(SNS)에 쓴 글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홍 부총리는 통계청 연간 고용 동향 발표를 인용해 “2021년 12월 취업자 수 증가로 코로나19 확산 이전 고점 수준을 넘어섰다”면서 “청년층 지표개선이 두드러진 가운데 연간 고용률은 2005년 이후, 취업자 증가 폭은 2000년 이후로 가장 높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사자들의 반응은 확연히 달랐다. 해당 게시물을 본 취업준비생 김모(26)씨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취업 시장은 나아진 적이 없다”며 “통계상으로는 청년 고용률이 16년 만에 가장 높았다고 하는데 왜 취업준비생들은 더 많아지고, 고통도 커졌는지 의문”이라고 답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뒤죽박죽 통계 해석에 대해 “양적 통계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 청년고용률 등의 거시적 지표는 단순 취업 여부만 평가하기 때문에 노동환경에 대한 평가는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유빈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고용률 지표가 상승한 것은 사실이지만, 청년 일자리 대다수가 비정규직, 기간제 계약 근로자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며 “평균적인 수치 외의 업종별, 연령별, 기간별 고용률 등 일자리의 질을 보는 지표는 오히려 더 악화하고 있어 고용지표와 체감도는 괴리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한요셉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양적 회복은 맞지만, 단시간 일자리가 주된 기여를 했다”며 “2000년대 이후 고용률이 최대라고 평가하는 것은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 보조지표인 체감실업률은 단시간 근로자, 잠재 구직자 등 부분 실업자를 포함하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통계로 평가받는데, 이 수치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은 청년 실업자가 증가추세라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청년실업률 계산 시 활용되는 수치의 변동성이 크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실업자는 4주간의 구직 여부에 따라 산정되는데, 대기업·공공기관·공무원 취업준비생들은 원서 접수 여부에 따라 구직 활동 여부가 결정돼 특정 기간 수치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위원은 “청년층 대다수에 달하는 시험 준비생들이 원서를 접수했다는 이유만으로도 실업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수험생들은 사실상 잠재적 실업자이기 때문에 단순히 실업률이 낮아졌다는 것만으로 고용 회복세라는 해석을 내놓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한편에서는 청년 일자리 통계 기준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청년실업률 및 고용률은 생산가능인구 기준인 만 15세 이상부터 29세를 대상으로 삼는데, 연령대 범주에 따라 해석의 여지가 달라진다. 15~19세의 경우 고졸 취업자가 대다수이고, 20대 초반의 경우 아르바이트생이 많아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나서는 20대 중후반의 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 한 위원은 “가급적 3세 단위로 지표를 개선해 본격적으로 취업 시장에 뛰어드는 청년들의 상황을 면밀히 해석할 수 있도록 조정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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